[고석근 칼럼] 통 큰 사람

고석근

 

좀 더 어린애 같으면서도 그전보다도 백배는 더 섬세해진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

 

오래전에 문학 모임에 나갔다가 한 잡지사 직원과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녀는 저 유명한 강가에 사는 한 시인을 비난했다.

 

꽤 유명한 시인이잖아요. 그럼 돈도 좀 있을 텐데. 얼마 전에 전화를 해서는 원고료 달라고 독촉하더라고요.”

 

나는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니? 당연한 것을 말하는데, 비난하다니?’ 그녀는 내가 반응을 보이지 않자 화제를 돌렸다.

 

옛날 그 유명했던 김수영 시인도 원고료를 주지 않는 출판사에 찾아가 책상을 마구 뒤엎었다고 한다. ‘참 쪼잔하네... 유명한 시인이?’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나도 쪼잔한 사람으로 찍혀 당한 적이 있다. 문학 모임 뒤풀이 자리였는데, 누가 나를 쪼잔한 사람이라고 했다. 술자리였지만 무척이나 기분이 나빴다. ‘쪼잔한 사람에게 쪼잔한 사람이라니?’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를 알아가며, 세상을 알아가며, 내가 쪼잔한 사람이라는 게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통 큰 사람이 되었으면 어떡할 뻔 했나통 큰 사람은 반드시 어디선가 아주 많이 쪼잔해야 한다. 성금을 통 크게 수백억씩 기부하는 사람들. 그 큰돈이 어디서 나왔을까? 나는 통 큰 사람을 믿지 않는다.


한때 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뜨리는 절대 권력을 가졌던 ㅈ씨가 선산에 다녀오면서 마을 이장에게 금일봉을 하사하였는데, 거금 삼천 만원이 들어있었다고 한다.

역시 통이 크신 분이야!” 이장은 연신 고개를 주억거렸다고 한다. 통이 크다니? 그 돈이 어떻게 그의 손에 쥐어졌는지를 생각하면 과연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만일 그가 땀 흘려 그 돈을 모았다면 선뜻 내놓을 수 있었을까?  

그래서
나는 정신을 차리고
길을 걷는다
빗방울까지도 두려워하면서
그것에 맞아 살해되어서는 안되겠기에.


- 베르톨트 브레히트,아침 저녁으로 읽기 위하여부분


통 큰 사람들은 사랑을 모르는 사람들이다. 사랑을 알면 얼마나 세심해지는가! 빗방울까지도 두려워하는 지극히 섬세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고석근]

수필가

인문학 강사 

한국산문 신인상

6회 민들레 문학상 수상.

이메일: ksk21ccc@hanmail.net


 

전명희 기자
작성 2021.12.23 10:15 수정 2021.12.23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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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