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동해 여행을 떠났다. 같이 떠날 친구가 있다는 것은 큰 행복이다. 여행의 방법과 목적은 달라도 같은 시간에 숨 쉬며 같이 공간을 이동하는데 동행한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행복한 것이다. 물리적 거리의 이동, 길던 짧던 또는 어디를 가든 혼자의 여행은 자칫 외로움에 빠질 수도 있는데 같이 손잡고 낄낄대며 떠날 동반자가 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소중한 것이다. 거기다가 인생 60년 중 절반 이상을 같은 일을 하며 지낸 네 쌍의 부부는 어쩌면 세상의 동서남북 인지도 모른다.
날씨도 겨울답지 않게 따뜻했다. 굳이 겨울스러움을 찾는다면 앙상한 가지만 남은 활엽수, 바다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이 전부였고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햇볕은 따뜻하기조차 했다. 모처럼 바깥구경은 나온 아내들은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깡총거렸다. 그래 얼마나 오랜시간 이름을 잊고 살았을까? 아니 잃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오늘의 저 깡총거림이 잃어버린 이름을 찾으려는 몸부림처럼 보이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두어 시간 운전한 끝에 일행은 울진에 도착했다. 예전 같으면 검은 바위 끝에 앉아 낚시를 하고 있을 법한 곳에 ‘스카이워크’라는 괴물이 바다위로 돌출되어 마치 동해바다를 호령하고 있는 듯하다. 사람들이 만들어 놓고 또 그곳을 돈을 내고 들어가서는 무서워 가지 못하겠다며 입장료를 날리고 .... 한치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그렇다고 늘 아쉬워할 일도 아니다. 이런 약간의 서툰 몸짓, 불과 5분 후를 예상치 못하는 것들이 그나마 사람스러워 보이게 하는 것이다.
짐짓 자신은 무서움을 타지 않는다는 듯 늠름해 보이는 모습으로 겨우 들어가서는 투명유리 아래로 출렁이는 파도를 보며 더욱 세게 난간을 잡는다. 남모르게 잡은 손등에 핏줄이 두툼해 진다. 저만큼 앞에 예닐곱 살 되어 보이는 어린 아이들이 투명유리 위에서 장난을 치고 있다. 내가 간이 작은가? 아이들의 담이 큰가? 내가 세파에 쪼들려서 왜소해진 것은 아닌가? 순수한 아이들의 맑은 영혼이 두려움을 내쳤는가?
맑은 동해바다를 통째로 삼길 듯 심호흡을 하며 등기산 신석기 유적지에 살았던 그들은 지금 어떤 모습일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하다가 기분 좋은 광경을 보곤 반사적으로 카메라를 내밀었다. 인생이 그렇듯 사진도 타이밍이다. 자연스런 장면을 놓치면 후회한다. 어린 남매를 데리고 온 젊은 가족이었는데 가족사진을 찍고 있었다. 엄마와 아빠 여동생은 동해바다와 함께 모델이 되고 예닐곱 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의젓하게 사진을 찍고 있었다.
이번 여행 중 가장 멋있고 기분 좋은 광경이랄까, 봄 같은 날씨도 그 가족을 위하고 있는 듯 했다. 허락받지 못한 ‘초상권’을 생각하며 ‘아름다운 피사체’에게 다가가서 ‘모습이 하도 아름다워서 한 컷했다고 자수(?)’하자 사진을 보고 무척 좋아한다. 곁에서 젊은 가족들을 넌지시 바라보는 어르신들의 눈동자도 편안하다. 온 천지에 따뜻함이 가득했다.
이어 우리는 정동진에 닿았다. 끝없는 동해의 바다에 내려앉은 윤슬이 반긴다. 모래밭에 와서 스러지는 파도는 어디에서 왔을까? 누구를 데리러 왔을까, 외로워서 같이 놀자고 떼쓰러 왔을지도 모른다. 소주 한 병을 사서 외로워할 영혼을 생각하며 바닷물에 뿌린다. 소주를 마신 바닷물이 멀어진다. 어디로 가는지는 나로선 알 수가 없다. 그것이 누구든 무엇이든 편안한 추억이 되길 바랄 뿐이다. 돌아가는 바닷물 위로 윤슬의 색깔이 붉어진다. 동해 바닷물이 오가는 여행의 끝은 어디일까? 심해(深海)일까, 청명한 하늘이 맞닿는 수평선 끝일까.
우리는 매일 여행을 떠난다. 실제로는 삶 자체가 여행인데 기실 사람들은 꼭 계획을 세워서 떠나는 것을 여행이라고 고집한다. 오늘도 인생 행로라는 여행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어떤 이는 즐거움을 보내고 또 어떤 이는 추억을 끄집어낸다. 그리고 울진에선 맑고 따뜻한 희망을 보고 정동진에선 수많은 추억을 느낀다. 그리고 그것들을 가슴에 새기기도 하고 바닷물에 뿌리기도 한다.
천상병 님이 읊은 ‘아름다운 이 세상’과 ‘소풍 끝내는 날’ 중 나의 오늘은 어디에 속할까? 그래 어디에 속하던,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지만 따뜻한 여행은 계속될 것이다. 그것이 곧 나의, 우리의 희망이 있는 소풍이고 삶이니.
[하진형]
수필가
칼럼니스트
행정안전부 등록 범죄안전 강사
이순신 인문학포럼 대표(이순신 국제센터)
제3회 코스미안상 금상
이메일 bluepol7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