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상 칼럼] 코스미안 복낙원송復樂園頌 Cosmian Hymn of Paradise Regained

이태상

 

2021년 12월 17일자 미주판 한국일보 오피니언 [삶과 생각] 칼럼 '12월 단상, 낙원의 부활' 필자 정기용 전 한민신보 발행인은 "해가 바뀌는 어귀에 서서 새삼 시간의 개념을 명상해본다"며"올해 따라 유난히도 정겨움에 더해 서글프게, 또 더하여 신묘하게 참으로 오랜만에 찾아온 ‘마지막 잎새’의 감회가 나만의 12월을 현란하게 장식하고 있는 것만 같다." 칼럼 글을 맺고 있다.

[삶과 생각] '12월 단상, 낙원의 부활' 

해마다 12월에 들어서면 버릇처럼 오 헨리의 단편 ‘마지막 잎새’를 반추하며 애수의 눈물을 흘리곤 했다. 아마도 고교시절 무렵이었을 것이다. 한 소녀 환자가 꺼져가는 자기의 생명을 창밖의 나무 마지막 잎새 하나가 떨어질 때까지를 한계상황으로 그려놓은 글이다. 그 나무 잎사귀는 바로 아래층에 살고 있던 어느 노 화가가 소녀를 격려하기 위해 몰래 그려 붙여놓은 잎이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찬바람 불어 을씨년스러운 겨울이 찾아왔다. 12월 마지막 남은 달력 한 장이 눈 비바람에 애처롭게 시달리고 있는 ‘마지막 잎새’처럼 감성을 흔들어대면서 오래 전의 추억들과 올 한해의 수많은 회한들이 함께 밀려와 나를 압도해버린다.

올 한해를 나는, 아니 우리 모두는 어떻게 살아왔는가. 코로나가 탈을 바꿔 써가며 온 인류에게 옐로카드를 쥐어주고 여차하면 레드카드를 내밀 기세다. 코로나의 분노를 모두가 전혀 눈치조차 채지 못하고 다시 1년을 보내온 우리가 아니었나.  

존 밀턴은 17세기에 이미 ‘실낙원’을 통하여 인간사회의 타락과 부조리와 탐욕 등으로 낙원이 사라진 비참한 그리고 깊숙한 지옥의 늪을 고발하였다. 밀턴은 실명 후에 실낙원을 쓰며 눈으로 본 세상이 아니라 마음으로 본 세상을 썼으리라.

여기에 같은 시각장애인 상황에서 밀턴의 주장에 주제넘게도 한 줄을 덧붙이고 싶다. 우리들이 뱀의 꼬임에 빠져 원죄를 짓고 이 고뇌의 땅으로 추방당한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악을 좋아하여 선악과를 맛있게 따먹고 다시 악이 그리워 낙원을 뛰쳐나와 사탄의 세계로 뛰어내린 것이라는 억지 주장 말이다. 갑자기 오늘을 함께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질문 하나를 던진다. 올 한해 우리는 선했고 양심적이었던가를, 그리고 증오, 시기, 질투, 저주, 탐욕의 어리석음이 없었던가를 자문자답해 보라고 권한다.

석가모니는 극락에 도달하려면 방하착(放下着)을 수련하라고 가르쳤다. 모든 천한 것, 소유 욕망이 모두 다 죄업이니 모든 것을 포기해야 무념의 경지에 들 수 있고 그것이 극락(낙원)이라는 것이다. 예수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고 계명했다. 자기를 희생하고 이웃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 모두가 어려운 일, 좁은 문이다. 그 좁은 문을 택하는 것이 바로 진리이다. 돈을 움켜쥐고 벌벌 떨며 어려운 고통받는 사람 도와주지 못하는 것은 진리도 아니고 자유도 아니다. 우리는 올 한해 동안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진리를 택하고 자유로웠는지 함께 반성해보자고 권한다.

해가 바뀌는 어귀에 서서 새삼 시간의 개념을 명상해본다. 시간이란 인간의 편의대로 짜놓은 엄혹한 규정 아닌가. 그냥 산간계곡에 흐르는 물처럼 소리 없이 정처 없이 흘러가는 구름처럼 살면 됐지 구태여 시간이라는 틀 속에 매달려 아등바등 헛스윙, 헛발질로 삶을 낭비하지나 않았는지 반성이 앞선다. 지나가는 세월에 대한 반항인가보다.

그러나 올 겨울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12월의 정감이 알 수 없는 흥분을 일으키고 있다. 어쩔 수 없는 인간으로서의 갖가지 사연 깊은 추억들과 있을 법한 미래의 꿈을 그려본다.

올해 따라 유난히도 정겨움에 더해 서글프게, 또 더하여 신묘하게 참으로 오랜만에 찾아온 ‘마지막 잎새’의 감회가 나만의 12월을 현란하게 장식하고 있는 것만 같다. 

<정기용 전 한민신보 발행인>

지난 2천여 년 동안 인간을 포함한 자연 만물에게 백해무익百害無益한 악영향을  끼쳐온 '만물의 영장'이란 '선종選種의 인종주의人種主義 human speciesism,' 그것도 백인위주의 인종차별人種差別 white racism 과 남성위주의 성차별性差別 sexism, 그리고 원죄의식原罪意識 (guilty of) original sin 과 선민사상選民思想/시온주의 elitism /Zionism as 'Chosen People' 등 예수의 가르침과는 너무도 거리가 먼, 아니 그 정 반대로, 독선獨善과 위선僞善의 독단적獨斷的 도그마 dogma 로 지구 생태계를 파괴해 극심한 기후변화를 초래하고 자본주의 물질문명으로 전 세계를 식민지화하며 비 백인 거의 전 인류를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노예화해 온 기독교의 부정적인 해독성害毒性에도 불구하고 연말이면 맞게 되는 크리스마스만큼은 동화적인 분위기로 잊혀가던 우리 모두의 동심을 일깨워주지 않는가.

그러니 코스미안 복낙원송復樂園頌 남녀로소男女老少 우리 다 함께 불러볼거나.

2018년 12월 18일과 2021년 6월 1일자 코스미안뉴스에 올린 우생의 칼럼 글 둘 우리 재음미再吟味해보리라.

[항간세설] '동심童心은 곧 신성神性이다 Cosmian is the Personification of Childlike Divinity'

2018년 12월 13일자 한국일보 연예스포츠 난에 30년 전 ‘담다디’로 강변가요제 대상을 수상한 가수 이상은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그녀는 “아티스트 이상은의 인생을 관통하는 삶의 도道가 있다면 뭘까요?”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동심을 잃지 않는 게 중요해요. 동심이 없어지는 순간, 감수성도 소통 능력도 함께 사라질 테니까요.”

이야말로 만고의 진리를 밝히는 너무도 생생한 증언이다.  ‘동심童心'이야말로 우리 모두의 인생을 관통하는 삶의 도道라고 할 수 있다. 안데르센 동화 ‘황제의 새옷’에 등장하는 어린애와 생텍쥐페리의 어른들을 위한 동화 ‘어린 왕자’ 같은 동심 말이다.

1994년 미국에서 출간된 ‘어린이들에게 종교가 필요한가? Do Children Need Religion?'라는 책이 있다.  카톨릭 신자였던 저자 마타 페이 Martha Fay 는 이 책에서 명쾌한 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다만 신이 남성인지 여성인지 그리고 흰 색인지 검은 색인지, 죽음과 천국은 무엇이며,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 것인지 등 에 대해 묻는 (그 당시) 열 살짜리 딸 안나 Anna 에게 자신이 엄마로서 어떻게 대응하는가를 다루고 있다.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어른들의 독단적인 독선과 위선을 싫어하여, 아무리 나이를 많이 먹더라도 결코 동심을 잃지 않겠노라고 굳게 다짐했다. 아빠가 되고 나서는 세 딸들 이름에 다 어린애 ‘아兒’자를 넣어 해아海兒, 수아秀兒, 성아星兒라 이름지었다.

하늘에 하늘님이 계시고 땅속에 땅님이 계신다면, 하늘에서 내려오신 하늘님과 땅속에서 솟아오르신 땅님이 바로 어린 아이들이 아닐까. 어린이들이 사는 곳이 바로 천국인데, 공중에 무슨 천국이 있으며 지하에 무슨 지옥이 있겠는가. 

어른이 어린애처럼 되려면 필요한 것이 종교다. 그래서 어린이는 종교의 교주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누가 누구에게 전도를 하고 설교를 한다는 것인가?

나는 어린이가 곧 '하나님'이라고 믿는다.  예수도 우리가 어린 아이 같이 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했다. 어린이에게는 참도 거짓도, 선도 악도, 아름다운 것도 추한 것도, 옳고 그른 것도, 남자도 여자도, 너와 나도 따로 없다. 동물, 식물, 광물도 어린아이와 같은 하나가 아닌가.  하나님이 '하나님'이라면, 작다는 뜻의 '아리'를 붙여 '하나아리님'도 곧 어린 코스미안이라 해야 하리라. 

'Cosmian is the Personification of Childlike Divinity'
 
Asked in a recent interview with The Entertianment/Sports of The Korea Times, December 13, 2018:

“If there is a tao running through your life as an artist, what that would be?”

Korean singer songwriter Lee Sang Eun a.k.a. Lee -Tzsche answered:

“Not to lose the childlike innocence. The moment I lose it, I lose everything, all my perceptions, means of empathy.”

Wow, what a convincing, ever-lasting and universal testimony! Shouldn’t this be the tao for every human being? That is to say like the child in Hans Christian Andersen’s The Emperor’s New Clothes and Antoine de Saint Exupery’s fairy tale for grownups The Little Prince/(Princess).

‘Do Children Need Religion?’ by Martha Fay was published in 1994. The author, an ex-Catholic,  of this book with its quizzical title doesn't give clear-cut answers. She tells how she responds to the questions of her young (then only ten-year-old) daughter, Anna, about a She or a He God, a black or a white God, death, Heaven, the meaning of right and wrong, and the like.

Ever since my youngest days, I was disgusted by all the self-righteous dogmatism full of hypocrisy constantly exhibited by grownups. I kept telling myself that I would never grow up to be like that.  

When I became a father, I named my three daughters, Hae-a (Child of the Sea), Su-a (Child of the Sky) and Song-a (Child of the Star) with the common letter ‘아’ in Korean and ‘兒‘ in Chinese character, meaning ‘child’, praying that they would never lose their childlike curiosity, enthusiasm, innocence and sense of wonder.

I, for one, believe that the child in us is the most divine 'god-ling.'  Didn't Jesus say we couldn't enter heaven unless we were childlike?  

To a child, nothing is true or false, good or bad, beautiful or ugly, right or wrong, high or low, male or female; you and I are not separate, not separate from animals, plants or rocks.  For, literally, all things in Nature are one and the same.  

If the God of the sky is up there and the God of the earth is down here in the ground,  children are those very Gods that descended down and ascended up.   If anywhere children are, there is the very Heaven, if so, what Heaven up there in the sky or what Hell down in the underground could there be?  If children are founders of religions, how could then anyone dare to preach to the godlings!  

If God is oneness, so are the children as Little Cosmians.

[이태상 칼럼] '우리 모두 본연本然의 코스미안으로 복낙원復樂園하리'

가정의 달, 아니 5월 5일 어린이날이 있는 5월 말에 동심童心을 동경 憧憬한다. 

라틴어로 ‘Finis Origine Pendet’란 말이 있다. 영어로는 ‘The beginning foretells the end.’ 우리말로는 ‘시작이 끝을 말해 준다’로 ‘시작이 반이 아니라 전부다’란 뜻이 되리라.
 
2021년 5월 30일자 뉴욕타임스 일요판 오피니언 섹션 Sunday Review에 기고한 글 ‘우리가 애독하는 이야기들이 우리를 만든다. The Stories We Love Make Us Who We Are’란 제목의 글에서 필자인 인도계 영국 작가 살만 루슈디Salman Rushdie는 이렇게 글을 맺는다.
 
“이 많은 모험담冒險談/탐험담探險談에서 영웅이 되는 건 어린아이들이다. 흔히 어른들을 위험에서 구조/구출/구제해 구하는 건 아이들이다. 우리 모두 어렸을 때의 우리 자신들, 어른이 된 지금도 우리 안에 있는 어린이들, 경이로운 세계를 이해하고 이 이야기들 스토리의 진실을 아는 아이들이 이 진실들을 잊어버린 어른들을 구원하는 아이들 말이다. And in many of these adventures, it is children who grow into heroes, often to rescue the adult world; the children we were, the children who are still within us, the children who understand wonderland, who know the truth about stories, save the adults, who have forgotten those truths.”
 
“우리나라의 교육제도는 해마다 바뀌고 여러 정책이 늘 제시되지만 정작 바뀌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우리 사회의 가치관이다. 우리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진정으로 건강하고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이들이 고전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러 동서양의 고전을 통해 지식을 살찌우고 지혜롭고 창의적인 사고를 하며 건강한 가치관을 정립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올재’를 설립했다.”
 
‘올재’의 홍정욱 대표의 말처럼 이 출판사는 저작권 문제가 없는 동양과 서양의 고전을 최대한 읽기 쉬운 한글 번역본과 누구나 갖고 싶은 멋스러운 디자인으로 출판하여, 대기업에서 후원을 받아 한 권당 2,000원에서 3,000원 대의 가격으로 대중에게 판매하고, 전체 발간 도서의 20%를 저소득층과 사회 소수계층에게 무료로 나누어 주는 일종의 소셜 비즈니스 회사라고 한다.
 
1970년과 2012년 영화로도 만들어진 ‘나의 달콤한 오렌지나무 My Sweet Orange Tree’ By Jose Mauro de Vasconcelos(1920-1984)가 있다. 1968년 출간되어 브라질 초등학교 강독 교재로 사용됐고, 미국, 유럽 등에서도 널리 번역 소개되었으며, 전 세계 수십 개 국어로 출판되었다.
 
한국에서는 1978년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로 첫선을 보인 후 50여 곳 이상의 출판사에서 중복 출판되어 400만 부 이상이 팔린 초대형 베스트셀러로, 2003년 ‘MBC 느낌표’에 선정되었고, 지금도 꾸준히 사랑 받고 있는 성장 소설의 고전이다.
 
저자 바스콘셀로스는 1920년 리우데자네이로의 방구시에서 포르투갈계 아버지와 인디언계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권투선수, 바나나 농장 인부, 야간 업소 웨이터 등 고된 직업을 전전하며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이 모든 고생이 그가 작가가 되는 밑거름이 되었다.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모든 나라에서 흙수저를 물고 태어난 모든 어린이들에게 바치는 ‘헌사獻詞/獻辭’라고 할 만한 이 저자의 자전적 소설에서 독자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극심한 가난과 무관심 속에서도 순수한 영혼과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여덟 살짜리 소년 제제Zeze가 티 없이 짜릿 풋풋한 눈물과 웃음을 선사한다. 장난꾸러기 제제가 동물과 식물 등 세상의 모든 사물과 자연 만물과 소통하면서 천사와 하나님이 따로 없음을 실감케 해 준다.
 
바스콘셀로스는 이 작품을 단 12일 만에 썼지만 20여 년 동안 구상하면서 철저하게 체험을 바탕으로 했다고 한다. 

한 권의 소설을 한 줄로 쓰는 것이 시라면, 마찬가지로 한 권의 자서전을 한 편의 단문으로 쓰는 게 에세이나 수필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뿐만 아니라 그림을 그리든 글을 쓰든 화가나 작가가 어떤 가치관을 갖고 어떤 색안경을 쓰고, 그리고 쓰느냐에 따라 그 내용이 판이해지듯 그림을 보고 글을 읽는 사람도 어떤 시각과 관점으로 보고 읽느냐에 따라 보고 읽는 내용이 전혀 달라지는 것이리라.
 
그러니 동심의 눈으로 보면 모든 게 꽃 천지요 별세계다. 돌도 나무도, 벌레도 새도, 다 내 친구요 만물이 다 나이며, 모든 것이 하나이고, 어디나 다 놀이터 낙원이다. 이렇게 우리는 모두 요술쟁이 어린이로 태어나지 않았는가. 

일찍이 중국 명나라 때 진보적 사상가였든 이탁오李卓吾, 영어로는 Li Zhi (1527-1602)는 그의 대표적 저술로 시와 산문 등을 모아 놓은 문집 ‘분서焚書’에서 말한다.
 
“어린아이는 사람의 근본이며 동심은 마음의 근본이다. 동심은 순수한 진실이며 최초의 한 가지 본심이다. 만약 동심을 잃는다면 진심을 잃게 되며, 진심을 잃으면 참된 사람이 되는 것을 잃는 것이다.”
 
‘시야 놀자’의 서문에서 섬진강 시인 김용택은 이렇게 말한다.
 
“동심은 시의 마음입니다. 동심을 잃어버린 세상을 상상할 수 없습니다. 시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 속에서 가장 기본적인 정신이기 때문에 동심을 잃어버리지 않은 어른들이 시를 씁니다. 동심은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세상에 대한 궁금증을 어떻게 하지 못합니다.”
 
우리 윤동주의 동시 세 편을 읊어 보자.
 
나무
 
나무가 춤을 추면
바람이 불고
나무가 잠잠하면
바람이 자오
 
반딧불
 
가자가자 숲으로 가자
달 조각 주우러 숲으로 가자
그믐달 반딧불은
부서진 달 조각
가자가자 숲으로 가자
달 조각 주우려
 
내일은 없다
 
내일 내일 하기에
물었더니
밤을 자고 동틀 때
내일이라고
새날을 찾던 나는
잠을 자고 깨어보니
그때는 내일이 아니라
오늘이더라.
무리여! 동무여!
내일은 없나니
 
소년 시절 나는 함석헌(1901-1989) 선생님의 ‘뜻으로 본 한국 역사’를 너무도 감명 깊게 읽고 분통이 터졌었다. 한국 역사의 흐름이 크게 잘못되기 시작한 것이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 威化島 回軍’이라 본 것이다.
 
고려말 1388년 (우왕 14년) 명나라 홍무제 주원장이 철령鐵領 이북의 영토는 원나라 영토였다는 이유로 반환하라는 요구에 맞서 최영 장군은 팔도 도통사, 조민수를 좌군 도통사, 이성계를 우군 도통사로 삼은 요동정벌군이 압록강 하류의 위화도까지 이르렀을 때 이성계가 개경開京으로 회군한 사건 말이다.
 
2015년 ‘글씨에서 찾은 한국인의 DNA’란 책의 부제가 붙은 <어린아이 한국인>이 나왔다. 2009년 항일운동가와 친일파의 필적을 비교 분석한 책 <필적은 말한다>를 펴냈던 저자 구본진이 비석과 목간-방패-사리함 등 유물에 남아 있는 글씨체에서 우리 민족성의 본질을 찾아내는 <어린아이 한국인>을 출간한 것이다.
 
“지금 한국인의 발목에는 격식과 체면과 겉치레라는 쇠사슬이 잘가당거리지만 이는 오랜 중국화의 역사적 산물일 뿐, 원래 한민족은 인류 역사상 가장 네오토닉 neotenic(유아기의 특징이 성년까지 남아 있는 현상을 말함)한 민족이었다”며 우리 민족은 자유분방自由奔放하고 활력이 넘치면서 장난기가 가득한 ‘어린이 기질’을 갖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우리 민족의 이런 ‘어린이스러움’은 고려시대 이후 중국의 영향으로 경직되었으나 19세기 이후 중국의 위상이 떨어지면서 부드럽고 자유로운 한민족 고유의 품성과 글씨체가 다시 살아난다는 것이다.
 
저자는 향후 연구 과제도 제시한다. 중국 만리장성 외곽에서 발견된 ‘홍산문화’가 우리 민족과 관련된 문화일지 모른다는 주장인데, 그 근거 역시 글씨체다. 황하문명보다 1,000년 이상 앞선 홍산문화 유물에 남아 있는 글씨체가 고대 한민족의 글씨체와 유사하다면, 이야말로 세계역사를 바꿔놓을 단서임이 틀림없다.
 
어떻든 이 ‘아이스러움’이란 우리 한민족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세계 인류 모든 인종과 민족에게 공통된 특성이 아닐까. 이 순수 하고 경이롭고 신비로운 ‘동심’을 갖고 우리 모두 태어나지만 타락한 어른들의 잘못된 세뇌교육과 악습으로 ‘아동낙원兒童樂園’을 잃는 ‘살낙원失樂園’의 비극悲劇이 시작되었어라.
 
아, 그래서 나의 선친 이원규李源圭(1890-1942)도 일제강점기에 손수 지으신 동요, 동시, 아동극본을 엮어 <아동낙원兒童樂園>이란 책을 500부 자비로 출판하셨는데 집에 남아 있던 단 한 권마저 6·25동란 때 분실되고 말았다.
 
아, 또 그래서 나도 딸 셋의 이름을 해아海兒(첫 아이로 ‘쌍둥이를 보고, 한 아이는 태양 ‘해’ 그리고 또 한 아이는 바다 ‘해海’로 작명했으나 조산아早産兒들이라 한 아이는 난 지 하루 만에 세상 떠나고), 수아秀兒, 그리고 성아星兒라 이름 지었다. 평생토록 젊음과 동심을 갖고 살아주기를 빌고 바라는 뜻에서다. 간절히 빌고 바라건대 바다의 낭만과 하늘의 슬기와 별들의 꿈을 먹고 살라고. 이와 같은 기원과 염원에서 아이 ‘아兒’ 자字 돌림으로 한 것이다.
 
정녕코 복福이야 명命이야, 우리 모든 어른들도 어서 잃어버린 동심童心을 되찾아 우리 본연本然의 코스미안으로 ‘복낙원復樂園’하리라.

그러면 온 세상이 별처럼 반짝이리라.  2021년 12월 23일자 미주 뉴욕판 중앙일보 오피니언 [삶의 뜨락에서] 칼럼 '세상이 다이아몬드로 반짝였습니다'  필자 남순자 수필가가 간증하듯(?) 증언하는 것처럼 말이어라.

[삶의 뜨락에서] '세상이 다이아몬드로 반짝였습니다'

하얀 눈이 펑펑 내리다가 갑자기 돌변하여 비가 퍼부었던 변덕스러운 날씨였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내다보는데 갑자기 제 머리가 한 바퀴 휭 돌더니만 눈이 휘둥그레지는 겨울 별천지(Winter Wonderland)가 열렸습니다. 눈을 비비고 정신을 가다듬어 다시 밖을 내다보니 온통 반짝이는 수정고드름 마을 전경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어제 저녁 하얗게 펑펑 내리던 눈은 어디로 감쪽같이 자취를 감추었는지 나무 가지가지마다 물방울이 조롱조롱 반짝이는 고드름 세상이었습니다. 내 눈앞에는 현실의 세상이 아닌 동화 속에 펼쳐지는 얼음 궁전이었습니다. 
  
세상을 살아오면서 처음 보는 눈부시게 화려한 겨울 아침이었습니다. 저는 급히 옷을 갈아입고 금은보화가 가득한 세상으로 뛰쳐나갔습니다. 밤사이에 변해버린 기온이 온통 얼음판이었습니다. 운전도 쉽지 않은 상황인 것을 잘 알면서도 사방을 헤매고 다녔습니다. 늘 푸른 소나무들과 빨간 열매들이 함께 어울려 세상의 모든 미움도 두려움도 더러움까지도 깨끗하고 투명한 얼음으로 감싸 안은 채 맑고 투명한 빛을 환히 밝히고 있었습니다. 모두 꽁꽁 얼어붙은 세상이 수정보다도 더 귀한 다이아몬드 보석으로 화려한 향연을 벌리고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인위적이 아닌 자연의 진정한 미가 우리 인간을 온통 통제하며 매혹하는 듯 자연의 위상을 날리고 있었습니다.   
  
아! 아아! 아! 바로 이 현상이 크리스마스트리의 원천이었던가? 진정 예수님 탄생의 기쁜 날 향연이 내 동네에 아니 온 세상을 깨끗한 수정과 사랑으로 분갈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보석들은 나를 또한 모래알같이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로 느끼게 했습니다. 온통 수정과 다이아몬드로 채워진 세상이 내 손가락에 끼고 있는 반지의 의미와 빛을 초라하게 잡아버리고 있었습니다. 잠시나마 검약함을 느끼게도 했습니다. 급하게 찍찍이(Camera)도 없이 뛰쳐나와 정신없이 돌아다니다 문득 생각하니 저 화려하고 빛나는 향연을 허망하게 놓쳐버림이 무척 아쉬웠습니다. 
  
이제 이 정점에 서 보니 눈 내리는 날을 몹시 두려워하는 나이에 왔습니다. 내 마음속에 곱게 간직했던 다이아몬드가 화려하게 반짝이던 세상을 다시 볼 수 있을까? 긴 세월을 그리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다시는 볼 수가 없었습니다. 기회는 한 번이었던가 봅니다. 귀한 것은 늘 귀한 것으로 잠재되어 있던가요? 제 마음은 아직도 소녀입니다. 겨울이 오면 생각이 떠오르는 그 미지의 세계를 떠올려봅니다. 그렇게 기다려도 오지 않는 야속한 얼음 궁전엘 꿈속에서라도 내려다보고 싶습니다. 혹 마음 맞는 친구들과 더불어 거짓도 미움도 없을 것 같은 깨끗한 수정의 궁전에서 두런두런 이야기꽃을 피워보고 싶습니다. 수다에 목이 마르면 고드름도 따 먹으며 그때 그날 혼자 즐겼던 수정의 궁전이 얼마나 화려했던가를 호들갑 떨며 신나게 엮어 보고 싶습니다. 그렇게 며칠 몇 날을 함께 먹고 웃고 즐기며 고드름, 수정 그리고 녹지 않을 다이아몬드나 실컷 따 가지고 돌아오고 싶다는 철부지의 꿈!  ‘Winter Wonderland’에 잠시 잠들어 보았습니다.   
  
엄동설한에 고드름 동산을 꿈꾸다 보니 몸이 온통 냉해졌습니다. 온천을 좋아하는 내 식구나 꼬드겨서 뜨끈뜨끈한 사우나에 몸도 녹이고 이열치열로 한겨울 팥빙수라도 한 그릇 먹어볼까 하는 생각에 황급히 차가운 현실로 돌아왔습니다. 

<남순자 / 수필가>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코리아타임즈 기자

합동통신사 해외부 기자

미국출판사 Prentice-Hall 한국/영국 대표

오랫동안 철학에 몰두하면서

신인류 코스미안사상 창시

1230ts@gmail.com


전명희 기자
작성 2021.12.28 09:26 수정 2021.12.28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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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