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크가 1829년에 소설 '올빼미당원'과 '결혼의 생리학'으로 문단에 첫걸음을 내디딘 직후 프랑스는 부르주아지가 지지하는 민주적 왕정이 들어섰다. 1789년의 프랑스혁명은 귀족 계급에 대한 부르주아지의 승리였으며, 1830년의 7월혁명은 부르주아지의 제패였다. 프랑스 자본주의의 상승기였으며, 정권이 귀족의 손을 떠나 금융 자본의 수중에 들어간 때였다.
그는 '올빼미당원' 이후의 모든 소설을 작중 인물의 재등장이라는 수법을 사용하였으며, 이는 '고리오 영감'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전 작품에 대하여 '인간 희극'이라는 제목을 붙였고, 그 인간희극은 '외제니 그랑데', 고리오 영감', '골짜기의 백합', '사촌 베트', '사촌 퐁스 등이 들어 있다. ‘고리오 영감’과 함께 발자크 사실주의 작품의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이 작품은 나폴레옹이 실각한 뒤 다시 왕의 통치 체제로 돌아선 복고 왕정 시대를 배경으로 삼고 있으며, 대혁명 이후 프랑스 사회의 새로운 지배 계급으로 자리 잡게 되는 신흥 부르주아지의 탄생 과정에 대한 실증적 기록이라 할 수 있다.
프랑스 중부 포도주로 유명한 소뮈르, 아내의 지참금을 바탕으로 뛰어난 투기 실력을 발휘하여 그 누구도 정확한 액수를 알지 못할 만큼 막대한 재산을 일군 그랑데 영감, 마을의 유지이기도 하며, 아내와 외동딸인 '외제니'에게 수전노의 생활을 강요하며 죽는 순간까지 황금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않는 인물이다. 외제니의 사촌인 샤를 그랑데는 부유한 은행가 아버지의 덕택으로 호사를 누리며 자랐으나 어느 날 아버지는 파산을 하였고 치욕을 면하기 위해 자살을 택한다.
결국 그랑데의 집에 머무르게 된 샤를에게 외제니는 첫눈에 사랑에 빠지고 만다. 그러나 순진한 시골 처녀와 멋쟁이 파리 청년의 사랑 앞에는 넘어야 할 산이 가로막고 있다. 하루아침에 무일푼이 된 샤를은 아버지의 유언과 그랑데 영감의 강요로 인해 돈을 벌기 위해 인도로 떠나지 않을 수 없게 되고 외제니는 샤를의 사업자금으로 그동안 아버지한테 받은 금화를 통째로 건네준다.
샤를은 외제니에게 다시 재산을 모으면 돌아와서 결혼하겠다고 맹세를 하고 샤를이 떠난 뒤 결국 금화를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는 아버지의 분노를 불러 외제니는 결국 방에 감금되고 만다. 시간이 흘러 어머니와 아버지를 차례로 여의고 유산을 상속받은 외제니는 커다란 부자가 되어 일편단심 샤를만을 기다리지만 7년 만에 돌아온 샤를은 옛날의 샤를이 아니다. 세계를 누비는 동안 돈과 출세에 혈안이 된 사람이 되어 있다.
그는 그랑데 가문의 피를 이어받은 또 한 명의 황금의 노예일 뿐이었다. 외제니는 하늘이 무너지는 절망감에도 불구하고 샤를과 결혼을 하기위해 샤를의 아버지가 남긴 부채를 갚아주는 등 온갖 노력을 하지만 샤를은 결국 자신의 사회적 출세를 위해 오브리옹 백작의 딸과 결혼하고 만다. 외제니와의 사랑을 저버리고 사회적 지위를 얻고자 몰락한 백작 딸과 정혼을 한 샤를, 그에게 외제니의 존재는 아예 없었다. 단지 6천 프랑의 채무가 남아 있는 존재일 푼이었다. 샤를은 외제니가 엄청난 상속녀라는 걸 알지 못했다. 그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는 자신의 실수를 자책 해야만 했다.
샤를이 결혼하기 전에 외제니에게 보낸 편지는 순박한 외제니의 이해를 얻으려는 기만적 술수인 동시이며 복고 사회 지배층으로 가기 위한 야심 찬 청년의 솔직한 고백이기도 하다. 발자크는 샤를의 뻔뻔한 태도와 외제니의 한결같은 마음의 대비를 통해 당시 만연해 있던 부르주아적 결혼관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샤를이 떠난 후 외제니도 마음에 없는 결혼을 하지만 곧 남편은 죽고 아이도 없다. 그러나 외제니는 돈의 쓰임을 아는 사람이었다. 자신을 돌봐준 늙은 하녀 나농에게 유산으로 연금을 주고 물려받은 엄청난 재산을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위해 쓰면서 자신은 평생을 쓰러져 가는 낡은 집에서 검소하게 지낸다.
우리의 세상은 돈이 그 사람의 지위를 말해주기도 하고 생존과 생활의 직접적 바로미터가 되기에 물질에 대한 추구 자체를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외제니의 아버지, 그랑데 영감이 죽기 전까지도 자신의 재물이 갈 사람을 포기한 모습을 볼 때 과연 죽음 앞에서 그 많은 재산이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재물을 쓸 만큼 소유하고 있음에도, 사랑과 사람을 포기할 정도로 더 많은 소유에 욕심을 내고 '축적'에만 집중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 마음에 어려운 이웃이 들어올 자리는 없다. 잘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쓰는 것은 더 중요하다.
[민병식]
인향문단 수석 작가
대한시문학협회 경기지회장
문학산책 공모전 시 부문 최우수상
강건 문화뉴스 최고 작가상
詩詩한 남자 문학상 수필 부문 최우수상
2020 코스미안상 우수상
민병식 sunguy200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