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차영의 대중가요로 보는 근현대사] 그 사람 찾으러 간다

왜 이별했나 묻지를 마라, 당신도 사연 있잖아

김병걸 / 이충재 / 류기진

1990년대 어느 가을날 서울에 살고 있던 이경희(당시 64)라는 여인 앞으로 미국에서 보낸 항공 우편물이 날아왔다. 그 속에는 55.5×74.5판화지에 사진 이미지를 붙이고, 색깔 펜과 크레용 등 다양한 필기구로 어릴 적 기억을 얽었다. 그 시절 적은 낙서와 시구절 같은 기억 73점을 얽은 예술작품이었다. 발신인은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예술가, 비디오 아트 창시자 백남준(1932~2006). 이들은 동갑내기 유치원 동창생 첫사랑 연인이었다. 이 여인은 2020년 기준으로 88세가 된 수필문학가였다


항공우편물을 받은 수필가는 뉴욕으로 국제전화를 걸었다. ‘몸이 불편한 사람이 작업을 하다니요. 어떻게 경희와의 약속을 잊어버려.’ 두 사람의 대화다. 그 예술가가 지난날 35년여 만에 우리나라에 왔었다. 귀국 기자회견장에서 누가 가장 보고 싶으냐는 질문에 그는 유치원 친구 경희가 보고싶다고 했었다. 당시 50대 중반이던 백남준의 대답이었다. 1984년의 일이다. 그렇다. 예술가의 인생은 단 한 사람, 첫사랑을 찾아가는 길이었다. 이런 사연을 머금은 유행가가 김병걸이 노랫말을 지어 류기진이 절창한 <그 사람 찾으러 간다>이다. 왜 이별했나 묻지는 말아라, 당신도 사연이 있잖아~.

 

철없이 사랑했던 날은 가고/ 무작정 사랑했던 날도 가고/ 이제는 정리다 정리/ 마음에 와닿는/ 진실 하나 찾으러 갈거다/ 왜 이별했나 묻지를 마라/ 당신도 사연있잖아/ 예쁜 여자 만나면/ 멋진 남자 만나면/ 아직도 뜨거운 가슴이 있다/ 눈물도 있고 정도 있다/ 내 생애 마지막 정열/ 그 사람 찾으러 간다// 날마다 봄날인 줄 알았던 나/ 언제나 청춘인 줄 알았던 나/ 이제는 정리다 정리/ 마음에 와닿는/ 진실 하나 찾으러 갈거다/ 왜 이별했나 묻지를 마라/ 당신도 사연있잖아/ 예쁜 여자 만나면/ 멋진 남자 만나면/ 아직도 뜨거운 가슴이 있다/ 눈물도 있고 정도 있다/ 내 생애 마지막 정열/ 그 사람 찾으러 간다/ 왜 이별했나 묻지를 마라/ 당신도 사연있잖아/ 예쁜 여자 만나면/ 멋진 남자 만나면/ 아직도 뜨거운 가슴이 있다/ 눈물도 있고 정도 있다/ 내 생애 마지막 정열/ 그 사람 찾으러 간다/ 그 사람 찾으러 간다.


https://youtu.be/QhRqO-QUUvs 

 

<그 사람 찾으러 간다> 노래는 단 한 소절, ‘내 생애 마지막 정열, 그 사람 찾으러 간다가 맥락이다. 모든 것을 다 정리한 뒤의 지향점이 그 사람이다. 철없이 사랑했던 날, 무작정 사랑했던 그 날은 세월의 강 어디쯤 흘러가고 있을까. 날마다 봄인 줄, 언제나 청춘인 줄 알았던 그대는 지금 인생의 어느 꼬부랑 고개를 걸어가고 있는가. 백남준(1932~2006)의 인생은 첫사랑을 지향하여 끊임없이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갔던 예술의 길이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출생하여 미국 뉴욕시, 독일 쾰른, 일본 도쿄, 미국 마이애미, 서울 등에서 거주했었다. 그가 오랜만에 귀국을 했을 때 둘은 예술가의 거처 워커힐호텔에서 만났단다. 이때 예술가가 첫사랑 여인에게 건넨 첫 마디는 ‘C est la vie·이게 인생이지라는 말. 그리고 두 팔로 꼭 껴안으며, ‘우린 이미 너무 늦었어. 나는 당뇨라서 섹스를 못 해.’라고 했단다. 그들이 어린 시절 다닌 유치원은 당시 상류층 부인들 모임 애국부인회가 운영하던 애국유치원이었단다. 유치원의 첫사랑, 그 지순한 사랑이 <그 사람 찾으러 간다> 노래에 아롱진다.

 

이 노래는 폴카(polka) 곡이다. 남녀가 짝을 이루어 춤추는 2/4박자, 체코 서부 보헤미아에서 탄생한 춤. 이 춤 장르가 프라하에 등장한 것은 1830년대 후반이며, 이후 빈·파리·페테르부르그·런던에 소개되면서 유럽 각국에서 사교춤으로 유행했다. 이러한 유행이 우리나라에는 들어온 시기는 1940년대 후반으로부터 1960년대 어간이다. 현대사의 시작점인 미군정기와 6.25 전쟁 베트남 전쟁기를 거치면서 이어진 서양 문물의 서세동진(西勢東進) 현상이다. 류기진은 <그 사람 찾으러 간다> 노래를 부를 때 입술과 마이크 간격을 오른 손목으로 딱깍 딱깍 밀었다가 당기면서 그만의 보컬 테크닉을 유지한다. 리듬으로는 스타카토 같은데, 몸짓도 이와 같다. 이 노래는 <지키지 못한 사랑>, <원하지 않은 이별>, <그랬다>, <남자가 사는 이유>PR(public relation. 홍보·섭외)하기를 권고한 작사가 김병걸과 밀당을 하다가 결국 류기진의 황소고집으로 낙점을 한 곡이다. 류기진과 김병걸은 친구 따라 강남을 가는 제비와 같은 절친 사이다.

 

류기진은 고흥 출생, 서라벌고 출신 나훈아와 동문이다. <집시여인>의 주인공 이치현과 <그냥 걸었어>를 멜로딩한 김준기와 동창이다. 난방기기 부품은 제조하는 중소기업의 사장이기도 한 그는 지천명(知天命)을 넘긴 나이에 가수로 데뷔했다. 이 노랫말을 얽은 김병걸과 의기투합을 해서 열창을 한 이 곡, <그 사람 찾으러 간다>가 데뷔곡이다. 51세 때다. 공자는 논어위정편(爲政篇)에서, ‘나는 나이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우학. 于學), 서른에 뜻이 확고하게 섰으며(이립. 而立), 마흔에는 미혹되지 않았고(불혹. 不惑), 쉰에는 하늘의 명을 깨달아 알게 되었으며(지천명. 知天命), 예순에는 남의 말을 듣기만 하면 곧 그 이치를 깨달아 이해하게 되었고(이순. 耳順), 일흔이 되어서는 무엇이든 하고 싶은 대로 하여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불유구. 不踰矩)’라고 했다.


 40대까지는 주관적인 삶, 50줄에 들어서면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경우와 상식의 통념 철학으로 살라는 의미이고, 60줄에 들어서서는 아집을 부리지 말며, 70줄에 들어서면 삶이 도()가 된다는 의미이리라. 류기진은 <사랑도 모르면서>, <이겼다>, <그랬다> 등으로 대중과 소통하면서 느즈막에 가수 신인상도 받았다. 그의 가수 길은 천명(天命)이고, 그가 이 길을 깨달은 때가 지천명이었다. 류기진은 첫사랑을 마주하였을까. 예쁜 여자 만나면, 멋진 남자 만나면 아직도 뜨거운 가슴이 쿵쾅거릴 그대의 그 사람은 어느 하늘 모롱이에서 그대를 찾고 있을까.

 

대구예술대를 나와 시인의 길을 걷다가 유행가 작사의 달인이 된, 김 작사(김병걸에 대한 반야월의 애칭)의 인생 배를 저어가는 작사가와 중소기업 사장의 본업에 가수라는 곁길을 하나 더 낸 류기진의 명품 <그 사람 찾으러 간다> 노래 행간에 백남준과 이경희의 첫사랑 실루엣이 얽힌다. 그들의 동심(童心)이 애심(愛心)의 씨앗으로 잉태하여 죽음 직전의 예술작품으로 태어났다. 훗날 이경희 수필가는 백남준으로부터 받은 73점의 작품을 백남준의 드로잉 편지책으로 출간했었다. 이경희는 책 머리에, ‘그가 쓰러져서 몸이 불편한데도 나와의 약속(어릴적)을 지키기 위해, 죽음의 문턱에서 작업을 했다는 것이, 고맙게 느껴지지 않고 슬프기만 했다고 적었다


그렇다. 첫사랑은 늘 슬프기만 하다. 책 속에 들어 있는, ‘자 밥 먹자, 기동차를 타고 뚝섬에 원족 가자, 칙칙폭폭 기차가 떠난다.’ 등등 예술가의 표현은 난해했지만, 첫사랑 수필가는 다 해석할 수가 있었다. 첫사랑은 첫사랑을 헤아릴 수가 있다. 이런 애절한 유행가는 대중들의 가슴팍을 후벼판다. 우리는 저마다 예술가이고 수필가이며, 유행가의 주인공이다.


[유차영]

시인

수필가

문화예술교육사

한국유행가연구원 원장

유행가스토리텔러 제1

유차영 519444@hanmail.net


전명희 기자
작성 2021.12.30 11:20 수정 2021.12.30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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