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명한 가을 같은 겨울 하늘이 햇볕을 내려 준다. 다음 주엔 추위가 온다는데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사다리 톱, 전지가위를 챙겨 감나무밭으로 간다. 지난 가을엔 이웃 농장의 감을 땄었는데 올겨울부터는 직접 감 농사를 짓기로 했다. 제일 먼저 할 일은 가지치기다. 전 관리인이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 3년 넘게 가지치기하지 않은 탓에 가지들이 웃자라서 감나무 고유의 역할이 많이 약해졌다. 감나무를 타고 올라간 넝쿨들의 늘어진 모습에 기력 빠진 나무가 도와달라고 손짓하고 있다.
30년 넘게 공직(公職)에 있다가 퇴직한 탓에 농사에 문외한인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할지 몰라 허둥대자 예전부터 감 농사를 짓고 있는 친구가 도와주겠단다. 컴퓨터 동영상을 통해 사전지식을 쌓고는 전기톱을 들고 큰 가지 위주로 잘라 나가면, 10여 년 부업으로 경력을 익힌 친구가 작은 톱과 전지(剪枝)가위를 들고 가지치기를 완성한다. 전기톱 돌아가는 소리와 ‘똑똑’하는 전지가위의 절단음이 작은 농장에 퍼져 나간다.
바닥엔 잡초와 칡넝쿨이 손을 잡고 감나무에 기어올라 질식시킬 기세이기도 하고, 웃자란 가지들은 하늘 높이 올라가기 경주를 벌이는 곳 같다. 나무도 얼마나 답답했을까. 예전 추억이 떠오른다. 아버지께서 인생 여행의 마지막 역을 찾을 무렵 뵈러 갈 때면 머리를 감겨드리곤 했는데 무척이나 좋아하셨다. ‘머릿밑이 개운하니 머릿속까지 시원하다’시며, 그렇다고 내가 효자라는 말은 아니다. 부모님을 일찍 보낸 이가 뒤늦게 무슨 넋두리를 하고 있는가. 지금도 지하에서 자식들을 위해 애쓰고 계실 부모님을 생각하면 부끄러움만 가득하다.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 햇볕을 가리는 가지를 베어낸다. 그리곤 좁게 내밀어 서로를 가리고 있는 잔가지를 잘라낸다. 나뭇잎에 숨기고 있던 빈 새집 둥우리가 나타나는데 집 지은 재료가 비닐이며 가는 철사가 보이는 게 애처롭다. 인간들의 편의로 만들어진 것들이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다. 또 한편에는 뱀이 벗은 허물이 가지에 걸려있다. 나뭇가지에서 햇볕을 받으며 허물을 벗은 뱀은 새롭게 태어나겠지만 나의 허물은 나만 모른 채 지금도 짊어지고 있다. 허물 많은 내가 지금 가지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멀지 않은 산에서 키 큰 소나무가 내려다보고 있다. 그래도 작은 손으로 가지를 쳐서 햇볕이 땅에 이르게 해주는 것도 자비(慈悲)니라 작은 자비라고 이른다. 언감생심 자비라니 큰 허물을 쓸어내리고 새로운 봄을 맞이하는데 작은 힘이라도 보탬이 된다면 그것 또한 수행(修行)이고 수양(修養)이 아니겠는가. 잘리어서 떨어진 나뭇가지들을 한쪽으로 모아 정리하면서 햇볕이 땅에까지 잘 닿도록 마음을 모은다. 무엇이든지 하찮고 작은 것일지라도 마무리가 중요하다.
뱀이 허물을 벗은 것과 같이 나의 허물도 줄어들기를 소망한다. 이것도 나의 또 다른 욕심일까. 감나무는 답답한 가지 옷을 벗어 던지며 조금은 추운 겨울을 보낼지라도 새로운 봄을 맞을 준비를 한다. 때가 되어 용하게도 허물이 떠나준다면 고마운 일이고 또 때가 되어 새로운 인연이 온다면 더욱 고마운 일이다. 아직 깊은 겨울을 맞이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봄을 준비한다고?
검은 머리보다 새치가 더 많은 그는 늘 일상을 준비하는 친구였다. 톱과 전지가위만 챙겨온 나에 비하여 중참거리까지 챙겨왔다. 그는 세상을 살면서 누구에게나 똑같이 대하였다. 그에게 사람들의 높고 낮음은 없었고 오로지 현재에 충실하던 그는 하나하나의 행동이 자비였다. 신기한 것은 아무리 애를 먹이는 진상민원인이 와도 그에게 가면 고분고분해지고 나갈 때는 공손히 인사까지 하고 갔다. 그의 비결은 상대방의 입장에서 충분히 들어주고 가부(可否)와 차선책(次善策)까지 쉽게 얘기해 주는 것이었다.
그도 내년이면 옷을 바꾸어 입고 새로운 봄을 맞이하려 한다. 새로운 출발 그 자체가 그에겐 자연스러움이고 매일의 행복이다. 그에게 축복이 있으라고 기도한다. 중참을 먹은 그가 겨울 볕을 받으며 말한다. ‘우리 죽을 때까지 같이 가자.’ 고맙기 이를 데 없다.
전지를 마치고 장비를 정리하여 들고 가는 그의 머리 위로 감나무들이 내년 봄의 새로운 움을 틔울 준비를 마친 채 시간을 버리고 있다. 버린 뒤에 따라오는 새로운 채움, 그래서 무엇이든 버림이 먼저이고 그 버림이 있어야 새로운 채움이 있다. 오늘은 신축년(辛丑年) 마지막 비움의 기회가 있는 날이다.
[하진형]
수필가
칼럼니스트
행정안전부 등록 범죄안전 강사
이순신 인문학포럼 대표(이순신 국제센터)
제3회 코스미안상 금상
이메일 bluepol7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