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27일자 미주판 한국일보 오피니언 [옥세철의 인사이드] 칼럼 '병란의 소식은 들려오는데…' 필자는 "‘서방은 지고 동방은 부상하고 있다’- 이 외침과 함께 시진핑이 중국시대를 선포했던 게 올 1월이다. 정황은 정반대로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 포린 어페어스지의 진단"이라며 "대만해협에, 또 그 반대편 유라시아대륙의 서부전선 우크라이나를 둘러싸고 전운은 날로 짙어지고 있다"고 다음과 같이 경고성警告性 예고豫告를 하고 있다.
'병란의 소식은 들려오는데…'
‘…역병이 창궐한다. 대기근이 발생하고 뒤이어 들려오는 것은 병란(兵亂)의 소식이다…’-. 현대식으로 고쳐 쓰면 이렇다. ‘…팬데믹과 함께 경제적 불황이 덮치고 뒤따르는 것은 전쟁이다…’-.
하루에 수천, 수만 명이 코비드 19으로 죽어나가던, 그러니까 가장 ‘끔찍한 한 해’(annus horribilis)로 기억되고 있는 2020년. 그 해 5월 포린 폴리시지가 ‘혹시…’하는 불안한 시선과 함께 던진 ‘시나리오’성의 전망이었다.“지속적인 경제불황은 보호무역주의에, 초(超)내셔널리즘을 불러오고 이는 파시즘 대두로 이어졌다. 그리고….” 대공황 이후, 그러니까 결국 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진 1930년대 상황의 재현이 코비드 팬데믹과 함께 오지 않을까 하는 우려성의 지적을 한 것이다.
동시에 이런 질문도 던져졌다. ‘한 국가나, 국가 지도자가 전쟁을 결정하는데 가장 결정적인 동인은 무엇인가’하는, 안보가 지목됐다.
장기적 힘의 균형이 적성국에게 유리하게 기울고 있다고 판단될 때 전쟁발생 확률은 더 높다는 것이다. 힘의 균형을 유리하게 바꾸기 위해 나름 일종의 예방차원에서 전쟁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는 거다. 역사학자 A. J. P. 테일러는 1848년에서 1918년 사이 강대국 간에 벌어진 전쟁의 거의 다가 정복전쟁이 아닌 이 같은 예방전쟁의 성격을 띠고 있는 것으로 분류했다.
전쟁의 소리는 더욱 소연(騷然)해지고 있다. 코비드 팬데믹 2년째인 2021년 내내. 미국과 자유민주주의 진영 대 중국과 러시아로 대별되는 권위주의 형 준 파시스트체제 간의 대립으로 국제정치 구도가 수렴되면서 새로운 냉전은 자칫 열전으로 번질 수도 있다는 경고음이 계속 울리고 있는 것이다.
그 가능성을 먼저 제기하고 나선 사람은 하버드 대학의 그레이엄 앨리슨이다. “신흥 강국 아테네의 파워가 점점 커지면서 기존 강국 스파르타는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다가 결국 전쟁은 불가피해졌다.” 이른바 ‘투키디데스 함정’이다.
지난 500년간 16번의 파워 전환기가 있었고 그 중 12번 신흥 강국과 기존 패권국간의 전쟁으로 마감됐다. 투키디데스 함정에 빠져든 것으로 앨리슨은 지적하면서 미국과 중국은 이를 피해야한다는 조언을 하고 나선 것. 이 주장이 나온 것은 2018년이다. 그 주장이 반박되고 있다. “‘투키디데스 함정’이론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원인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그보다는 피크에 올랐다가 ‘쇠퇴하고 있는 파워’가 더 위험할 수 있다.”
존스 홉킨스대학의 할 브랜즈와 터프츠대학의 마이클 베리, 두 정치학자가 지난 9월 포린 폴리시지에 기고한 내용이다. 다름 아닌 중국이 바로 그 ‘쇠퇴하고 있는 파워’라는 지적이다. 이 두 교수는 강대국 간의 전쟁은 더 이상 발전은 막히고 세 확장을 할 수 없게 된 새로운 파워가 ‘도전의 창’이 닫히는 것이 두려워 그 전에 무모하게 기존 패권국에 도발하면서 일어나는 것으로 파악했다. 그러면서 현재의 시진핑 체제의 중국이 맞이한 처지를 1914년 1차 대전을 일으킨 독일과, 1941년 진주만 기습을 감행한 일본과 비교했다.
2020년대의 10년이 중국의 파워가 정점을 찍은 후 쇠퇴기로 접어드는 시기로 분석하면서 이 10년이 국제질서에 가장 위험한 시기가 될 것으로 내다본 것.
클레어몬트대학의 민신 페이도 비슷한 지적을 하고 있다. 중국은 2020년대까지는 미국과의 격차를 계속 줄이겠지만 2030년대 들어 성장 동력이 멈추면서 ‘기회의 창’은 닫힐 것으로 내다보면서 ‘앞으로 10년이 가장 격동적(most volatile)인 기간’이 될 것으로 진단했다.
“전쟁의 위험은 그들이 강해서가 아니라 그들 스스로가 쇠망의 길로 접어들고 있는 것을 목도하면서 높아가고 있다.” ‘그들’은 누구를 지칭하는 걸까. 중국과 러시아다. 이는 국제정치학자 앤드류 미츠타가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에 기고한 내용으로 앞으로 5년이 가장 위험한 시기가 될 것이라는 진단을 하고 있다.
경제성장의 동력이 죽어간다. 거기다가 급격한 고령화와 함께 인구가 감소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가 공통적으로 보이고 있는 쇠퇴현상이다.
미국의 인구증가율은 안정적이다. 그런데다가 대 테러 대응(테러와의 전쟁)에서 강대국 간의 경쟁으로 미국의 국가 안보전략이 전환되면서 경제 영역의 안보 영역화와 함께 대대적 동맹 강화에 나섰다. 뿐만 아니라 강대국 간의 전면전에 대비한 미군 개편작업에 들어갔다.
‘서방은 지고 동방은 부상하고 있다’- 이 외침과 함께 시진핑이 중국시대를 선포했던 게 올 1월이다. 정황은 정반대로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 포린 어페어스지의 진단이다. 더 이상 굴기하는 세력이 아니라 쇠퇴하는 세력이 중국인 것이다. 반면 미국의 위상은 급격히 높아졌다. 호주의 싱크 탱크인 로우이 연구소가 발표한 아시아국가 파워 인덱스에 따르면 2021년 인도-태평양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은 크게 높아진 반면 중국의 영향력은 급격히 감소했다. 그런데다가 독일까지 남중국해에 전함을 파견하는 등 반중, 반패권연합전선은 강화되고 있다.
그 미국을, 서방의 움직임을 바라보는 중국과 러시아는 초조하다. 앞으로 5년이 못 가 기회의 창은 닫힐지 모른다. 그러니 차라리 그 전에….
대만해협에, 또 그 반대 편 유라시아대륙의 서부전선 우크라이나를 둘러싸고 전운은 날로 짙어지고 있다.
<옥세철 논설위원>
새해를 맞아 2021년 9월 16일과 21일자 코스미안뉴스에 올린 우생의 칼럼 둘 다시 올려보리라.
[이태상 칼럼] '자주 독립 평화 통일 정당 코스미안당 탄생을 고대하며'
2021년 9월 14일자 미주 뉴욕판 한국일보 오피니언 [인사이드] 칼럼 '극도의 초조감의 발로인가---' 필자 옥세철 논설위원은 한반도를 둘러싼 현 세계정세를 이렇게 분석 진단하고 있다.
‘살다 살다 최순실 편을 드는 날이 올 줄은 몰랐다’-. 최순실씨가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승소했다. 그러자 서민 단국대 교수가 페이스북을 통해 한 말이다.
‘내로남불’이 시대정신이 된 문재인 호의 대한민국. 그 대한민국에서는 모든 것은 광속으로 변전되고 있다. 그 사회상을 찌른 촌철살인이라고 할까.
2022년 3월9일. 운명의 그 날을 향해 달려가는 대선정국도 그렇다.
9월2일이었나. 뉴스버스란 한 생소한 인터넷 매체가 ‘윤석열검찰 여권인사 고발사주 의혹’ 첫 보도를 띄운 이후 사태는 광풍이 몰아치듯 변전을 거듭하고 있다.
먼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여권인사들이 벌떼같이 일어나 정치공세를 벌였다. 급기야 여당 원내대표라는 사람은 밑도 끝도 없이 아예 ‘윤석열 검찰의 정치공작’으로 프레임을 뒤집어 씌워다. 그게 신호였나. 공수처도 전격수사에 나서 윤석열을 피의자 신분으로 만들었다. 야권의 가장 유력한 대선주자를 수사하는 전대미문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그 사이 사이 ‘공작의 냄새’도 진동하고 있다. 이른바 ‘고발사주의혹’ 제보자라고 스스로 밝힌 조성은이란 여성 정치인이 박지원 국정원장과 만난 사실이 확인되는 등.
광속으로 번져간 이 ‘고발의혹 사주’는 하나의 유행성 어투도 탄생시켰다. ‘…이 사실이라면’이란 말 자락을 먼저 깔면서 도망 갈 길을 찾는 어투 말이다.
이 같은 저질의 막장 정치드라마가 관객몰이를 하고 있는 가운데 한 가지가 실종됐다.
우리나라는 북한의 핵위협에 노출돼 있다. 아니, 인질이 됐다. 시진핑의 공산전체주의 중국은 여기저기서 무력과시도 모자라 이제 대놓고 내정간섭까지 하고 있다. 이게 대한민국이 맞은 안보환경이다. 그런데 안보를, 외교문제를 이야기하는 대권주자가 잘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2022년 대통령 선거는 국제적 요인은 무시해도 되는 국내 어젠다만의 선거인가. 아니다. 북풍(北風)은 어쩌면 ‘문재인 정권 2,0‘탄생에 큰 변수가 될 수도 있다. 그런 선거다.
‘내년 2월에 열리는 베이징 동계 올림픽행사에 문재인과 김정은, 남북지도자가 나란히 참석한다. 그리고 시진핑 블레싱하에 악수를 하며 정상회담을 하는 거다. 이 국제 평화의 쇼가 펼쳐지기만 하면….’ 이게 문재인 사람들이 바라고 또 바라고 있는 북풍이다.
그런데 그 북풍이 차단될 위기를 맞고 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북한에 대해 자격정지 처분을 내려 베이징올림픽에 참가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웬 느닷없는 제재조치인가.
그 발단은 문재인 정부가 불을 지핀 2032년 여름올림픽 남북 공동개최에서 찾아진다. 문재인 정부의 의사를 전달받은 IOC는 수차례 의사를 타진했으나 북한은 반응이 없었다. 그런데다가 어렵게 개최된 도쿄올림픽에 무단으로 선수를 보내지 않는 괘씸죄를 저질렀다. 그러니…
여기에 ‘…이 사실이라면’이라는 한국에서 유행하는 어투를 빌리면 복잡한 국제정치 뒤안길에서 미국의 압력이 가해져 IOC는 초강경수를 발동한 거라는 ‘합리적 추측’도 가능하지 않을까.
“문재인과 바이든은 외교문제에서 심각한 의견 차이를 보이고 있다. 바이든은 문재인이 오직 김정은만 바라보는 이른바 평화프로세스라는 것을 포기할 것을 원하고 있다. 문재인은 그러나 아무 성과도 없는 그 평화프로세스를 계속 고집하고 있다.” 내셔널 인터레스트지의 보도다.
그러니까 바이든이 싫어하는 것을 문재인은 기 쓰고 하고 있다는 거다. 바이든의 심기가 불편할 수밖에. 그 불편한 심기가 문재인에게 안 전해진 것은 아니다. 아미 베라 미연방 하원 외교위원회 동아태소위원장 등 일행이 한국방문에서 북한과의 대화에 서두르지 말라고 에둘러 공개적으로 경고한 발언이 그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베이징 동계 올림픽 지지촉구가 주 목적으로 보이는 왕이 중국외교부 장관의 한국방문 발표가 나오기가 무섭게 내려진 IOC의 북한제재조치, 그 타이밍이 아주 절묘하다.
관련해 관심을 끄는 것은 미국 의회가 영미권 5개국의 정보 공유 동맹체인 ‘화이브아이스(Five Eyes)’ 참여국을 한국, 일본 등으로 확대하기위한 관련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문재인 정부가 중국에 경사돼 있다는 것은 미국의 조야도 숙지하고 있다. 그런데 그 한국을 미국이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같은 소수 민주주의 동맹으로 끌어당기다니, 워싱턴일각에서 우려를 보이고 있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러면 도대체 왜.
동맹재건, 동맹확대는 바이든 행정부의 최우선 정책이다. 코비드 팬데믹을 계기로 중국은 전 방위적인 대공세를 펼치고 있다. 미국으로서는 그만큼 중국견제에 절실한 입장이다. 그 일환이 한국 등을 포함해 화이브아이스를 나인아이스로 확대하는 방안인 것이다.
그 개편 내용과 일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문재인 정부를 기밀정보 파트너로 삼겠다는 것이 아니다. 내년 3월9일 대선 후 들어설 한국의 차기정부와 모든 협력 스케줄이 짜여 있다.
그 행간의 의미는 그러니 이런 게 아닐까. 미국이냐, 중국이냐 갈림길에서 차기 한국정부는 확실히 미국을 선택해야 한다는 강한 주문이 깔려 있다. 그리고 내년 한국 대선에서 정권교체에 대한 워싱턴의 자신감도 반영됐다는 뭐 그런….
그러고 보니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했던 육군참모총장을 비롯한 고의 장성들이 현 문 정권하에서 썰물처럼 윤석열 캠프에 합류한 것도 여간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윤석열 수사‘로 번진 대선정국의 미친바람’. 이는 극도의 초조감의 발로가 아닐까. 문 정권에 워싱턴도 아주 등을 돌렸다는 데서 오는. ‘…이 사실이라면’이란 어투를 빌어 해보는 추측이다.
<옥세철 논설위원>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두 세계 초강대국 미국과 소련에 의해 한반도가 남한과 북한으로 강제로 쪼개져, 이어서 미-소 간 '냉전'의 분출구로 6.25 동란이란 우리 동족상잔의 한국전을 치렀고 그 후유증이 70여 년째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지 않은가.
전 소련연방이 해체되고 중국이 미국과 겨루게 된 상황에서 이 두 '골리앗' 중 한 쪽에 '똘만이'로 붙으라고 강요받고 있는 이 시점에 우리 한민족은 어찌해야 할 것인가?
자, 이제, 어떻든, 북한은 북한대로 '핵무기'라는 '돌'을 갖게 되었고, 남한은 남한대로 굶주리지 않고 '밥/빵'을 먹게 되었으니 이제 우리는 더 이상 '거인/괴물'들의 제물이 되지 말고 어서 수 천/백 년 지속되어 온 '사대주의' 말끔히 졸업하고, 두 '골리앗' 장수들을 통쾌하게 때려눕힐 현대판 '다윗 소년이 될 때가 왔어라.
최근 (2021년 7월 8일자) 코스미안뉴스에 올린 우생의 칼럼 옮겨보리라.
[이태상 칼럼] '코스미안의 탈잡초타령'
2021년 7월 6일자 한국일보 뉴욕판 오피니언 칼럼 <한마디> ‘잡초’에 필자 김홍식 은퇴 의사는 이렇게 적고 있다.
“무엇이 잡초이며, 그것을 누가 결정하며, 또 그것을 정리할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를 생각해봅니다. 풀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도 서로 모양은 다르지만 같은 정원에 이웃하면서 오손도손 잘 지내고 있는데 어느 날 누가 와서는 자기를 잡초라고 하여 제거해버리면 어떻겠냐는 것입니다.
서로가 ‘너나 잘해’ 하면 문제가 없으련만 유독 한국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는 남의 것인데도 자기가 주인인 것처럼 간섭하는 문제입니다. 물론 잡초는 나쁜 것이지만 대다수의 경우는 잡초 자체에 의한 피해보다도 그것을, 더 더구나 자기 정원의 경우도 아닌 것을 뽑으려 옥신각신하는 문제로 인한 피해가 훨씬 많음을 봅니다.
내가 속한 기독교계를 예로 든다면 구교는 자기 정원도 아닌 신교를 잡초 이단이라고 하고, 신교 역시 자기 정원도 아닌 구교를, 또 같은 개신교 안에서도 자기와 다르다며 서로 상대방을 잡초 이단이라고 합니다. 특히 한국의 유튜브 설교를 듣고 있노라면 한국 개신교에는 하나님이 너무 많다는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처럼 자기가 하나님이 되어 누가 잡초인지 결정하는 것 자체도 문제인데 그 결정 과정 역시 성경이 기준이 되기보다는 소위 민주주의식이라 하여 다수결로 결정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노아의 홍수, 소돔과 고모라, 좁은 문과 넓은 문의 경우처럼 다수는 거의 항상 잡초 이단이요 소수만이 천국에 가게 되어있으니 오히려 다수를 따르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우리 한국인의 가장 큰 단점이요, 반드시 시정해야 할 것 중 하나가 핏속에 흐르는 구별 차별 정죄사상이라는 것 동의할 것입니다. 같은 정원에 자라는 식물들 중 어느 것이 잡초인지의 감별 방법은 누구든 스스로가 정원사를 자처하며 옆 동료를 제거하려는 그가 바로 그 정원의 잡초라고 보면 거의 틀림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비단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이 아닌가. 얼마 전 미국 NBC방송경연 프로그램 ‘아메리카 갓 탤런트’의 녹화현장에서 초대 심사위원으로 나선 레노는 제작 프로듀서 사이먼 코웰의 반려견 그림을 보며 한식당 메뉴에 있는 음식과 닮았다는 농담을 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면서 인종차별로 미주한안위원회CKA는 물론 미국인 정의 증진AAJC 등 아시안 단체들은 강하게 반발하며 NBC에 레노의 퇴출을 촉구했었다.
우리 냉철히 한번 따져보자. 육식을 하는 한 우린 모두 식인종과 다를 바 없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설혹 채식만 한다 해도 식물도 ‘느낌이 있는 생물 sentient being’이라는 생물학자들의 주장을 믿는다면,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인종주의자 human racist’가 아닌가.
어렸을 때 읽은 동화였는지 콩트(이야기란 뜻의 프랑스어 Conte)가 평생토록 잊혀지지 않는다. 의인화擬人化한 바퀴벌레 가족 이야기다.
여러 해 전에 돌아가셨지만 언젠가 나보다 열 살 위의 도道 닦던 형님이 서울에 있는 조계사에 들러 청담 스님과 더불어 여러 가지 토론을 하셨다고 한다. 한참 열띤 토론 끝에 더 이상 말로 이야기가 될 수 없자 형님이 한 스님보고 수고스럽지만, 뒷간에 가서 똥물 한 바가지만 퍼갖다 달라 하시고는 바가지에 담긴 똥물을 천천히 쭈욱 다 들이키셨단다. 모르긴 해도 그 자리에 있던 스님들은 하나같이 옛날에 원효대사께서 해골바가지에 고인 빗물을 마시고 크게 깨달음을 얻으셨다는 일화를 생각하게 되었으리라.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선도 악도 없다. 사람의 생각이 선도 악도 만든다. There is nothing either good or bad but thinking makes it so.’라고 했다는 것처럼 형님도 세상에 깨끗한 것도 더러운 것도 없다는 것을 말 대신 행동으로 역설하신 모양이다. 그러고 보면 세상에 절대적인 선도 악도 없는데 사람이 제멋대로, 편리한 대로, 형편 따라 선이니 악이니 하며 아전인수식으로 억지 부리고 우겨온 것 같다. 특히 서양의 기독교에서 악마니 천사니, 흑이니 백이니, 선민이니 이방인이니, 기독교 신자가 아니면 죄다 구원받지 못하고 영원히 저주받을 이교도로 낙인찍는가 하면 하나님이 인간을 위한 제물로 다른 동식물 자연 만물을 창조하셨다느니, 정말 말도 안 되는 천하의 얌체 같은 소리를 벌써 몇천 년째 해오고 있지 않은가?
기독교인들이 식탁에 앉아 일용할 양식을 주셨다고 하나님이나 주님께 감사 기도할 때 식탁에 오른 제물들 입장에서 보면 이 얼마나 가증스러울까. 이는 마치 해적이나 강도, 강간범들이 실컷 노략질, 강도질, 계집질해 놓고, 저희들 운수 좋았다고 저희들이 섬기는 귀신한테 고사 지내는 것과 다를 바 없지 않을까. 어디 그뿐이랴. 서양 사람들이 예수의 상징이라는 양고기를 즐겨 먹으면서 동양 사람들이 개고기 먹는다고 야만이니 동물학대니 떠들어 대는 것이나, 저희들이 믿는 것은 종교요 신앙이고, 다른 사람들이 믿는 것은 사교邪敎나 미신迷信이라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프랑스의 작가 빅토르 위고가 쓴 ‘레미제라블’의 주인공 장발장같이 배고파 빵 한 쪽 훔쳐 먹어도 평생토록 벌 받는 세상에 전 세계 땅덩이를 거의 다 훔치고 약탈하며 천하의 못된 짓은 다 해온 자들이 대속代贖한다는 예수의 피로 속죄 받아 지옥에 안 가고 천당 가겠다는 발상부터가 너무 너무 뻔뻔하고 가소로운 서양사람 기독교인들의 ‘육갑’ 아닌가?
그보다는 우리 동양의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의 이치가 훨씬 더 자연스럽고 무리가 없는 것 같다. 어두운 밤은 밤이고, 밝은 낮은 낮이지, 어떻게 어둠은 악이고 빛은 선이라 할 수 있으며, 산은 좋고 계곡은 나쁘다 할 수 있나? 그래서 하늘 천天 자, 천국이니, 땅 지地 자 지옥이란 말이 생겼는지 몰라도, 남자는 선이고 여자는 악이란 말인가? 세상에 어둠이 없으면 빛도 있을 수 없고, 여자가 없으면 남자도 있을 수 없지 않은가?
둘이 서로 보완하고 서로에게 절대불가결인 동전의 양면 격인데 어쩌자고 이쪽 아니면 저쪽, 나 아니면 남, 백이 아니면 흑이라 하는가? 이런 유치한 억지놀음인 ‘서양육갑’에 ‘골빈당’처럼 맞장구치지 말고 우리 동양고유의 ‘음양육갑’ 떠는 것이 천만 배 낫지 않을까? 그리고 고양이가 쥐 사랑하듯 이웃 사랑하는 대신 이웃을 존중해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이 창조되었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인간 특히 서양의 백인, 그 중에도 유태인들이 저희들 형상대로 저희들 하나님 여호와를 만든 것임이 분명하다. 저희들의 단군신화를....
어디 또 그뿐이랴. 우리 가운데 가장 천대받는 사람으로 창녀가 있다. 하지만 그런 창녀조차 예수의 처(?)가 아니면 벗이 아니었나. 신약성서 누가복음에 나오는 막달라 마리아 말이다. 동서고금을 통해 저지른 것은 이루 필설로 다 형언할 수 없는 잔악무도하고 천인공노할 남성들의 만행이 정복이니, 승리니 하는 영광된 훈장으로 장식돼 왔다. 창녀는 몸을 판다기보다 서비스를 제공한다. 창녀의 서비스는 다른 많은 직업적인 서비스보다 솔직하다. 눈가리고 야옹 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선적이고 자비롭기까지 하다. 예를 들어 직업적인 날강도, 날도둑, 날사기꾼이라 할 수 있는 일부 정치인, 실업인, 종교인이 부리는 농간에 비하면....
파는 것으로 말할 것 같으면 창녀나 장사꾼만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좋든 싫든 뭔가를 팔아먹고 산다. 육체노동이든 정신노동이든 감정노동이든 노동을 파는 것이 노동자라면 예술을 파는 것이 예술인이고, 법률지식이나 의료기술을 파는 것이 변호사나 의사라면 하느님이나 귀신 또는 성인, 성자, 예수, 석가모니 등의 이름을 파는 기도 장사꾼이 종교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독교와 천주교에서 성찬식으로 예수의 살과 피를 상징한다는 빵과 포도주를 나누지 않는가? 그렇다면 예수야말로 인류의 대속代贖을 위해서이건 아니면 그의 과대망상증에서였건, 또는 예수 자신의 꿈보다는 기독교인들의 이기적인 해몽이든 간에 어떻든 제 몸을 그 누구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오래도록 팔아 온 남창 중의 남창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면 단군할아버지와 곰할머니의 후손이든 아니면 아담과 이브의 자손이든 또는 닭의 알에서 태어났다는 신라 태조 박혁거세의 후예이든 숫처녀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났다는 예수의 제자들이든, 그 어떻든 간에, 우리 모두 따져보면 다 일종의 창녀나 남창들이 아닐까?
다만 보통 사람들은 그 속살과 피(붉은 피든 흰 피든 간에) 만 즐기는데 성인聖人 아닌 性人들은 그 껍데기 털까지 좋아하는가 보다. 예수는 눈물로 그의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에 입 맞추고 향유를 부은 막달라 마리아의 죄를 사하여 주었다 했고, 한때 우리 사회에 물의를 빚었던 용화교 교주 서백일(본명 한춘)은 수많은 여신도들을 농락 겁탈하고 그들로부터 뽑은 음모陰毛로 만든 음모방석을 즐겨 깔고 앉았었다 하지 않는가? 우리 모두 어서 ‘서양육갑’ 졸업할 일이어라.
지지난해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많은 행사가 있었고 여러 사람들의 글이 각종 언론 매체에 게재되면서 일제 강점기의 역사를 반추하는 계기가 되었다.
약육강식의 자연계뿐만 아니라 동서고금의 인류 역사를 통해서 보면 흥망성쇠와 생사여탈은 계속되고 있다. 가까운 예로 같은 민족인 고구려, 백제, 신라가 원수처럼 각축을 벌였던 시대가 있지 않았는가.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친중, 친일, 친러, 친미를 할 수밖에 없었던 시절도 있었다.
조선 왕조 때에는 당파싸움으로 국력을 탕진하다 못해 일본의 속국으로 36년 동안 지배를 받았다. 1945년에 해방을 맞았으나 미소 냉전의 분출구로 한국전이라는 동족상잔까지 겪었고 그 후유증이 71년째 이어져 오고 있다.
일제 강점기 때의 징병과 징용, 성노예 등으로 잡혀간 사람들은 일본 제국주의가 저지른 어두운 역사의 가장 큰 피해자들임에 틀림없지만, 따지고 보면 평범한 일본인들 역시 2차대전의 희생자요 피해자들이다.
이런 질곡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은 없을까? 전 세계를 식민지화하고 자연생태계의 질서를 파괴해 온 서양 물질문명의 ‘원죄의식’과 ‘선민사상’에서 탈피하여 우리나라의 홍익인간/홍익만물과 인내천 사상을 온 세상에 펼치는 것이 답이 되지 않을까. 자연의 섭리를 따르는 것 말이다. 이것이 바로 우주의 나그네인 ‘코스미안’ 의 참된 소명이고 친인親人, 친지親地, 친천親天파가 되는 길이 아닐까.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인류역사상 세계 최대의 쓰나미Tsunami를 맞은 이 시점에時點에 지난 75년 아니 2천여 년의 세월을 돌아보면서 2020년 초에 출간된 우생愚生의 졸저拙著 ‘유쾌한 행복론’에 실린 졸문拙文 ‘코스미안 비전은 온 인류의 시대정신時代精神 –zeitgeist’과 지난 가을에 나온 영문판 ‘코스미안 랩소디Cosmian Rhapsody’에 수록된 ‘코스미안 비전이 열쇠Cosmian Vision Is the Key’ 그리고 ‘코스미안 구도求道의 길The Cosmian Way Is the Way to Seek’을 관심 있는 독자들을 위해 아래에 옮겨보리라.
코스미안 비전은 온 인류의 시대정신時代精神 zeitgeist
8·15 광복과 함께 질풍과 노도처럼 한반도에 밀어닥친 미-소 냉전의 광풍狂風 속에 휩싸인 가운데 서양풍西洋風 사대주의 사조事大主義思潮에 맞서 역풍逆風을 일으킨 인물 두 사람을 들라면 북한의 김일성과 남한의 문선명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전자前者는 공산주의가 아닌 골찬주의 ‘주체사상主體思想’을 주창했고, 후자後者는 분쟁과 파쟁을 일삼는 세상의 모든 종교를 통일하는 ‘통일교統一敎’를 창시했으니까. 그 내용이나 결과는 차치물론且置勿論 내버려 두고 문제 삼지 않기로 하고, 그 이름만으로도 큰 박수를 받을 만하지 않은가. 역사적인 평가는 후세 사가史家들에게 맡긴다고 하더라도 이들이 제시한 비전만 큼은 우리가 기꺼이 기탄忌憚없이 적극 수용受容/受用/收容 /收用할 수 있지 않으랴. 우리 단군의 홍익인간弘益人間 /홍익만물弘益萬物 그리고 천도교天道敎의 인내천人乃天, 곧 코스미안사상으로서 말이다.
영국 시인 존 밀턴John Milton (1608-1674)은 그의 대서사시 ‘실낙원Paradise Lost (1667)에서 ‘악마의 광란, 침울한 우울증, 그리고 달빛을 쏘여 실성失性한 광증狂症’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30여 년 전 영국의 TV에서 영국의 젊은이들이 통일교에 포섭 세뇌되어 이용 착취당하고 있다는 프로가 방영된 후 영국의 신문마다 ‘Moonie’라는 통일교가 반사회적反社會的이니, 가정을 파괴한다느니 야단이었다. 이 와중渦中에 통일교 신자가 된 손자를 둔 한 영국 할아버지가 보낸 다음과 같은 편지가 영국의 진보주의적 전국지 신문 가디언 The Guardian에 실렸었다.
“내 손자는 현재 21세로 3년 전 통일교 신자가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그들의 규칙대로 술, 담배, 마약, 문란한 섹스 성생활을 기피해왔습니다. 이와 같은 규율이 반사회적이란 말입니까. 그 아이 부모 말로는 이웃들도 자식들이 술집이다 디스코다 싸돌아 다니면서 마약 밀매꾼들의 밥이 되는 대신 차라리 통일교도들이 되었으면 하고 바란답니다. 내 손자는 6주마다 집에 오면 행복하고 화평한 얼굴로 집안 궂은일 다 맡아 하고, 옛날에는 긴 머리 장발에다 막살던 아이인데 지금은 복장과 외모부터가 아주 참하고 생기있는 딴사람이 되었답니다. 대화를 해 봐도 그가 세뇌됐다는 아무런 낌새를 찾아볼 수 없고, 그가 믿게 된 통일교의 교리가 기독교의 기존 정통파 교리와 좀 다르지만, 근본적으로는 같은 것 같습니다. 그러니 통일교가 가정을 파괴한다고 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고 보면 지금으로부터 60여 년 전 당시 18세에 어려서부터 주일학교와 교회를 다닌 끝에 세례받고 침례교 신자가 되었을 때 나야말로 세뇌되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대중 매스컴을 통해 인체에 해롭고 반사회적인 술과 담배 선전광고로 우리 모두 잘못 세뇌되어 오고 있지 않습니까?"
공교롭게도 또 그 몇 년 전 영국의 국영방송 BBC ‘리스The Reith Lectures’ 공개강좌 연사로 초빙된 미국의 그 당시 미시간 대학 알리 마즈루이(Ali Mazrui 1933-2014) 교수는 최근에 서방국가에서 전도(傳道)하며 개종(改宗)시키는 아프리카와 아시아 출신 선교사들은 그동안 오래도록 서양사람들이 처방해 온 약(藥)을 그들 자신들에게도 맛보게 해주고 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의 문선명 목사가 이끄는 통일교 운동에 모여드는 서양의 자식들 부모가 느끼는 억하심정(抑何心情)을 자기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마즈루이 교수는 말한다.
“내게는 아들 셋이 있습니다. 아프리카 사람으로 나는 태어났고, 내가 아직도 아프리카에 살고 있었다면 내 아들들도 선교사들의 전도 대상이 됐을 것입니다. 물론 선교사들은 서양의 백인들인 감리교나 가톨릭 계통이었을 것입니다.”
서양 백인들의 제국주의적 식민지 질서에 쉽게 또 빨리 현지 원주민들을 굴종 예속시키기 위해 백인 선교사들은 사랑과 친절, 용서와 인내 등 여성적 미덕(美德)을 주입 세뇌시켜 이들의 반항심과 투쟁 정신을 약화시켜 정신무장을 해제시킨 후 백인들의 세계 지배를 가능케 했다고 정치학 교수인 그는 본다. 아프리카와 아시아 그리고 아메리카 대륙 및 호주와 뉴질랜드 원주민들의 고유한 정신문화는 백인들의 독선독단적인 종교적 과학적 물질문명의 세속적 침공을 받아왔음을 상기시키면서 문선명 통일교 교주가 이러한 침공에 대응, 처음으로 역침투, 역선교의 역공(逆攻)을 개시한 것 같다고 마즈루이 교수는 관찰한다.
만약 세계 2차대전에서 일본이 승리했다면 아마도 일본의 신도(神道 Shinto) 신사참배(神社參拜)에 앞장섰을 한국 사람들이 오늘날 한국과 미국 등지에서 교회에 많이 다니고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서양의 해적들이 총칼은 물론 원자폭탄으로 세계를 정복하지 못했었다면 저들의 종교 기독교가 오늘날처럼 세계 도처에서 판치게 되지 못하였으리라. 이렇게 볼 때 서양 백인 선교사들에 의해 개종된 모든 유색 기독교인들을 좀 극단직으로 표현해서 정신적으로 거세(去勢)당한 일종의 정신적인 내시(內侍)’라고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미 고인(故人)이 되셨지만, 그분이 아직 살아 계실 때 27년 전 나는 아래와 같은 편지 한 통을 문선명 교주님께 띄웠다.
문선명 선생님께
문 선생님과 일면식은 물론 통일교에 대해 아는바 아무것도 없는 무지한 소생이 극히 외람되나마 삼가 이 글을 올립니다. 뭣 보다 통일교의 통일이란 이름부터가 분열될 대로 분열된 온 인류에게 가장 호소력 있고 매력적입니다. 지난해 전 세계 1백 40개국 8만 명의 지성들이 자리를 같이한 제1회 세계 문화 체육대전이 한국에서 개막됐다는 뉴스(아니 이야말로 복음(福音)이라 해야겠지요)를 접했을 때 정말 가슴 벅찬 감격에 환호성(歡呼聲)의 경탄성(敬歎聲)이 절로 나왔습니다.
세계 규모에 걸치는 획기적인 대전(大展)에서는 국제과학통일 회의, 세계평화교수협의회 세계대회, 세계평화종교연합, 세계평화연합, 세계평화여성연합, 대학원리연구회 세계대회, 체육대전, 등의 행사와 실로 장관(壯觀)일 수밖에 없는 3만여 쌍 6만여 명의 국제합동결혼식이 베풀어졌다는 보도에 이 대전(大展)의 창시자인 문 선생님께 큰 박수와 진심으로 깊은 경의(敬意)를 표해 마지않으면서 이 모든 행사가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이름뿐인 아닌 문자 그대로 명실상부(名實相符)한 결실(結實)맺기를 축원하는 바입니다.
지난해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TIME)의 ‘나라 없는 사람’이란 표제로 구(舊)소련연방 대통령 미하일 고르바초프(Mikhail Gorbachev, 1931 - )의 실각을 다룬 커버스토리 기사를 읽고 어떤 한 독자가 보낸 다음과 같은 글이 타임지에 또한 실렸습니다. (타임지 1992년 1월 13일자) ‘고르바초프에게 편지를 띄울 수 있다면 나는 이렇게 쓰겠다’는 요지였지요.
“당신은 결코 나라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세계가 당신의 나라이고 우리 모두 충심으로 당신을 환영합니다. 당신은 그 짧은 시간에 그토록 큰일을 했고 앞으로도 더욱 많은 일할 사람입니다. 온 인류를 청중으로 세계란 강당에서 당신의 비전과 지혜를 나눠줄 수 있습니다. 당신은 참으로 위대하고 최고의 찬사를 받을 만합니다.”
어쩌면 이 말을 문 선생님께도 그대로 해드릴 수 있겠습니다. 반세기에 걸쳐 꽁꽁 얼어붙었던 동서냉전의 빙산을 고르비가 녹여 버렸다면 2천여 년에 걸쳐 동서양 간에 쌓이고 내려 깔려온 어둠의 장막을 문 선생님께서 걷어 올려주시고 우리 모두의 가슴 속의 빙산을 하루빨리 녹여주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물질과 탐욕에 어둔 눈을 뜨고 참빛을 보아 우주 나그네 코스미안으로 환골탈태(換骨奪胎) 새롭게 태어날 수 있도록 말입니다.
대단히 무엄(無嚴)한 표현이 되겠으나 남성 상위를 영어로는 ‘선교사 체위(Missionary Position)’라 하지요. 우리말 ‘감투거리’와는 정 반대되는 뜻으로요. 그리고 영어에는 스스로를 낮추어 아랫사람에게 짐짓 겸손하게 은혜나 베푸는 듯이 겸허한 덕색(德色)질을 하고 생색(生色)낸다는 뜻으로, 함께(con)와 내려간다(descend)란 두 단어를 합성한 condescend란 복합어가 있지요. 본래 선교사란 종교를 널리 전도 전파하는 사람을 일컫는 것이었겠지만 주로 기독교의 외국 전도에 나선 사람을 지칭해 그렇게 불러온 것 같습니다. 이와 같은 선교사들은 어디까지나 condescend하는 입장에서 무지몽매(無知蒙昧)하고 미개(未開)한 야만인(野蠻人)들을 계몽(啓蒙)하고 교화(敎化)시킨다는 소명감(召命感)과 사명감(使命感)에 불타는 광신적(狂信的), 정신적(精神的) 십자군(十字軍)이 아니었습니까.
예수가 사람의 탈을 쓰고 지상에 나타난 하느님으로 고자세(高姿勢)를 취했었다면 문 선생님께서는 저자세(低姿勢)를 취해 주십시오. 사람에서 출발해서 우리 모든 사람 아니 우주 자연 만물이 하나의 ‘하나님’ 됨을 밝혀 보여 주십시오. 진정한 세계 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 통일운동은 재래식(在來式) 기독교의 condescend하는 선교 사업으로는 절대로 안 될 일이고, 그 정 반대로 함께 오르는 conascend 하는 것이라야 할 것 같다는 우견(愚見) 아닌 현견(賢見)을 감(敢)히 말씀드려 보는 것입니다.
나와 너, 남과 여, 백과 흑, 선과 악, 하늘과 땅, 선민과 이방인, 따로따로 상(上)과 하(下)로 분리되는 약육강식(弱肉强食)의, 마치 고양이가 쥐 사랑하듯 하는 인류애나 이웃사랑이 아닌 참사랑으로 인종과 국적, 사상과 종교, 남녀성벌, 직업의 귀천, 사회계층 불평등과 빈부격차(貧富隔差)의 양극화(兩極化)를 죄다 타파(打破)하고 초월(超越)해 온 인류를 그야말로 한 인간가족으로 통일하는 통일운동에 박차를 가해주십사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다 함께 향불처럼 승화되어 하느님으로 피어오르도록 말입니다. 그러면 비틀즈의 일원이었던 존 레넌(John Lennon 1940-1980)이 그의 ‘상상해보게(Imagine)’란 노래로 꾼 꿈이 하나의 예언 같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소아(小我)를 벗어난 대아(大我), 곧 천인합입(天人合一)의 무궁(無窮我) 코스미안으로 무궁화(無窮花) 아니 코스모스 동산에서 만세동락(萬歲同樂) 할 날이 어서 오기를 고대합니다.
해심(海心) 이태상(李泰相) 배상(拜上)
Cosmian Vision Is the Key
Are Koreans geniuses in concocting trendy catchphrases? They are like “TWIWOL” (“트인낭” in Korean), initials for “Twitting Is Waste Of Life,” and “KAFAIN depression” (“카페인 우울증” in Korean), for Kakao (the operator of Korea’s dominant mobile messaging app Kakao Talk), Facebook and Instagram depression. Many SNS users are reportedly becoming addicts and ending up depressed.
This must be a reflection of the reality we are experiencing these days. The number of Twitter followers of Trump, the embodiment (to some, if not most, people) of abnormality, absurdity, untruth is said to be in the 57,300,000s and his supporters are to be 40% to 50% of U.S. voters.
One may recite this cry along with ‘THE MADMAN: His Parables and Poems’ (1918) by Kahlil Gibran (1883-1931):
“THE PERFECT WORLD”
"God of lost souls, thou who art lost amongst the gods,
hear me:
Gentle Destiny that watchest over us, mad, wandering spirits,
hear me:
I dwell in the midst of a perfect race,
I the most imperfect.
I a human chaos, a nebula of confused elements,
I move amongst finished worlds ㅡ
peoples of complete laws and pure order,
whose thoughts are assorted,
whose dreams are arranged,
and whose visions are enrolled and registered.
Their virtues, O God, are measured,
their sins are weighed,
and even the countless things that
pass in the dim twilight of neither sin nor virtue
are recorded and catalogued.
Here days and nights are divided into
seasons of conduct and governed by
rules of blameless accuracy.
To eat, to drink, to sleep, to cover one’s nudity,
and then to be weary in due time.
To work, to play, to sing, to dance, and then
to lie still when the clock strikes the hour.
To think thus, to feel thus much,
and then to cease thinking and feeling
when a certain star rises above yonder horizon.
To rob a neighbor with a smile,
to bestow gifts with a graceful wave of the hand,
to praise prudently, to blame cautiously,
to destroy a soul with a word,
to burn a body with a breath,
and then to wash the hands
when the day’s work is done.
To love according to an established order,
to entertain one’s best self in a preconceived manner,
to worship the gods becomingly,
to intrigue the devils artfully ㅡ
and then to forget all as though memory were dead.
To fancy with a motive,
to contemplate with consideration,
to be happy sweetly,
to suffer nobly-
and then to empty the cup
so that tomorrow may fill it again.
All these things, O God, are conceived with forethought,
born with determination, nursed with exactness,
governed by rules, directed by reason,
and then slain and buried after a prescribed method.
And even their silent graves that lie within
the human soul are marked and numbered.
It is a perfect world,
a world of consummate excellence,
a world of supreme wonders,
the ripest fruit in God’s garden,
the master-thought of the universe.
But why should I be here, O God,
I a green seed of unfulfilled passion,
a mad tempest that seeketh neither east nor west,
a bewildered fragment from a burnt planet?
Why am I here, O God of lost souls,
thou who art lost amongst the gods?"
Nevertheless, crying and wailing over the reality we are facing will be so futile.
Since there’s no answer to our questions, we’ve got to answer them ourselves.
Even though ours is not “the perfect world,” we are born with perfect key to turn our chaotic world into Cosmos. The key is none other than one’s Cosmian Vision of Love Arainbow.
The Cosmian Way
“I’m bored.” It’s a puny little phrase, yet it has the power to fill parents with a cascade of dread, annoyance, and guilt.
Thus begins The New York Times Sunday Review (February 3, 2019) Opinion Column article “Let Children Get Bored Again” by Pamela Paul, the editor of The Book Review and a co-author of the forthcoming book ‘How to Raise a Reader’ by Maria Russo and Pamela Paul (published in September 2019). “Boredom spawns creativity and self-sufficiency,” she argues.
‘The Artist’s Way’ by Julia Cameron (1948 - ) has sold more than four million copies, as the author puts it, “that has been a lodestar for blocked writers and other artistic hopefuls for more than a quarter of a century.”
The first printing was about 9,000 copies, said Joel Fotinos, formerly the publisher at Tacher/Penguin, which published the book. According to Mr. Fotinos, there was concern that it wouldn’t sell. “Part of the reason,” Mr. Fotinos said, “was that this was a book that wasn’t like anything else. We didn’t know where to put it on the shelves-did it go in religion or self-help? Eventually, there was a category called “creativity,” and “The Artist’s Way” launched it.”
Now an editorial director at St. Martin’s Press, Mr. Fotinos said he is deluged with pitches from authors claiming they’ve written “the new Artist’s Way.” “But for Julia, creativity was a tool for survival,” he said. “It was literally her medicine and that’s why the book is authentic, and resonates with many people.”
Needless to say, this must be the case for everybody, young and old, not just for writers and so-called “artists.” Each and every one of us was born with “creativity” in order to swim, not to sink.
Just as Kahlil Gibran (1883-1931) comments in this book of aphorisms, poems, and parables, ‘Sand and Foam (1926):
"I am forever walking upon these shores,
Betwixt the sand and the foam.
The high tide will erase my foot-prints,
And the wind will blow away the foam.
But the sea and the shore will remain
Forever.
Once I filled my hand with mist.
Then I opened it and lo, the mist was a worm.
And I closed and opened my hand again,
and behold there was a bird.
And again I closed and opened my hand,
and in its hollow stood a man with a sad face,
turned upward,
And again I closed my hand,
and when I opened it there was naught but mist.
But I heard a song of exceeding sweetness.
You may have heard of the Blessed Mountain.
It is the highest mountain in our world.
Should you reach the summit
you would have only one desire,
and that to descend and
be with those who dwell in the deepest valley.
That is why it is called the Blessed Mountain.
Every thought I have imprisoned in expression
I must free by my deeds."
This is rather The Cosmian Way, methinks.
Cosmian Way Is the Way to Seek
“Nobody knows everything about anything.”
This is one of the principles of General Semantics launched in 1933 by Polish American originator Alfred Korzybski (1879-1950) with the publication of ‘Science and Sanity: An Introduction to Non-Aristotelian Systems and General Semantics’.
In other words: “We cannot imagine, think, say, understand, know all about anything or anyone ㅡ including ourselves.”
“길 없는 길” (The Way Without a Way) is a four-volume narrative written by South Korean writer Choi In-ho (1945-2013) about the life journey of the famous Korean Buddhist Seeker 경허(Gyunghuh 1849-1912).
The core message of this book ‘Cosmian Rhapsody’ (2020) may be put this way: Cosmian Way is the way for us all to seek.
[이태상 칼럼] '유엔(UN)을 대체할 씨유(CU - Cosmian Union) 탄생을 축원하며'
오늘 아침 (2021년 9월 20일자) 미주 뉴욕판 중앙일보 오피니언 [오늘의 노트] "유엔(UN)' 필자 류은주 엑세스 바이오 CBDO는 코로나 확산과 백신 불평등 같은 전혀 새로운 글로벌 이슈들 앞에서 유엔이 여전히 효과적인 국제협력을 끌어낼 것인가에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고 이렇게 적고 있다.
올해는 대한민국 유엔 가입 30주년이 되는 해이다. 비록 신청 43년만인 지난 1991년에서야 비로소 북한과 동시에 회원국으로 승인되었지만, 오늘날 우리나라는 사무총장을 배출하고 오준 전 대사가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의장을, 조태열 전 대사가 UNDP등 3개 기구 통합 집행이사회 의장을 맡을 정도로 국제 사회에서 지위가 향상되었다. 특히, ‘북한 주민은 아무나가 아니다’로 전 세계에 울림을 준 오준 전 대사와 ‘Speak Yourself’라는 메시지로 전 세계 청소년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준 BTS의 연설은 여전히 화제다.
유엔총회의 첫 연설자는 통상, 유엔 주재국 미국이 아닌 브라질인데 그 이유는, 유엔 설립 초기에 아무도 선뜻 총회에서 첫 연설자로 나서지 않을 때 브라질 대표가 자발적으로 나섰기 때문이라고 한다. 마케팅의 주요 전략인 퍼스트 무버의 장점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필자도 어릴 때 유엔에서 일하며 어려운 다른 나라를 도와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2차 대전이 끝난 1945년 10월 24일 창설되어 대한민국의 탄생과 한국전 참전, 전후 복구 등에 기여한 유엔. 유엔의 날이 25년간 우리나라 국가 공휴일로 지정되어 기념될 정도로 큰 인기가 있었다니 아무래도 어릴 적 그런 영향을 받았던 것 같다. 화이자 뉴욕 본사로 발령을 받았을 때, 한때 동경의 대상이던 유엔 옆이라서 더 반가운 마음이었다.
그 후로, 한미 바이오 제약 전문가로서, 혹은 한인 커뮤니티 리더로서 다양한 유엔 관련 행사에 참여하고, 그를 통해 영화 ‘올드보이’의 심현정 영화음악 감독 등 다양한 분야의 좋은 분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덤이었다고나 할까. 올 8월에는 유엔 공보국 지위를 갖는 국제 비영리 단체 ‘미래 희망기구’와 유엔 대표부의 공동 주최로 ‘제17기 유엔 청소년 전문가 포럼’이 일주일간 열렸다. 필자도 전문 강사로 초청되어 유엔 담당관들과 세계 각국의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과 함께 강의하였다. 요청받은 주제는 유엔 17개 지속 성장 개발 아젠다 중 건강과 환경 분야로, ‘COVID 19과 그린 플라스틱’이었다. 열의에 찬 미래 세대 청소년들과 함께한 보람된 시간이었다.
1차 대전 후 전쟁의 재발을 막기 위해 설립되었던 ‘국제연맹’과, 2차 대전 후 역시 국제 평화 유지 목적으로 창설된 유엔은, 이렇듯 국제 교육, 경제, 문화, 환경, 인권, 분쟁 조정 등을 통해 국제 협력을 주도하거나 도모하는 역할을 함으로써 그 미션을 실천하는 것 같다. 국제연맹과 유엔이 각각 1차, 2차 세계 대전 후 국제 상황에 따라 창설된 기구이다 보니, 미래창조과학부 윤종록 전 차관의 첫 소설 ‘대통령 정약용’에는 사망자 수로 치자면 3차 대전에 맞먹는 코로나 사태 후에는 또 새로운 시대 요구에 맞춰 세 번째 국제기구인 SCOIO(six continents in one)가 창설된다는 재미있는 설정도 나온다. 코로나 확산과 백신 불평등 같은 전혀 새로운 글로벌 이슈들 앞에서 유엔이 여전히 효과적인 국제 협력을 끌어낼 것인가에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류은주 / 엑세스 바이오 CBDO>
유엔 창설 취지는 좋고 훌륭했으나 동안 얼마나 그 이상적인 취지에 상응하는 역할을 해왔는지에 대한 논란이 있어왔고, 강대국들의 힘에 논리만 추종하는 허울 좋은 '허수아비'로 유명무실한 '공룡' 같은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제 그 어떤 미봉책으로도 현재 지구촌 온 인류가 직면한 생태적 존속과 멸망, 생사존망生死存亡의 위기를 극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지 않았는가.
이젠 바야흐로 우주적인 발상의 전환이 시급한 시점이다. 현듯 하나의 빛나는 비전이 떠오른다. 땅히 모름지기 내년 봄에 있을 한국의 대선에서 누가 당선되든 그의 임기중에 필연적으로 기어코 한반도의 평화적인 통일이 이루어지고 남한과 북한이 하나로 뭉쳐 온 인류를 선도先導, '유엔UN' 을 대체할 '씨유CU - Cosmian Union'가 탄생, 그 본부가 강원도 평창에 설립되는 정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는 현실이 실현되는 아주 선명한 비전이...
지난 2019년 8월 17일자와 2020년 7월 24일자 그리고 2021년 9월 16일과 21일자 코스미안뉴스에 올린 우생의 칼럼 글 둘 다시 올려보리라.
[이태상의 항간세설] <'코스미안 사상'이란 무엇인가>
점차 악화되고 있는 지구의 기후변화와 한-일 갈등, 미-중 경제전쟁의 와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절망하고 있다. 미국, 영국, 러시아, 중국, 일본 등 가릴 것 없이 세계는 지금 백인-강자-자국우선주의가 판을 치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주역에 나오는 ‘궁즉통’이란 말을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궁즉변, 변즉통, 통즉구(窮則變, 變則通, 通卽久)를 줄인 말인 궁즉통은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며, 통하면 오래간다는 뜻이다. 우주 자연의 이치는 동트기 직전이 가장 어둡고 밤이 깊을수록 별은 빛난다. 우리가 날리는 연(鳶)도 바람을 탈 때보다 거스를 때 가장 높이 오르지 않던가.
현 시국과 상관없이 내 주변에서도 조울증을 앓는 사람이 많다. 조울증은 의학용어로는 양극성 장애(兩極性障碍), 영어로는 ‘bipolar disorder’라는 병이다. 2006년에 출간되어 50여 개국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3천만 권 이상 팔린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The Secret'의 저자 론다 번 (Rhonda Byrne)은 호주의 방송인이다. 그녀는 50대 중반 갱년기에 심한 우울증에 빠졌으나 약물에 의존하지 않고 독서로 극복해보려고, 동서고금의 철학, 종교, 문학 서적을 통독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하게 되었고 이를 여러 사례를 들어가며 밝힌 내용이 ‘The Secret’이다.
론다 번이 밝힌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우리말로는 '끼리 끼리' 영어로는 'Like attracts like(유유상종)'이라 할 수 있겠다. 다시 말해 네가 만사를 긍정적으로 낙관하면 온 우주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끌어내고, 부정적으로 비관하면 부정적인 결과를 얻게 된다는 이야기다.
예를 들면 가장 객관적이고 정확하다는 다큐멘터리 영상도 똑같은 사람과 지역 및 사회를 대상으로 하더라도 찍는 사람에 따라 전혀 상반되는 결과물이 나오게 마련이다. 어디에다 초점을 맞추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같은 나라와 지방을 여행하며 쓴 여행기라도 여행작가에 따라 전혀 다른 내용이 되고 똑같은 책을 읽더라도 독자에 따라 책 내용이 판이하게 달라지지 않는가.
최근 새로운 유행어로 회자되는 의학용어가 있다. 다름 아닌 '다이돌핀(didorphin)'으로 '엔돌핀(endorphin)'보다 4천 배 효과가 크다고 한다. 우리가 누군가를 또는 뭔가를 좋아하고 사랑할 때 우리 몸 신경계통에서 자연적으로 생성 분비된다고 한다. 이 만병통치의 '묘약'과 정반대로 백약이 무효한 만병의 근원인 암세포는 우리가 누군가를 또는 뭔가를 싫어하고 미워할 때 발생 전이된다고 한다.
'태양 아래 새것이 없다'는 말을 달리 표현하여 우리 동양에서는 '자업자득'이라 하고 서양에서는 'What goes around comes around(인과응보)‘라고 한다. 이는 내가 다른 사람의 복을 빌어줄 때 나부터 복을 받게 되고 남을 저주하면 바로 내가 저주받게 된다는 뜻이다.
우리 모두가 '작은 그림'은 그릴 수 있지만 '큰 그림'은 누군가에 의해 그려지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잘 살펴보면 작은 그림들이 모여 큰 그림이 만들어진다. 한 방울 한 방울 물방울들이 모여 대양을 이루듯이 말이다.
그러니 '작은 나'의 이익만 챙기다 보면 '소탐대실'하게 되고 '큰 나'의 이익을 도모하면 홍익인간을 넘어 홍익만물(弘益萬物)이 되지 않겠는가. 이것이 바로 '코스미안 사상'이다. 코스미안(Cosmian)은 지구별로 소풍 와서 가슴 뛰는 대로 살아가는 우주적 존재, 우주 나그네라는 뜻의 신조어다.
[이태상 칼럼] '코스미안대학 설립'
기독교인들이 주기도문(主祈禱文) 외우듯이 청소년 시절부터 내가 불러오고 있는 신종(新種) 주기도문 별곡(別曲)이 있다.
독일 태생 스위스 작가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1877-1962)의 ‘데미안(Demian 1919)’에서 에바 부인은 “사람이 그 어떤 무엇을 절대적으로 절실하게 필요로 하고 아쉬워하다가 그토록 간절히 원하던 것을 찾아 얻게 될 때 이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고 필연인 것으로 다름 아닌 자신의 절절한 소망과 꿈이 갖다 주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Just as Frau Eva in Hermann Hesse’s Demian says: “You must not give way to desires which you don’t believe in…You should, however, either be capable of renouncing these desires or feel wholly justified in having them. Once you are able to make your request in such a way that you will be quite certain of its fulfillment, then the fulfillment will come.”
우리말에 ‘말이 씨가 된다’고 ‘입턱이 되턱 된다’ 하지 않는가. We have a saying in Korea: “Watch your words. They become seeds. What you utter comes true.”
중국에도 이런 설화(說話)가 있다. 어떤 신령(神靈) 할아버지가 어느 시골 소년에게 신비(神秘)스런 붓 한 자루를 준다. 그 붓으로 그리거나 쓰는 건 다 사실이 된다.
미국의 만화 작가이자 아동 도서 삽화가 크로켓 존슨(Crockett Johnson, the pen name of the American cartoonist and children’s book illustrator David Johnson Leisk 1906-1975)의 ‘해롤드와 보라색 크레용(Harold and the Purple Crayon, 1955)’이란 어린이 그림책이 있다. 해롤드가 그리는 것은 무엇이든 다 현실이 된다는 이야기다.
아, 그래서 미국의 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델러노 루스벨트 (Franklin Delano Roosevelt 1882-1945)의 부인 엘리너 루스벨트(Anna Eleanor Roosevelt 1884-1962)도 이런 말을 남겼으리라.
“미래는 자신이 꾸는 아름다운 꿈(이 이루어질 것)을 믿는 사람의 것이다. (The future belongs to those who believe in the beauty of their dreams.)”
한국전쟁으로 잿더미 속에서 불사조처럼 일어난 한국이 그 좋은 예가 아니랴.
세계 최빈민국의 하나였고, 지게와 소달구지밖에 없던 나라에서 한국산 전자제품이 세계 각국 가정에 보급되고 한국산 자동차와 배가 전 세계 각국 도로와 오대양을 누빌 날이 있을 것을 그 누가 상상이나 했던 일인가.
한국인 반기문이 유엔사무총장을, 김용이 세계은행총재를 역임하리라고, BTS가 비틀스를 능가하는 세계적인 인기를 끌 날이 있으리라고, 한국의 영화가 세계적인 영화제에서 최고의 작품상, 감독상, 주연상, 인기상 등을 타게 될 날이 있을 것이라고, 한국의 ‘아리랑’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로 선정될 날이 있으리라고, 현재 코비드19 방역에 있어서 한국이 모범국가가 되리라고, 세계인의 여행지 선호도에서 한국이 최우선이 될 날이 있을 것을 그 누가 꿈속에서라도 예측 예언할 수 있었을까.
지난 1988년 하계 올림픽 때 4강까지 오른 한국, 우리의 구호가 ‘꿈은 이루어진다 (Dream Comes True)’였듯이, 앞으로도 우리 대망의 꿈은 계속해서 하나둘 이어서 반드시 이루어지리라.
그 선발주자(先發走者)로 지난 2018년 7월 5일 창간된 글로벌 인터넷신문 코스미안뉴스와 장차 노벨상을 능가할 올해로 제2회째 코스미안상 공모, 그리고 지난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강원도 평창에 글로벌 온라인 코스미안대학 설립이 현재 추진중이다. 그래서 세계 각국으로부터 한국으로 유학 올 날이 머지않았으리라.
국가적인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나 한 사람의 개인적인 사례를 들어보더라도, 한국동란 때 미군부대 하우스보이로 일하면서 당시 미군부대 사령관의 입양과 뉴욕의 줄리아드 진학 제의를 사절했었고, 또 그 이후로 그 당시 대전에 있던 CAC (유엔의 한국원조 기구) 영국인 부사령관의 영국 옥스포드 대학 진학 제의가(술과 담배를 많이 해서였는지 영국으로 귀국 전에 부사령관이 암으로 세상을 떠나) 수포가 되었었다.
하지만 세상일 정말 알 수 없어라. 내가 꿈도 꾸지 않았었고, 또 내가 어린 딸들에게 전혀 한 번도 언급조차 한 일 없었는데, 어쩜 아빠가 갈 뻔했었던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과 미국 뉴욕의 줄리아드 음대에 큰 딸 해아(海兒)와 둘째 딸 수아 (秀兒)가 가게 되었고, 프랑스 비행작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Antoine de Saint-Exupéry 1900-1944)의 '어린 왕자(The Little Prince, 1943)'와 나와 같은 해 태어난 미국 비행작가 리처드 바크(Richard Bach 1936 - )의 '갈매기의 꿈(Jonathan Livingston Seagull, 1970)'을 어려서 탐독해서인지, 셋째 막내 딸 성아(星兒)는 비행기 헬리콥터 조종사로 헐리우드 스튜디오 뮤지션(Hollywood Studio Musician) 바이올리니스트가 되었어라.
그뿐더러 우리 한국의 홍익인간/홍익만물과 인내천, 그리고 우리 동양의 피아일체/물아일체 사상에 기초한 코스미안사상을 전 세계 온 지구촌에 펼쳐, 종래의 인본주의(人本主義)와 자본주의(資本主義) 물질문명(物質文明)의 약육강식(弱肉强食)의 패러다임 (paradigm)을 어서 극복, 졸업, 탈피해서 자본주의(自本主義)/우본주의(宇本主義)의 상부(相扶)/상조(相助)와 상생(相生)/공생(共生)을 도모하는 새로운 코스미안 시대를 열어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현 코로나 사태로 도래하였어라.
지난 2018년 11월 4일 코스미안뉴스에 올린 [격문] ‘변혁의 논리, 태서(泰誓)’를 옮겨보리라.
코스미안대학 설립
고대 중국 하나라 걸왕에게 은나라 탕왕이 띄운 격문, ‘탕왕의 호소’를 빌어 아주 특별한 서약을 해봅니다.
사람들이여, 함께 생각해 봅시다.
우리모두 하나같이 지구라는 이 작은 별에 태어나 잠시 살다
우주로 되돌아갈 우주 나그네인 ‘코스미안Cosmian’이 아닌가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만물이 모두 대우주
의 축소판인 소우주라면 너를 사랑하는
것이 곧 나를 사랑하는 것이며 결국 온 우주를 위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 세상의 모든 문제는 다 해결됩니다.
그동안 잃어버렸거나 망각했던 우리
자신의 우주적 정체성과 본질을 깨닫고 되찾아
우리의 삶과 사랑을 나누는 일을 증진시키고자 기존 대학과는 전혀 다른
'코스미안 대학'을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의 적극적인 동참을 바랍니다.
코스미안뉴스 회장 이태상
우리 모두 각자는 이러한 코스미안으로서 각자의 신화(神話)를, 따라서 각자 자신의 사랑의 피와 땀과 눈물방울로 쓰여지는 인생역정(人生歷程) 천지인화(天地人話)를 창조하는 것이어라.
So, as a Cosmian born Arainbow of Love, each and every one of us is creating one’s own myth and thereby one’s own life journey written in one’s own blood, sweat and teardrops of love, worthy of the divinity of the Cosmos and of the humanity.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코리아타임즈 기자
합동통신사 해외부 기자
미국출판사 Prentice-Hall 한국/영국 대표
오랫동안 철학에 몰두하면서
신인류 ‘코스미안’사상 창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