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재된 의식이 곧 운명이라고 한다. 그 의식으로 운명을 만들어 간다고 하니 내 마음에는 무엇이 잠재되어서 지금까지 어떤 운명을 만들며 살아왔는가를 생각하기에 좋은 새벽이다. 평생 사랑하던 기억들을 새벽이라는 무대에서 써내야 할 하루의 대본은 나이를 먹으면서는 그 무게가 남다르다. 새벽공기가 무겁게 내려앉는 느낌부터 나를 진지하게 만든다. 충분히 내면에 몰입하기 좋은 새벽이다. 이 새벽은 살아가는 모든 기억들을 끌어들인다.
후딱 스쳐 가는 점이 아쉽지만 그래서 기억이다. 도시의 빌딩 숲에 잘 꾸며진 공간, 그곳에 살고 있는 신도 만날 것같은 기억들이 찾아온다. 저세상의 창문을 열고 누군가 내다보며 들어줄 수 있는 이야기 같다. 순간순간 세상과 단절하며 지은 나의 본성이 어떤 것이었는지 그 의식의 세상에서 어떻게 쌓으며 살았는지 보기 위해서 나는 샤워의 의미를 깊게 생각한다. 머리에 비누를 구름처럼 듬뿍 바르면서 하나둘 기억에서 씻어낸다.
멀리서 사는 어린 시절 친구의 기억이 제일 먼저 찾아오기도 하고 신문 속 흑백사진 같은 퇴색 된 삶의 무거운 기억도 있다. 어린시절 친구의 그 기억이 내 삶을 굳게 지켜준 힘이었다. 물에 젖은 기억들처럼 무겁게 남아서 힘들게 하는 과거도 굳은 기억의 힘이 된다. 친구들과 재잘대던 그 웃음들이 세월 속으로 흩어져간 지금도 친구와 나를 만나게 하는 가장 아름다운 삶의 기억이라고 믿고 싶다.
오랫동안 지켜온 기억들은 이제 아픈 몸을 치유하는데 충분하다. 그의 두 번째 직장인 농가일기에서 어떤 처방전도 물리적인 힘 없이도 쾌유 될 것 같은 영감을 받는다. 힘들었던 세상의 조건을 단절하는 내면의 강한 모습을 가지면서 나도 친구에게 또 다른 모습의 친구가 되어줄 수 있을까.
무작정 내가 지닌 그리움을 모두 짊어지고 친구가 있는 전원으로 가게 하는 친구가 부럽다. 그 친구의 예전의 인성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밭에서 그는 지금도 자연과 더불어 생성과 소멸을 하고 있다. 친구는 봄에 씨앗을 뿌릴 때 자신의 인성이라는 씨앗을 함께 뿌린다. 수없이 되풀이된 세월 속에도 바래지 않은 친구의 선한 인성만큼은 옛 그 자리에 남아있다.
이쯤 되면 모두가 인생에서 아름다운 인성의 기억들이 아닌가. 이제까지 나의 기억들은 홀가분할 만큼 맑고 날아갈 만큼 가볍다. 살다 보면 정말 마음을 무겁게 하는 기억들이 찾아와 잠시 머무는 순간에도 그 무게로 너무 버거울 때도 있었다.
이 우주 속에 살아 숨 쉬는 생명체는 모두 저마다의 기억의 무게를 갖고 살아가는 모른다. 찰나의 기억들로 이어진 추억은 나를 이 우주에 존재하게 하는 힘이다. 그 존재 안에 아름다운 기억들이 살아 숨 쉰다. 혼자 떠나는 여행에도 늘 누군가의 기억과 함께 간다. 그래서 외로움을 모르는 여행이 된다.
어린시절 날이 밝는 대로 학교가 문이 열리면 친구들과 만나 함께 커갔기에 운명마저도 똑같이 커갈 줄 만 알았다. 서로 다른 길에 내 던져져 다른 운명으로 살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할 수 없었던 것도 하늘 하나만 믿고 산 기억 때문이다. 태평양 푸른 바닷길 같은 친구의 인생길은 띄어놓는 배마다 순풍이 불어주어 인생의 정착지까지 무난히 도착한 풍경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는 거센 파도 치는 밤바다 위에 놓인 조각배처럼 등대를 찾지 못하고 끝없이 헤매던 그림이었다.
잊히기를 바라던 그 모든 힘든 풍랑의 기억들이 언제부터인가 소중히 간직하고 싶은 기억이 되었다. 나는 기억을 그렇게 느끼고 싶어질 때면 운전을 하고 달린다. 창밖으로 하나둘 스쳐 가는 추억들을 바라본다. 그럴 때는 친구와 명상을 나누다 미처 풀어놓지 못한 채 잊혔던 기억들이 우르르 쏟아진다.
어린시절의 기억은 모두 명상을 도와준다. 기억 저편에 있는 무수한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기억의 명상이라는 것을 알았다. 친구와 내가 검은 교복의 까까머리로 같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했던 것은 모두 내 기억의 자신이며 명상의 소재가 된다.
모두가 지나버린 지금 서로 다른 운명이 된 친구와 내가 거울 앞에 서면 비로소 다른 운명의
기억을 보게 된다. 그것이 바로 나의 명상이다. 그 후에도 만나는 인연의 친구가 있었듯 만나고 싶지 않았던 악연의 친구도 있었다. 중병이 될 것 같은 악연의 친구가 찾아오면 잘 타협해 보내는 일도 인생의 기억들이 만들어 낸 소중한 시간이 아닌가 한다.
나는 이제까지 내가 스스로 만들어 짊어지고 있는 기억들의 무게가 전부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 기억들을 모두 합쳐놓은 무게보다 더 무거운 악몽 같은 소리의 기억을 오늘 만들고 말았다. 운전 중 방송에서 듣는 어느 정치인의 막말이 아닌 그 말은 살인자의 손에 쥐어진 무기처럼 들렸다.
막말과 욕이 자신의 형수라는 사실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아무리 얽힌 이해관계가 있다고 해도 그것은 기억이라는 창고에 쌓여서는 안 될 말이다. 그 욕설의 기억은 그 정치인은 물론이고 그 욕설을 들었던 사람들까지 기억의 창고를 더럽힌 것이다. 기억이란 없어지지 않는 문신 같은 것이기에 수많은 사람들에게 정신적 테러를 한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어린시절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의 기억이 떠올랐다. “어느 집안이든지 형수라는 존재는 그 집안의 서열상 어머니 다음 자리이란다. 아무게 집만 보아도 잘 알 수 있지 않겠니, 그 아주머니가 돌아가시고 그 집 큰형수가 집안의 어른이 되어 온갖 대소사 일들을 책임지며 시동생, 시누이들이 학교를 마칠 때까지 심지어는 출가할 때까지 돌보는 사람이 형수의 자리이다. 형수는 집안의 어머니와 같은 존재다.”
어린시절에 어머니가 하신 이 말씀이 나에게 가장 보배로운 기억의 유산으로 남아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내가 갖고 있는 아름다운 그 기억의 무게는 얼마나 값진 것인가를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그 정치인도 나처럼 집안의 서열을 잘 알고 있었을까. 자신의 욕설을 들은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있을까.
신은 왜 그에게 그런 엄청난 기억의 소리를 허락하셨을까. 신은 아주 큰 실수를 했다. 어머니 같은 존재에게 욕설을 한 사람이었기에 신마저 돌아선 것일까. 그럼 신이 버린 인간은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가.
“돈데 보이, Donde Voy” 노래가 흐르는 국경을 넘어 멕시코 남단까지 무작정 떠나버리고
싶다.
[문경구]
화가
수필가
코스미안뉴스 칼럼니스트
문경구 kimurgin@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