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강한 군대는 장수와 사병이 한 몸과 같은 부자지병(父子之兵)이라고 한다. 그리고 삶의 여로에서 서로 마음을 나누며 동행한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다. 장남(長男)은 말수도 적고 사춘기를 지나면서부터는 무엇이든 물어보면 ‘몰라요, 귀찮아요.’를 입에 달고 살았다. 부자(父子) 간의 대화는 차라리 침묵이었다. 서툰 부모가 교육이랍시고 가기 싫어하는 조상님 산소에도 데려가고, 같이 공부하자며 독서실에 데려가서 사감선생님 행세를 하기도 했으니 친구들 보기에 얼마나 아버지가 원망스러웠을까.
그보다 더 어릴 적엔 아들 둘을 제대로 키우겠다는 열정만 가지고 긴 막대에 ‘사람을 훌륭하게 만드는 요술나무’라는 글을 새겨 거실 구석에 세워두고 자주 매를 들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어린 나이에 뭘 안다고 그랬을까 싶기도 하다.
장남이 입대하여 서부전선에 배치되고 처음이자 마지막 면회를 가서 소주에 삼겹살을 먹으면서 부자간의 벽이 허물어졌다. 녀석이 늘어놓은 장래 계획을 듣다가 “너 그런 얘기를 왜 지금에야 하냐? 상당히 괜찮다” 그 말이 끝이었다. 나중 장남이 그랬다. “아버지가 들어주고 공감해 주셔서 좋았다”고.
결국 문제는 나에게 있었다. 비쩍 마른 몸에 입대한 녀석은 튼튼한 몸으로 왔고 입대 전보다 생각이 자라있었고 더욱 다행스런 것은 ‘몰라요, 귀찮아요.’라는 말을 확연히 적게 쓴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나는 어떠했는가? 지금 생각하면 그때 왜 그렇게까지 했을까 싶다. 나이 50에 승진시험 준비한다고 여름휴가 때 ‘계곡에 가서 한밤만 자고 오자’는 막내의 떼를 물리치고 독서실로 갔었다. 시간 아낀다며 정초의 새해맞이를 아파트 베란다에서 할 때 장남은 나이 든 수험생 아버지에게 새해 첫해의 기운을 받아 드리겠다며 겨울 새벽 산을 올랐고 구름 때문에 해맞이를 못 하자 이튿날 또 올랐단다.
그리고 그해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시험에서 미역국을 먹고 낙담해 있을 때 장남의 응원 메시지가 왔었다. 그 몇 줄은 나를 제자리로 돌아오게 했다. ‘아버지! 힘내세요ㅋ 무슨 대왕이 그랬다면서요, '이 또한 지나가리라' 먼저 제자리로 돌아오는 사람이 더 빨리 다음을 준비할 수 있잖아요ㅋ 이것저것 생각할게 많겠지만 항상 좋은 쪽으로 생각하세요. 전 언제나 아버지 편ㅋㅋ 운전 조심해서 들어오세요.’ 장남이 보낸 메시지는 그대로 일기장에 옮겨져 있다.
장남은 다행히 운이 좋아 겨우 인 서울 하기는 했는데 4년 동안 장학금 한 번 받지 않고(?) 중간에는 작은 사업을 해보겠다며 휴학을 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겨우 졸업하고는 대학생활 동안 가장 의미 있었던 시간은 사업을 하면서 실패를 해 본 경험 이라고 엉뚱한 말을 늘어놓는다. 그리곤 다시 스타트업을 차려 열심히 고민을 하고 있다. 요즘은 아비인 나의 언행에 가장 객관적인 비평가가 되어 흐트러진 의식을 깨운다.
이에 비해 아비인 나는 열정만이 다인 줄 아는 너무나 서툰 사람이었다. 주제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아마추어 사진 실력으로 장남의 웨딩사진을 찍어주기도 했다. 그때 며늘아기는 얼마나 불편했을까. 한 마디로 너무 오버한 것이다.
예전 백척간두에서 나라를 구한 이순신장군은 ‘운주당(運籌堂)’을 만들어 직위에 관계없이 작전에 관한 군사들의 의견을 모두 들었고, 군사들과 화살촉을 같이 다듬으며 위험한 순간에 앞장섰다. 하여, 손자병법에 나오는 상하동욕자승(上下同欲者勝 - 위아래의 목표가 같은 군대가 승리한다) 이론을 이끌어 가장 강한 군대라는 부자지병으로 만들어 전승(全勝)했다. 즉, 제대로 듣고 판단하고 실천한 것이다. 요즘 계층 간 갈등이 심각하다고 한다. 그것도 결국 서로가 ‘요즘 아이들’ ‘꼰대’로 부르는 탓에 이청득심(以聽得心)이 부족한 결과다.
새해 해맞이는 하지 못하고 책을 뒤적이고 있는데 전화가 온다. ‘아버지, 산 가실래요?’ 영원한 응원군이며 27살 적은 친구와 새해 첫 등산을 하는데 날씨는 쾌청하고 하늘에 떠 있는 구름도 평화롭다. 지난번보다 낙엽이 많고 땅은 햇볕을 많이 쬐고 있다. 새해 다짐 분위기인지 등산객들이 꽤 많다. 둘의 대화 내용과 등산객들의 발걸음 소리를 곁에 누워서 자연으로 돌아가고 있는 산소들이 듣고 있다.
산길을 돌고 돌아 오른다. 딱따구리는 나무를 쪼고 낙엽이 바스러진 등산로 변엔 도토리 껍질이 많이 늘려있다. 자연의 섭리에 따르고 있는 것이다. 정상에 이르러 사방을 조망해 보고 간식으로 단감을 하나 깎아 나눠 먹으려다가 반쪽을 땅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아까웠다. ‘이젠 반쪽을 다시 나눠야겠네’ 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장남이 땅에 떨어진 단감 조각을 주워 산속으로 던지면서 말한다, ‘다람쥐라도 먹으면 되지 뭐.’ 그래 다람쥐도 산도 모두 친구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하고 모든 것은 유기체다. 서로 응원하며 같이 가자.
[하진형]
수필가
칼럼니스트
행정안전부 등록 범죄안전 강사
이순신 인문학포럼 대표(이순신 국제센터)
제3회 코스미안상 금상
이메일 bluepol7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