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한 마음으로 몇 권의 책을 손에 잡았다. ‘독서법’에 관한 책들이다. 독서법에 관한 여러 책이 이미 전국의 서점과 도서관에 비치돼 있다는 사실이 내게 큰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나 또한 나름의 독서관과 독서법을 확립했다고 생각하기에, 이런 독서법에 관한 책들을 읽으며 자신의 역량을 돌아보는 계기가 될 것 같다. 동시에 ‘독서왕’이라 불리는 사람들을 살펴보면서 한 걸음 더 미래로 나아가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조사(2017년 문체부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이 한 해 평균적으로 읽는 책은 8.3권(2016년 통계치. 2015년에는 9.1권이었음)이다. 이는 평균이므로 수십 권을 읽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45% 정도의 사람은 전혀 안 읽거나 한, 두 권 읽는 것을 평균화한 것이다. 이러한 통계를 접하고 나서, 일생의 ‘책 읽기 마스터플랜’을 작성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 계획은 이제껏 읽어온 책을 약 3천~5천 권으로 추정하고, 앞으로 80세까지 눈이 건강하다는 가정하에 3천 권쯤 읽는다는 것을 목표로 한 것이다. 그것도 일주일에 4권씩 읽어나간다는 것을 전제로 할 때 가능한 수치이다.
독서법에 관해 2~3일 동안 손에 잡히는 대로, 닥치는 대로 읽은 책 중엔 가히 ‘독서왕’이라 부를 만한 사람들의 독서 얘기가 있다. 어떤 사람은 한 달에 1,000권 읽기를, 또 어떤 이들은 이제까지 만권 읽은 경험을 적기도 했다. 심지어 한 시간에 한 권 읽기를 제안한 사람도 있었다. 다만 그들의 공통된 경험 중엔 800권쯤 읽었을 때 눈이 뜨이는 느낌을, 그리고 3,000권쯤 읽었을 때 뭔가 다른 세계를 접하는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짐작건대, 어느 정도의 기본 독서량이 되었을 때 그때까지 축적된 지식과 생각이 상호 작용하여 새로운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단초가 되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독서는 각자 자신에 맞는 책 읽기를 통해 지적 충만을 기하면서 더불어 행복한 공동체를 지향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그 한 방편으로서 ‘닥치는 대로 읽기’(이하 ‘닥독’)을 제안해보자 한다. ‘닥독’은 나름의 매력이 있다. 닥독이란 일상적인 독서의 틀을 깨고 재미와 효율성을 강화한 빠른 읽기다. 책 읽기의 지루함을 없애고, 압박감을 떨쳐내며, 돈 안 드는 선택의 즐거움을 만끽하게 한다. 닥독으로 해나가는 책 읽기는 맛있는 음식 먹기에 비유할 수 있다. 뷔페식당에서 다양한 음식을 골고루 먹는 것은 삶의 큰 즐거움이다. 다양한 음식이 신체에 균형 잡힌 영양분을 제공하듯, 닥독은 읽는 사람에게 정신의 양분을 제공할 것이다.
닥독에는 우선 선택의 즐거움이 있다. 마트에서 손에 잡히는 물건을 닥치는 대로 카트에 집어넣듯이, 닥치는 대로 책 바구니에 담는 뿌듯함과 기대감이 있다. 읽고 싶은 의욕이 마구 솟구쳐서, 서가에서 눈에 보이는 대로 책을 집어내 살펴보는 재미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즐거움이다. 예쁜 옷을 입을 때나 멋진 차를 운행할 때의 즐거움이 얼마간의 외재적 즐거움을 제공한다면, 책 읽기는 좋은 책을 읽었을 때 가질 수 있는 정신적 충만감, 자신감, 뿌듯함의 내재적 즐거움을 제공한다.
닥독에는 돈을 굴릴 때나 사업을 고민할 때의 스트레스와 압박감은 없으며, 이로 인해 남에게 피해를 줄 일도 없으며, 피해를 받을 일도, 사기를 당할 일도, 원한을 살 일도 없다. 책을 많이 읽어 슬프다거나, 책으로 인해 죽고 싶다거나, 책을 많이 읽음으로써 정신병원에 입원했다는 얘기도 없다. 다만 닥독의 결과로 글을 쓰게 되고, 심지어 강연자로 또 저술가로서 돈까지 벌게 되었다는 꿈같은 얘기가 사실로 확인되고 있다. 혹, 닥독으로 인해 정신적 혼란이나 방황을 하게 된다면 이는 결코 누구를 원망하거나 책임을 물을 일이 아니며, 전적으로 본인의 책임하에 이루어질 일이다. 다행인 것은 닥독으로 인한 피해나 사망사례가 아직 보고된 적이 없다는 것이다.
닥독이 좋은 것은 주제 관련해서도 즐거움과 유용함을 준다는 점이다. 닥독은 평소 관심을 두는 분야를 넘어서서 지적 호기심이 칡넝쿨 뻗어가듯 다른 분야로 확대되어가는 확장성을 갖게 된다. 이는 결국 다양한 책 읽기를 통해 균형 잡힌 지식을 갖는 데 도움이 된다.
닥독은 책을 읽어가는 방법에 있어서 기존의 질서를 파괴하는 읽기다. 책을 순서대로 읽어간다는 고정관념을 넘어서야 한다. 순서에 따라 읽는 지루함을 없애고, 정형화된 읽기의 룰을 깨면서 가장 필요한 부분을 먼저 선택하여 선별적으로 읽는 스피디한 읽기이다. 책 한 권을 펼치며 가장 마음에 와닿는 부분을 접어놓거나 북마킹을 해놓는다. 그 후에 해당 부분을 빠르게 읽고 나서 나머지 부분을 읽어나가면, 책을 처음부터 읽어갈 때의 지루함, 압박감을 극복하면서 창의적 책 읽기와 ‘주제 확장적 읽기’가 가능하다.
일반적 책 읽기 또는 전통적 책 읽기는, 대개 표지의 안내 문구를 통해 책을 고르게 된다. 그다음 저자의 약력을 살피고 목차에 따라 순차적으로 읽어간다. 닥독은 이런 기존의 질서를 고려하지 않고 자신만의 방법에 따라 개성적 읽기를 진행하면 된다. 이것은 아무런 규제나 강요나 압박이 없는 자유스러운 책 읽기로서, 다만 효율적이고 스피디한 읽기가 주는 장점이 있다.
닥독을 위해 유용한 2개의 독서법(‘낚시법’과 ‘그물망법’)을 제안한다. 낚시법은 목차를 보면서 눈에 들어오는 부분을 보고서 그곳의 페이지를 찾아서 접는다. 그 뒤에 접은 부분의 중요한 부분을 먼저 읽는다(최근 대부분 책은 순서에 상관없이 핵심 부분만을 따로 읽어도 전체 내용을 소화하는 데 문제가 없도록 구성되어있다). 그다음 그물망법은 목차를 눈으로 ‘쓱’ 훑어가면서 관심 있는 부분 또는 소제목을 펼쳐서 접거나 표시한 후, 해당 부분을 들추어가면서 빠르게 읽는 것이다. 유의할 것은, 정해진 순서 없이 책을 읽은 후에 목차를 한번 훑어 내리면서 전체의 흐름을 다시 살펴보고, 관심 있게 읽었던 부분을 주제와 관련지으면서 간단히 정리해서 음미해보도록 한다. 이는 닥독의 무질서함과 흩어짐을 보완토록, 책을 읽은 후에 중심과 질서를 부여하는 후속 조치다. 빠르고 재미있게 읽어나간 책의 내용을 온전하고 중심 잡힌 책 읽기로 마무리하기 위함이다.
닥독은 즐거운 책 읽기를 통해 먼 산을 지향한다. 높은 곳에 서서 넓은 시야로 많은 것을 볼 수 있게 하는 책 읽기의 툴(tool)이다. 닥독이 보다 많은 사람에게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고 함께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책 읽기의 방법으로 유용하게 쓰이길 기대한다.
[신연강]
인문학 작가
문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