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의 국밥집은 늘 바쁜 편이다. 좌석에 앉기 전부터 메뉴를 말하고 요즘은 코로나 19 때문에 예방접종 확인까지 하는 통에 더욱 바삐 움직인다. 그런데 국밥집 제일 한가운데 벽에 걸린 TV화면에는 뉴스가 쉴 새 없이 토해져 나온다. 뉴스라는 것이 사람들의 시청률을 민감하게 반응하는 탓에 자극적이거나 선정적인 내용이 많은데 방송매체의 특성에 따라 아나운서나 패널들까지 목청을 높여 방송하기가 일쑤다. 그래서 국밥집은 더욱 번잡하다.
물론 국밥집 손님 자체가 한가로이 식사를 즐길 여건이 되는 사람들은 적다, 바쁜 일상을 영위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소리다. 이처럼 국밥은 오랜 세월 서민들의 주린 배와 애환과 같이 했다.
그런데 꼭 국밥집에 뉴스를 틀어놓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오전에 열심히 일한 이들이 점심만이라도 편안하게 먹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음식에도 귀천이 있나? 왜 고상한 고급레스토랑에서만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식사하고 국밥집에서는 뉴스를 보면서 바쁘게 밥을 먹어야 하는가? 전 국민이 정치전문가나 평론가가 되어야 하는가?
물론 대단히 중요한 내용이나 국민적 관심사가 발표된 때에는 고맙게 뉴스를 보겠지만 말이다. 식사도 마음 편하게 하면 소화도 잘 될뿐더러 심리적으로도 안정을 누릴 수 있을 텐데 아쉽다. 밥을 먹으면서 굳이 듣지 않아도, 몰라도 될 부정적인 뉴스를 접할 경우 소화가 잘 안 됨은 물론 그에 따른 스트레스까지 받을 수 있다.
국밥집에서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서 식사를 할 수는 없는 걸까? 요즘은 화장실에서도 클래식을 듣는 경우도 있는데 꼭 왕왕거리는 아나운서의 고함 소리를 들어야 할까? 좀 더 조용히 먹을 수는 없는 걸까. 어떤 이는 그렇게 말한다. 국밥집에 클래식을 틀어놓으면 탁자 회전이 되지 않아서 장사에 방해가 된다고, 또는 국밥집의 뉴스가 안줏거리가 되기도 한다고. 탁자 회전율을 생각한다면 차라리 TV를 켜지 않으면 더 낫고, 뉴스가 안줏거리가 되면 회전율이 낮아질 수도 있다.
우리는 사회가 급속도로 변해가는 세상에 살고 있다. 예전의 농경사회나 1·2차 산업사회에서는 생각도 할 수 없는 세상이 상상하기도 어려운 속도로 변하는 것을 보고 있다. 어떤 이는 정치는 생물이라 계속 변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즉 오늘의 뉴스는 내일이 되면 연기처럼 사라져 버리기도 하고 그땐 어제 들었던 것이 무용지물이 되기도 한다. 더구나 요즘은 가짜뉴스까지 가세하여 세상을 혼란케 하기도 한다. 때문에 국민들이 국밥집에서 비리로 얼룩진 뉴스를 들으면서 스트레스까지 받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속담이 있다. 점심시간만이라도 편안하게 하면 오후일과의 효율성도 높아질 수도 있을 것이다. 기분 좋게 일을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언론은 사회를 이끌어가는 기능도 있다고 한다. 그만큼 사회 영향력이 높다면 국민들의 정서도 편안한 방향으로 이끌 책무가 있다. 우리 국민들도 이제는 내적으로 넉넉해질 때가 된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새해에는 국밥집이나 기사식당에서도 클래식을 듣는 행운이 찾아오길 소망한다. 모든 것이 그렇듯 시상(詩想)도 타이밍이라는데 클래식을 들으면서 식사를 하다 보면 노벨문학상을 받을 수 있는 훌륭한 시상이 떠오를 수도 있고, 어떤 남모르는 아픈 사연으로 삶의 마지막을 생각하던 이가 평정심을 되찾고 새로운 희망을 가질지도 모른다. 음악은 많은 것을 치료하고, 언어가 다른 민족까지도 음악으로는 소통할 수 있다고 한다. 어느 날 부모를 따라온 어린이가 국밥집에서 흘러나온 클래식을 듣고 영감을 얻어 훗날 세계적인 명곡을 만들었다면 생각만 해도 기분 좋은 일이다.
추위가 심해지는 1월을 보내면서 우리 이웃들이 좀 더 따뜻하고 여유로움을 느꼈으면 좋겠다. 일이 없는 것보다는 바쁜 것이 좋다고 하지만 국밥 한 그릇을 먹더라도 잠시 사색과 교감할 수 있는 그런 것 말이다. 한겨울에 연탄 한 장이 사람들의 따뜻함을 유지시켜 주듯 편안한 음악으로 여유 있는 마음을 나눌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다음 주엔 연중 가장 춥다는 대한(大寒)이 있지만 머지않아 봄의 시작을 알리는 입춘(立春)이 온다. 올해는 클래식과 함께 좀 더 따뜻하고 여유로운 봄을 맞이하고 싶다.
[하진형]
수필가
칼럼니스트
행정안전부 등록 범죄안전 강사
이순신 인문학포럼 대표(이순신 국제센터)
제3회 코스미안상 금상
이메일 bluepol7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