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행천황은 제12대 천황으로 천황가문 계보상 제26대 계체천황의 14대 선조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계체천황의 선조가 아니라 계체천황과 거의 동시대 인물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당시의 백제왕은 성왕(聖王)이므로 혹시 경행천황이 백제 26대 성왕과 동일한 인물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성왕은 물론이고 25대 무녕왕, 27대 위덕왕과도 전혀 합치되는 바가 없다.
그러면 다음으로 경행천황은 한반도의 본국백제 인물이 아니라 큐슈 혹은 서일본 지역에 존재했던 것으로 추측되는 큐슈백제(=백제담로 혹은 부용국)를 다스린 인물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가능성만 있을 뿐, 기록상으로는 어떠한 합치점도 없다. 『일본서기』 『삼국사기』 『삼국유사』 내용을 다 뒤져봐도 서로 통하는 내용이 하나도 없다. 교차 검증이 안 되는 것이다.
경행(景行)천황이든 의다랑(意多郞)이든 『일본서기』에만 등장하는 이름일 뿐, 다른 문헌에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 인물인 것이다. 그대로 신뢰하자니 뭔가 미진한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는 말이다.
『일본서기』에는 많은 백제인의 이름이 실려 있지만 그 이름이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도 실려 있는 경우는 별로 많지 않다. 특히나 왕인(王仁) 아직기(阿直岐) 목라근자(木羅斤資) 노리사치계(怒利斯致契) 같은 인물의 이름은 『일본서기』에만 언급되어 있어 그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할 길이 없다.
그러나 백제의 의다랑(意多郞) 즉 경행천황에 관한 이야기는 없지만 그 이름만큼은 『삼국사기』에도 실려 있다는 게 필자의 견해다. 아니, 『삼국사기』 어디에 경행천황의 이름이 실려 있다는 말인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데 무슨 이름이 실려 있다는 말인가?
역사공부를 웬만큼 했다고 자부하는 분들, 『삼국사기』를 달달 외다시피 한다는 분들 중에는 이렇게 바로 따져 묻고 싶은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분들께 제발 자만하지 말라고 충고하고 싶다. 똑같은 한자로 意多郞(의다랑)이나 景行(경행) 大足(대족) 大帶(대대)라 표기되어 있다면 누가 모르겠는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여태까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차자 방식도 다를 수 있고 차용한 한자도 다를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다른 한자로 음차표기 되어 있기 때문에 아무나 알아볼 수가 없는 것이다. 다음은 『삼국사기』 백제본기 성왕 28년(서기 550년)조의 내용이다.
“정월에 왕이 장군 달사(達巳)를 보내어 군사 1만 명을 거느리고 고구려의 도살성(道薩城)을 공취하였다. 3월에 고구려병이 금현성(金峴城)을 포위하였다.” |
“정월에 왕이 장군 달사(達巳)를 보내어 군사 1만 명을 거느리고 고구려의 도살성(道薩城)을 공취하였다. 3월에 고구려병이 금현성(金峴城)을 포위하였다.”
달사(達巳)라는 장군의 이름이 나온다. 달사(達巳)가 바로 대족언(大足; 오타라시) 경행천황이다. [달/tars]이라는 이름 앞에 위대한 인물임을 나타내기 위해 덧붙인 경칭접두사가 오오(おお)이고, 그것을 후대의 일본인들이 대족(大足; 오타라시)이라고 일컬었다는 말이다.
이렇게 알고 보면 쉽지만, 이렇게 설명을 들으면 너무나도 간단해 보이지만, 이러한 이름 하나를 찾아내기 위해서는 차자표기에 대한 내공이 엄청나게 쌓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찾아낼 수 없다. 보통 내공으로는 어림도 없다.
이병도 역주본 삼국사기에는 도살성을 천안(天安)으로 비정하고 금현성을 전의(全義)에 비정했으나, 필자는 그것이 잘못된 추측이라고 단정한다. 도살성은 경남 통영시 도선면 저산리(猪山里)이고, 금현성은 경남 고성군 고성읍 우산리(牛山里)에 비정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최규성]
방송 작가
수필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