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식 칼럼] 사랑의 손 편지, 그 기다림의 미학

김춘식

나는 오늘도 대문 옆에 걸어둔 우체통을 열어본다. 날마다 이렇게 우체통을 열어보는 것이 이젠 습관으로 되었다. 편지라야 어느 친구나 혈육에게서 올 편지는 없고 다만 청구서나 거래 통지서 같은 내용이 든 인쇄된 봉투이다. 페이스북, 카카오톡, 문자메시지를 통해 새해인사, 명절인사, 축하인사를 보내오고 문안을 전하며 어느 어느 일에 참석해 달라는 초청장을 보내오는 요즘 시대에 누가 손으로 편지를 쓴단 말인가?

 

하지만 가장 그리운 것이 사람의 손으로 쓴 편지인 것은 왜일까, 우리 이 시대에 손으로 쓴 편지가 사라진 지도 10년이 넘는다. 나로서는 마지막에 받아본 손 편지들이란 고등학교에서 담임교사로 있을 때 제자들이 갓 대학에 입학해서 써 보낸 것들이다. 후에도 대학에 간 제자들이 많지만 거의 핸드폰으로 문안 인사를 건네 오지 않으면 문자를 보내온 것뿐이다.

 

전에는 사람을 기다리는 일보다 더 초조하고 더 지루한 것이 누군가가 써서 보내는 편지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마음에 둔 누군가에게 편지를 써서 보내고 그로부터 보내지는 답신을 기다리는 일은 마음을 저리게 하고도 남는다. 정성스레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며 편지를 써 내려갈 때 느끼는 애틋함과 설렘, 기다리던 편지를 받고 천천히 곱씹으며 읽어 내려가는 즐거움과 감동은 먼 추억이 된 지 오래다. 이제는 잃어버리고만 푸른 잉크의 편지. 그 푸른 잉크의 편지는 멀리 흘러가 버린 문화이고 그리하여 이제는 추억이고 향수이며 차곡차곡 접어 저장해둔 기억들로만 존재한다.

 

전에 참으로 많은 편지를 썼다. 일가친척들에게 쓰는 편지로부터 제자들에게, 전우들에게, 고향 친구들에게, 동창생들에게 그리고 문우들에게 보내는 모든 편지, 그리고 축하인사. 문안인사 등

 

나는 어려서부터 편지를 썼다. 부모가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는 일자무식인들이라 대학에 가 있는 큰 형님을 비롯해 일가친척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는 것은 다 내 몫이었다. 비록 부모들이 일러주는 대로 받아쓴다고는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일자무식인들이라 말을 두서도 없고 논리도 없게 그저 제 생각들을 아무렇게나 털어놓으면 그것을 정리하며 편지를 써야 했다.

 

그래서 연필로 쓰고 지우고, 지우고 쓰면서 수식어도 붙이고 미사여구도 곁들면서 몇 번씩 고친다. 이렇게 다 고친 후 부모들에게 읽어드린다. 그러면 부모들도 미소를 지으시며 만족해한다. 그제야 나는 그것을 다시 깨끗한 편지지에 촉이 가느다란 펜을 골라서 베껴 쓴다.

 

편지를 쓰면서 제일 처음으로 흥분했던 것은 아마 중학교 다닐 때의 첫 연애편지인 것 같다. 한 학급에 내가 은근히 사모하는 여학생이 있었는데 남몰래 가진 사모의 감정을 전하기 위해서 어느 날 나는 큰마음을 먹고 연애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웬일인지 평소에 편지를 괜찮게 쓴다고 자부하던 나지만 막상 마음먹고 쓰자니 신통한 어구나 마땅한 표현을 할 수 없었다, 그저 흥분되기만 할 뿐이었다 그래서 쓰다 지우기를 반복하며 반나절을 끙끙거려서야 겨우 그만하면 내 감정을 다 표현했다 싶은 편지를 써냈다. 나는 이 편지를 호주머니에 넣고 며칠이나 그녀에게 건네주려고 망설이다가 끝내 포기하고 말없다.

 

그녀와 우리 집의 가정형편은 차이가 너무나 컸다. 게다가 모든 면에서 다 그녀가 나보다 나아 보였다. 그리고 그녀도 언제 나에게 호감을 표시한 적도 없었다, 그러니 이것은 단지 짝사랑에 불과한 편지를 건네줬다가 돌아오는 건 실망과 수치일까 봐 두려워서였다. 올라가지 못할 나무는 바라보지 말라는 속담의 진리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나였다

 

그러고 보면 예전에는 편지를 참 많이도 주고받았다. 차마 말로 건네지 못할 말이 있으면 편지로 대신했다. 밤새 쓴 편지를 아침에 다시 읽어 보면 그렇게 유치할 수가 없었다. 고치고 또 고쳐 가까스로 완성된 편지, 그 편지를 가슴에 품고 우체국으로 달려간다. 답장을 줬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에 우표를 한 장 봉투에 넣어 보낸다.

 

기실 내가 편지를 가장 진지하고 정성 들여 쓴 것은 군에 있을 때다. 그때 나는 한 처녀와 연인관계를 맺은 지 겨우 한 달 만에 군에 가게 되었다, 두 사람 죽자 살자 열애하다가 이렇게 천리이역에 서로 갈라지니 정말 그녀가 사무치게 그리웠다. 그녀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나는 열흘이 멀다하게 편지를 한 통씩 보냈는데 편지 한 통 한 통에 그렇게 정성을 들였다. 편지지를 고르는 데로부터 봉투를 고르고 거기에 붙일 우표를 골랐다. 편지지에 편지를 쓸 때도 이 볼펜 저 볼펜을 고르고 골라서 필체가 가장 좋게 보이는 것을 택해서 썼다. 그 내용들은 허세가 아닌 나의 애모가 서린 진심의 토로였다

 

이렇게 편지를 써서 보내고는 그녀의 회답이 오기를 학수고대하였다. 하루 이틀 삼 일, 닷새, 지금쯤이면 편지가 도착했을 텐데내 편지를 받은 그의 표정은 어떻게 바뀔까 생각하니 괜히 마음이 떨려온다. 그때는 지금 같지 않고 교통이 불편하다 보니 편지를 보내고 회답을 받기까지 빨라야 열흘, 늦으면 반 달 이상이었다. ‘일각 여삼추 (一刻如三秋)란 말의 뜻을 그때 심심히 느꼈다.

 

편지를 부치고 열흘째부터는 매일 중대의 문서한테로 가서 혹여 내게로 오는 편지가 있나 해서 알아보곤 했다. 그러다가 그녀가 부쳐온 편지를 보면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제꺽 인적이 없는 곳을 찾아 봉투를 뜯어 읽는다. ‘잘 지내시는지요?’ 첫사랑의 인사가 이렇게 설렐까? 편지를 읽는 동안 고요하고 아름다운 숲 속을 걷는 기분이었다. ‘오늘도 몹시 보고 싶어요,’, ‘다시 상봉할 날을 손꼽아 기다려요’, ‘하루가 천추 같아요.’

 

세상의 모든 소음을 뚫고 내게만 들려오는 그 속삭임은 참으로 행복했다. 편지를 다 읽고 난 후에도 내내 설레며 세상의 모든 행복이 다 내게 있는 듯싶었다. 그래서 편지를 몇 번씩 곱씹어 읽지만 아무리 읽어도 싫증 나지 않았다. 그것은 그녀의 진정한 사랑의 고백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는 무슨 보물이나 되는 것처럼 그 편지를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는데 날마다 짬을 타서 한 번씩은 읽다시피 하였다. 읽을 때마다 가슴이 설레고 읽을수록 그녀가 그리웠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사진을 찍어서 보냈는데 그녀가 부쳐온 사진 때문에 전우들한테 애먹은 적이 있었다. 그녀는 봉투에 넣은 사진이 배달 도중에 부주의로 구겨질까 봐 봉투 뒷면에다. “안에 사진이 있으니 구겨지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글귀를 적었다. 그날따라 내 먼저 문서실에 도착한 한 전우가 우리 소대의 편지를 들고 왔는데 그 글귀를 보고 모두들 확 달려들더니 내가 보는 데서 봉투를 뜯었다.

 

전우들끼리 일반편지는 절대 뜯어보는 법이 없지만 사진이 든 편지는 여럿이 주인이 보는 앞에서 뜯어보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그것은 그렇게 보내오는 사진이 기본 연인이 아니면 아이의 사진이라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 연인의 사진을 본 적이 없는 그들이라 이번 기회를 놓칠 리가 만무하다.

 

봉투를 뜯자 편지 속에 넣은 그녀의 사진이 나왔는데 이 사진은 온 소대 전우들의 손 여행을 거쳐서야 나에게로 돌아왔다. 그들은 그녀의 사진을 보고 예쁘니 어쩌니 하면서 저들끼리 공론을 하는데 두말할 것 없이 나의 연인은 아주 예뻤다. 그래서 자랑스럽기는 하지만 어쨌든 나 먼저 그녀의 사진에 그들의 손때가 묻은 것이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사진을 보면서 그 사진에 남아 있는 그녀의 온기를 한 몸으로 느끼는 기분이었다.

 

물론 그녀와 후에 이런저런 원인으로 헤어졌지만 그녀와 이렇게 편지를 쓰고 받고 하는 것만큼 행복한 적은 없었다. 편지 쓰는 내내 행복했고 편지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역시 행복했으니까. 내 인생에 수없이 많은 편지를 주고받았지만 그때처럼 열렬하고 진지하게 정성 들여 편지를 쓴 적이 없으며 그때처럼 편지를 학수고대한 적도 없고 그때처럼 편지를 받고 행복했던 적도 없다.

 

물론 그녀는 나보다 학교도 적게 다녔고 문화 수준도 나보다 낮아 편지라야 미사여구 한마디 골라볼 수 없고 글씨 또한 볼품이 없었지만 그 편지 속에는 정녕 그녀의 따뜻한 사랑이 담겨 있었기에 나는 그처럼 그녀의 편지가 기다려지고 또 가슴에 품고 있었던가? 연인의 눈에는 편지 자체가 가장 아름다운 한 수의 서정시고 산문시였다 그래서 그것을 보고 또 보며 머릿속에 기억하고 가슴속에 새기려 했을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진심이다. 그리고 진심은 그저 화려한 말솜씨에 담을 수 있는 게 아니라 손으로 삐뚤삐뚤 쓴 짧은 글에서 더 애틋하게 담긴다. 세상이 열 번 변해도 편지의 필체는 인간의 정이요, 필로 쓴 편지는 그 사람의 얼굴이 비껴있고 그 사람의 숨결이 깃들어 있다

 

그때 그녀의 편지는 너무너무 읽어서 보풀이 일 지경이 되었고 그녀의 사진은 하루에도 몇 번씩 꺼내 보았다. 후에 어떻게 되었든 그 시절에 우리 사이에 오고 간 편지는 우리들의 진정한 사랑의 고백이라고 나는 지금도 굳게 믿고 있다.

 

그때 우리의 편지는 단순히 안부를 전하는 편지가 아니라 그리움을 토로하고 사랑을 속삭이는 편지가 되었었다. 지금처럼 핸드폰도 없고 전화도 마음껏 칠 수 없었던 시절, 혹여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가장 친밀하고도 은밀한 손 편지 한 통이 없었더라면 그 시절의 애틋한 사랑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손으로 쓴 편지가 가져다주는 잔잔한 기다림의 여유와 추억이라는 울림을 다시 경험하고 싶다. 가슴 설레며 손 편지를 쓰고 떨어질세라 우표를 눌러 붙이고 답장을 기다리며 집 앞 우편함을 살피던 행복한 순간을 다시 감내하고 싶다.

 

오늘. 푸른 잉크의 편지가 그리워진다. 그리고 거기서 오는 잉크 냄새와 종이 냄새도 그리워진다.

 

[김춘식]

수필가

칼럼니스트

송화강수필상 수상

이메일 jinchunzhi2008@hotmail.com

 

작성 2022.01.17 10:50 수정 2022.01.17 11:33
Copyrights ⓒ 코스미안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전명희기자 뉴스보기
댓글 0개 (1/1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Shorts 동영상 더보기
2025년 4월 25일
2025년 4월 25일
전염이 잘 되는 눈병! 유행성 각결막염!! #shorts #쇼츠
2025년 4월 24일
2025년 4월 23일
2025년 4월 22일
나는 지금 '행복하다'
2025년 4월 21일
2025년 4월 20일
2025년 4월 19일
2025년 4월 18일
2025년 4월 17일
2025년 4월 17일
2025년 4월 16일
2025년 4월 15일
2025년 4월 14일
2025년 4월 13일
2025년 4월 13일
2025년 4월 13일
2025년 4월 13일
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