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굽이를 돌고 돌아, 새로운 한 해의 역사 수레바퀴가 꿀렁거리면서 돌아간다. 육십간지 중 39번째 검정호랑이, 그 용맹·민첩·강인함이 올 한 해 자유대한민국을 쾌청하게 만들어주기를 기원한다. 그 호랑이가 어흥~ 하면서 역병 코로나19를 퇴치하고, 시시때때로 난설허설(亂說虛說)을 까발리는 정치꾼들의 영혼도 반듯하게 영글도록 호령해 주면 좋으련만... 이런 시절에 반추(反芻) 되는 유행가가 노사연이 절창한 <돌고 돌아가는 길>이다. 1978년 9월 12일 정동문화체육관에서 울려 퍼진 제2회 MBC 대학가요제에서 노사연이 열창했던 곡조. 이 노래를 2020년 12월 5일, KBS 2TV 트롯전국체전에서 반가희가 노래 탄생 42년 만에 대중들의 가슴팍을 향하여 열창을 하였다. 노사연이 이 노래를 부를 당시 반가희는 5세였다. 흘러흘러 세월이 가고오며 돌고 돌듯이 우리네 인생도 세상도 그렇게 돌고 돈다. 산을 넘고 강을 건너 먼 길을 가는 나그네처럼.
산 넘어 넘어 돌고 돌아/ 그 뫼에 오르려니/ 그 뫼는 어드메뇨/ 내 발만 돌고 도네/ 강 건너 건너 흘러 흘러/ 그 물에 적시려니/ 그 물은 어드메뇨/ 내 몸만 흘러 흘러 흘러 발만 돌아/ 발밑에는 동그라미 수북하고/ 몸 흘러도 이내 몸은 그 안에서 흘렀네/ 동그라미 돌더라도 아니 가면 어이해/ 그 물 좋고 그 뫼 좋아 어이해도 가야겠네// 산 넘어 넘어 넘어/ 돌고 돌아가는 길에/ 뱅글 뱅글 돌더라도/ 어이 아니 돌을 소냐/ 흘러 흘러 세월 가듯/ 내 푸름도 한 때 인걸/ 돌더라도 가야겠네/ 내 꿈 찾아 가야겠네/ 산 넘어 넘어 돌고 돌아/ 그 뫼에 오르려니/ 그 뫼는 어드메뇨/ 내 발만 돌고 도네/ 강 건너 건너 흘러 흘러/ 그 물에 적시려니/ 그 물은 어드메뇨/ 내 몸만 흘러 흘러/ 산 넘어 넘어 넘어/ 돌고 돌아가는 길에/ 뱅글 뱅글 돌더라도/ 어이 아니 돌을 소냐/ 흘러 흘러 세월 가듯/ 내 푸름도 한 때 인걸/ 돌더라도 가야겠네/ 내 꿈 찾아 가야겠네.
노래 속의 화자는 바로 나(우리)다. 산을 넘고 강을 건너 돌고 흘러도 나는 동그라미 안에 댕그러니 서 있다. 연못 속으로 퐁당거리면서 빠져 들어간 돌멩이는 사라지고 없는데 파장을 일파만파(一波萬波)다. 그래도 가야 하는 것이 인생이고, 가고 오는 것이 세월이다. 그 바람 같은 세월을 따라 내 푸름도 발갛게 물이 들고 바스락거리면서 마르는 갈대 잎처럼 서걱거린다. 그래도 노래 속의 화자는 뱅글뱅글 돌면서도 꿈을 찾아 가기를 앙망하니, 어느 산모롱이에서라도 한 덩어리 행운을 마주하길 빌어준다. <돌고 돌아가는 길>이 울려 퍼진 제2회 MBC 대학가요제회에는 전국 예선대회에 참가한 28개 록 밴드 팀 309명이 출전했었다. 그때 단국대 재학생이던 노사연은 금상을 수상했다. 수상 이유는 한국적 정서를 담아 부른 곡조였다는 것. 이날 같이 참가하여 <그때 그 사람>을 부른 심수봉은 논타이틀, 수상자 이름에 심민경(심수봉 본명)은 없었다. 심사결과의 아이러니다. 대학생이 기성 가수를 능가하는 실력을 보인 것이 상을 받지 못한 사연이란다. 그런데 노래와 가수는 깃발처럼 펄럭거리며 대중들의 인기 온도계를 달구었다. 한국대중가요 100년사에 외계에서 유난한 별 하나가 날아온 사건이었다.
1974년 당국은 여러 사건으로 국민들의 관심 전환이 절실했었다. 이듬해 긴급조치9호(1975.5.13)가 발령되고, 12월 3일 시행된 해피스모그 사건, 대마초 파동과도 연결고리가 닿아 있다. 수많은 대중문화예술인들의 방송출연 금지, 이로 인해 우리나라 대중가요계는 초토화되었었다. 대중가요계의 학살이란 말도 떠돌아다녔다. 이런 무주공산 같은 시절, 1977년 개최된 제1회 MBC 대학가요제는 흑백 TV로 방영됐다. 우리나라 TV는 1956년 흑백, 1980년에 컬러로 방영되었다. 그 당시 권위와 낭만의 충돌지대에서 개최된 이 가요제는 물리적 정신적으로 자유로움을 표방하던 대학생들이 창의적인 끼를 발산하는 장이 되었다. 당시 MBC 대학가요제에는 창작 곡뿐만 아니라 기성 가요도 부를 수 있었지만, 순수 창작곡이 대세였다.
21세기 대한민국 안방의 시청률을 겨냥한 기획연출물인 트로트열풍과는 향기와 결이 다른 경연이었다. 재미와 흥미와 의미를 아우른 노래들, 오늘날의 경연은 의미가 결여된 유흥의 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면서 창작해 놓은 곡조를 오늘날처럼 경망스럽게 리메이크하여, 새로 등록한 음원을 상품화 한 경우는 한국대중가요 100년사에 없었다. 인생을 건 가객들을 조련시킨 앵무새처럼 무대 위에 졸랑거리게 하는 지상파와 공중파 매체들이 되새김 할 명제다. 대중문화예술은 창조적인 기능과 소비적인 기능을 병행한다. 대중가요 작품자(작사·작곡가)들은 창조적 기능을, 대중들은 소비적 기능을 한다. 가수들은 그것을 시장(공연장·매개물)에 공급하는 역할을 하리라. 오늘날처럼 팍팍한 세월에는 꿈을 파는 가객이 절실한데, 순간순간에 몰입하도록 하는 흥에만 집중을 한다. 이런 면에서 대학가요제나 강변가요제 등은 창조의 장, 21세기 트로트 열풍의 프로그램들은 소비적 역할을 한다고 필설 함이 옳으리라. 노사연이 <돌고 돌아가는 길>을 부른 제2회 대회는 참가 곡 90% 이상이 창작 곡이었었다. 당시 경합을 벌였던 참가 22팀 중 기성곡은 단 2곡에 불과했다.
<돌고 돌아가는 길>을 리메이크 한 반가희는 1974년생 본명 전순영이다. 그녀는 2014년 디지털 싱글 앨범 <이별주>로 데뷔했다. 유년시절 판소리를 하던 아버지 밑에서 자라며 선율과 노랫말을 접하게 되었고 가수의 꿈을 가지게 되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영별하는 아픔을 겪지만, 목포가요제(1993년)·남인수가요제(1996년, 2008년 진주가요제로 변경) 등에서 수상하며 가수의 비포장도로로 들어선다. 이런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40세 나이로 데뷔한 후, 전국노래자랑·가요무대 등 트로트프로그램에 80여회나 출연하던 중 2020년 KBS 트롯전국체전에 출연해 대중들에게 많은 관심을 얻고 있다. 그녀는 김연자와 콘서트투어를 함께한 이력이 있다. 반가희의 고향은 영광, 조미미(본명 조미자)와 동향이다. 이 반가희가 새 노래를 들고 무대에 서는 날, 대중들을 그녀를 더 큰 박수로 반가이 환영할 것이다.
MBC 대학가요제는 1977년 9월 3일 제1회 이후로 매년 개최되었고, 2012년을 마지막으로 폐지되었다. 이는 1970~80년대에 큰 인기를 누렸으며, 이를 통하여 많은 가수들이 데뷔하였다. 배철수, 임백천, 심수봉, 노사연, 유열, 신해철, 015B, 전람회(김동률), 이한철, 김광민 등이 그들이다. 이 대회는 1993년까지는 캠퍼스 밖 공연장에서 개최되었으며, 1994년부터 2011년까지는 대학캠퍼스 특설무대에서 개최되었고, 2012년은 일산 MBC 드림센터에서 개최되었다. 이후 MBC는 낮은 시청률을 고려하여 2013년부터 개최하지 않기로 했으나, 시청자들의 항의와 대학가요제 기존 수상자들의 서명운동 등으로 2014년부터 재개하기로 약속했었다. 그러나 새로운 스타와 히트곡 탄생부재, 다양한 뉴 오디션 프로그램 등장 등을 이유로 2014년 최종 폐지되었다.
<돌고 돌아가는 길> 원곡가수 노사연은 춘천여고를 졸업하고 단국대학교 성악과에 입학했다가 국문과로 졸업했다. 그녀의 아버지 노양환은 육군대령 출신, 어머니는 무용가 김화선이다. 가수 현미의 언니다. 현미의 본명은 김명선. 막내 이모는 가수 김명희, 그녀의 남편이 최대석, <만남> 노래 작곡가다. 또한 탤런트 한상진이 이종사촌이다. 21세기 우리나라에 풍성거리는 트로트 열풍은 트로트계의 숨은 인재를 가창(歌唱) 중심으로 발굴하는 국민오디션 장이다. 개천에서 난 미꾸라지들이 대중 인기의 천국으로 올라갈 날개를 달 수 있는 주인 없는 사다리 같은 프로젝트. 이 경연의 장이 창작의 장이라면, 한국대중가요 100년사에 새로운 국민애창곡 유행가가 더 많이 탄생할 텐데...
유행가는 인생살이를 얽은 보물이다. 그 인생길은 산 넘어 산, 그리고 또 산 산 산이다. 저 멀리 눈앞에 뵈는 능선을 향하여 시냇물과 강을 건너고 작은 능선을 넘고 넘어서 다다르면 또 저만치 능선이 아늑하다. 결국 내 발만 돌고 도는 듯하지만, 다시 뱅글뱅글 되돌지 않은 수 없는 길. 인생살이를 이렇게 적확(的確)하게 묘사해낼 수 있는 대중문화예술 장르가 또 있을까. 3분 안에 인생의 기승전결, 유행가락에 걸린 역사 스토리텔링에 필자의 인생을 걸 이유가 있음이다. 노래 발표 당시 시대상황을 아물고 있는 매력은 스토리텔링의 감칠맛을 더한다.
예로부터 정월이 되면 대문에 범 호(虎) 자를 붙여 놓고 잡귀가 들어오지 못하게 기원했었다. 한 해 동안 가정을 지켜주는 호랑이, 나라를 호위해 줄 호랑이, 1988년 서울올림픽과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마스코트로 활용된 호랑이, 그 호랑이가 2022년 대한민국을 어흥~ 하면서 옹위해 주기를 소망한다. 역병 코로나19도 꼬랑지를 감추고, 민초들이 던지는 불덩어리(투표, 投票)를 갈망하는 정치모사꾼들도 흘러가는 한강물결에 휘척휘척 떠내려가기를 바라마지 안는다. 돌고 돌아가는 세월 따라 올바른 치인(治人)의 시대가 열리길 빈다. 사랑하는 나의 나라, 자유대한민국의 번창을 위하여~.
[유차영]
시인
수필가
문화예술교육사
한국유행가연구원 원장
유행가스토리텔러 제1호
유차영 51944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