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칼럼] 사랑과 전쟁

고석근

 

사랑은 하나의 관점이 아닌 둘의 관점에서 형성되는 하나의 삶이다. 사랑은 진리를 생산하는 절차이자 둘의 관점에서 행하는 세계에 대한 탐색이다.

- 알랭 바디우


사랑하면, ‘불꽃같은 사랑이 떠오른다. 죽어도 좋은 사랑. 하지만 그렇게 함께 활활 타오르던 불꽃이 되어 만난 사람들이 그 사랑의 불꽃을 잘 가꾸어가고 있을까? ‘아니? 이 사람이 내가 사랑했던 사람이 맞아? 그 사람은 어디 갔어?’ 많은 부부들이 서로의 얼굴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왜 사랑의 불꽃은 이렇게 쉽게 사그라져버릴까? 사람들은 과학으로 설명하려한다. 사랑에 빠지면 페닐에틸아민이라는 호르몬이 뇌에서 3년 동안만 나온다는 것이다. 맞을 것이다. 만일 한평생 사랑의 호르몬이 나와 항상 흥분상태가 되면 다들 심장마비에 걸려서 죽고 말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많은 사람들이 전쟁터가 된 사랑을 견딜 수 없어 이별하는 방법을 택한다. 현대 프랑스 철학을 대표하는 알랭 바디우는 사랑을 새롭게 해석한다. 불꽃 같이 타오르다 사그라지는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랑은 하나의 관점이 아닌 둘의 관점에서 형성되는 하나의 삶이다. 사랑은 진리를 생산하는 절차이자 둘의 관점에서 행하는 세계에 대한 탐색이다.’

 

서양에서는 오랫동안 플라톤의 이데아를 진리로 생각했다. ‘우리 눈에 보이는 것들은 언젠가는 사라지기에 다 헛것이다. 그것들의 이데아, 영원불변한 것들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

 

서양 철학은 이데아를 탐구하는 역사다. 그러다 현대에 들어서면서 우리 눈에 보이는 현상들을 진리로 보기 시작했다. ‘서로 만나 생성하는 삼라만상, 이것이 진리다.’ 바디우는 사랑도 세계를 생성해내는 것, 즉 진리를 생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바디우의 시선으로 사랑을 보면 전혀 다른 사랑의 세계가 펼쳐질 것이다. 불꽃으로 함께 타오르던 사랑의 시간이 아니라, 그 사랑의 불꽃을 가슴에 안고 둘이 함께 만들어가는 아름다운 세계. 전쟁 같았던 사랑의 세계가 우리 눈앞에 찬란하게 새롭게 펼쳐질 것이다.


모계사회에서는 남녀의 사랑이 전쟁이 되지 않는다. 각자 자신의 어머니의 집에서 살기에 사랑의 시간에만 함께 여자의 방에 머문다. 아이가 태어나도 아이는 여자의 집에서 기른다. 삼촌들이 아빠의 역할을 한다.


남녀의 사랑에 소유가 끼어들지 않기에 그들은 오로지 사랑만 한다. 싫어지면 만나지 않으면 된다. 결혼이 없었으니 이혼도 없다. 헤어져도(만나지 않아도) 동료로서 잘 지낸다.


인류는 오랫동안 모계사회를 이루고 살다가 농경이 시작되면서 가부장 사회로 바뀌어갔다. 남자의 육체적 힘이 중요해졌다. 땅을 소유한 남자들이 차츰 국가, 사회, 가정의 지배자가 되어갔다. 남자들은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여자에게 순결을 강조하며 고분고분한 존재로 만들었다. 그래야 아내가 자신의 아들만을 낳고 자신의 특권이 유지될 테니까.


그리고 늙어서 자신을 보호해줄 유능한 아들을 총애했다. 차츰 남자들은 권력의 화신이 되어갔다.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게 되었다. 한평생 감정을 속으로 숨기며 살아야 했다.


인간으로서의 무한한 잠재력이 남자’ ‘여자라는 틀에 갇혀버리게 되었다. 이렇게 불구가 되어버린 남녀가 사랑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이들은 활활 타오르는 불꽃같은 사랑만이 사랑의 전부라고 배웠으니, 그 뒤 함께 사랑을 이어가는 게 너무나 힘들 것이다.

 

가부장 사회의 틀에 의해 불구의 남녀로 자라난 남녀가 사랑을 통해 진정한 인간으로 거듭나고, 둘이 함께 새로운 세계를 생성해 내는 긴 여정. 바디우는 이것을 진정한 사랑으로 보는 것이다.


둘이 생산해 내는 진리. 이런 사랑에 한 번 도전해 보고 싶지 않은가? 교회, 사찰, 학교, 도서관 등에서 진리를 찾지 말고 둘이서 치열하게 진리를 만들어 가보면 어떨까? 그 진리가 끝내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당신은 안개? 바람? 아니면 연기?”

괴로운 나머지 그렇게 불러보았더니

먼데서

그이의 목소리가 되돌아왔지

당신은 안개? 바람? 아니면 연기?”

 

이 얼마나 어리석고

쓸쓸한 술래잡기!

우리는 양쪽 다 눈을 가리고

상대방을 붙잡으려고

막막한 안개 속에

손만 헛되이 저어대고 있는 것이었다

 

- 신까와 카즈에,술래잡기부분

 

우리는 양쪽 다 눈을 가리고’ ‘상대방을 붙잡으려고술래잡기를 하고 있다. “당신은 안개? 바람? 아니면 연기?”


서로의 환상을 붙잡으려 막막한 안개 속에/ 손만 헛되이 저어대고 있는 것이었다

 

[고석근]

수필가

인문학 강사 

한국산문 신인상

6회 민들레 문학상 수상.

이메일: ksk21ccc@hanmail.net

 

작성 2022.01.20 10:28 수정 2022.01.20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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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