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의자·44
-서열 다툼
시인의 의자에 앉은 사람은 서열 다툼이 없습니다. 명확하게 시인으로 공인된 뒤부터 서열이 매겨지니까요? 그런데 요즈음에는 등단 서열이 무시되고 연령순, 감투순으로 뒤바뀌고 있고 이런 일들을 문예지 발행인들이 마음대로 일정한 원칙도 없이 서열을 매기는 사례들이 많습니다. 건방진 문예지 발행인은 다른 장르에서 등단한 경력을 사그리 빼고 자기 장르에서 등단한 것만으로 서열을 매기기도 하고, 슬그머니 자신의 서열을 아래쪽에 있으면서도 위쪽으로 올려 마치 자신이 선배 문인처럼 행동하는 일도 많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문학 행사 판에서 많이 발생하는데, 사회자가 임의로 문단의 서열과는 무관하게 가까운 사람을 윗 서열로 모시고 서열 뒤바꾸기를 자행하는 건방을 떠는 짓들이 시골로 갈수록 빈번하지요. 지역사회 영향력 순이랄까 평소 찬조금으로 행사 품위 유지비를 듬뿍 낸 인사에게는 특별 우대하여 높은 서열로 축사를 하는 등 그야말로 난장판이지요. 느닷없이 문인잔치에 정치인이 윗자리에 모셔지는 촌극이 비일비재하고 지역단체 연간 집에 그 지역 기관장들의 잔치인 것처럼 축사, 격려사를 넣고 품격 없는 지역 연간 집이 곳곳에서 발행되고 있으니 이런 일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일 년에 한 번 지역 문인의 작품집에 웬 정치인들이 대거 등장하여 선거운동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더라고요. 물론 그 지역 문학단체의 발간기금을 지원한 시장, 군수는 지역민들의 대표 자격으로 분명 축사나 격려사를 실을 수는 있지요? 그런데 그 지역 지구당 위원장이나 국회의원, 지방의회의장, 경찰서장, 우체국장, 농협조합장, 예술단체장 등이 축사나 격려사를 싣는 것은 그 지역 문인들의 열등의식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또한 이와 같이 문인단체의 회지를 기관장들의 축사로 도배질하는 것은 문인단체의 장이 회원들의 민주적인 의사를 무시하고 자신의 명리적 가치를 획득하기 위한 수단으로 연간 집을 이용한 경우일 것이다. ‘나도 이런 사람과 동등한 지역 기관장이다’ 하는 문인단체 회장의 열등의식과 자기를 홍보하려는 욕심이 자리 잡은 탓이기도 하다. 이런 의식은 문인다운 행동이라기보다는 문인단체 회장의 직위를 이용하여 자신의 명리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도구로 이용한 비열한 모리배들의 소행이거나 무지하고 문인 정신이 실종된 정치꾼 문인의 소치일 것이다.
발간사는 지역 문인 대표가 하는 것이 관례이고, 지역 문학 발전 기금을 내놓은 분은 물질주의 시대 예우 차원에서 축사나, 격려사를 부탁하여 실을 수는 있다 치더라도 여기가 선거 운동하는 장소도 아닌데, 정치인들이 지역 문인단체 축사, 격려사로 대거 등장하는 일은 제발 없어져야 할 것이다. 정 기관장을 모시려면 순번를 정하여 한두 분씩이 돌려가면서 회원들의 중지를 모아 결정해서 모실 수도 있겠지요.
차라리 그 지역 출신 선배 문인을 축사로 모시는 것이 마땅한 도리일 겁니다. 문인이면 문인답게 당당하게 처신해야지 연간집을 기관장 축사 잔치로 만드는 후진국 문화를 청산해야 하지 않을까요? 어떤 지역에서는 문인들만의 잔치로 순수하게 문인들의 글이 실려 있는 선진 모델을 앞서서 실천하는 지역도 더러 있는 것으로 보아 이런 작은 일부터 고쳐 나가야 선진 민주시민의 자세가 아닐까요?
정치인이 축사나 격려사로 모실 경우는 일종의 사전 선거운동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요. 법에 대해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특정 정치인에게 축사나 격려사를 부탁하여 지역 문인의 연간 집에 수록하였다면, 사전 선거운동이라는 유권해석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튼 우리나라는 곳곳에 후진국의 문화가 청산되지 못하고 남아 있습니다.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으려면 이런 작은 일부터 바람직한 방향으로 바꿔나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독재의 문화가 자리 잡은 탓에 바른말을 하는 사람을 터부시하고 그 사람과 가까이하면 화를 입을까 봐 멀리하려는 심리가 작용하고 있지요. 이런 것을 길들여진 후진 문화의 재생산구조는 바른말을 하는 사람에 대한 피해의식 때문이기도 합니다.
민주시민은 자기의 의무를 지키는 한편 당당하게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어야 하지요. 오늘날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당당하게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만 자신에게 조그마한 손해가 있다면 공익을 위해서 필요한데도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손해 볼 짓을 안 하는 후진국의 문화 의식은 일제강점기에 그 추악상이 만연했지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일제에 협력하여 독립운동자들의 동태를 고발하는 등 참으로 권력에 아첨했고, 6·25 때 무식한 사람에게 빨갱이 완장을 채워주니까 자신의 불평불만으로 앙심을 품은 사람을 무자비하게 죽이는 일로 이용했던 일이 비일비재했지요.
사람은 권력이 주어지면 좀 엉뚱한 짓을 저지르는 속성이 있지요. 그것은 무지몽매할수록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의 칼을 마구 흔들어 많은 사람들을 아프게 하지요. 그러나 시인의 의자에 앉은 사람들은 억울한 약자의 편에서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 작품을 쓰는 일이 주된 일이지 사회를 개혁한다고 앞장서서 나서는 사회운동가가 아닙니다.
시인의 의자는 봄이 오는 소리를 듣습니다. 봄바람이 거셉니다. 어디선가는 산불이 나서 애써 가꿔놓은 숲이 한순간에 잿더미로 변하는 안타까운 소식을 듣고 봄바람 탓이라 할지라도 그 요망한 짓들을 우리 인간들의 힘으로는 말릴 수 없으니 불조심해야겠지요. 나이 먹어 늦게 문학을 시작했는데도 서열을 무시하고 윗자리에 앉아 젊은 선배들을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는 일은 없어져야겠지요. 그래야 문단에도 질서가 설 것이 아니겠어요.
문제는 문학 잡지들을 발간한 사람들이 윗자리에 앉아서 떵떵거리고 서열을 엿장수 맘대로 매기는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후진국 문화를 청산해야 문학이 바로 서지 않겠습니까? 문학의 세계는 작품을 잘 쓰는 사람이 우대받는 것은 당연하고 작품에 앞서 인격을 갖춘 사람이 선배인 것이지 인간성 막된 사람이 문학을 하면 여러 고을이 시끄럽고 문학이 산꼭대기로 올라갈 겁니다.
시인의 의자에는 윤동주의 「서시」와 같은 생각들을 갖은 사람들이 앉아야 할 자리입니다. 오늘은 윤동주의 「서시」를 감상하시고 서열 다툼은 접으세요.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부끄럼이 없기를 괴로워하는 양심이 시인의 양심이요. 인간의 선한 의지입니다. 문학을 하는 사람들은 선한 의지를 과감하게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부끄러움도 선한 의지와 양심이 살아있는 사람들의 산물이지 문인 자격 미달의 문인이 지역단체의 회장을 맡으면 그것이 마치 무소불위의 권력을 쥔 사람으로 착각하고 웃음이 나오는 상황을 도처에서 연출하는 사례가 종종 벌어져서 문인 전체의 이미지를 실추 시키고 있는 것이 오늘의 대한민국 문인단체의 현주소입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거짓 문인 모리배, 비도덕적인 일을 서슴없이 자행하는 민낯의 문인단체 우두머리는 자자손손 지탄의 대상이 될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김관식 시인]
노산문학상 수상
백교문학상 대상 수상
김우종문학상 수상
황조근정 훈장
김관식 kks4190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