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칼럼] 위선자

고석근

 

위선은 일반적으로 사회에선 죄가 아니라 미덕으로 통한다.

- 주디스 마틴

 

아르헨티나의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소설 배신자와 영웅에 관한 논고배신자이면서 영웅인 한 인물에 관한 이야기다.

 

오랜 압제에 시달렸던 식민지 조국의 독립에 절대적 기여를 한 민족의 영웅, 킬 패트릭이 실은 배신자였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진다. 어떻게 해야 할까? 동지들에게 진실을 밝히고 그를 사형에 처해야 할까? 고민하던 그와 독립군들은 그의 명예도 지키고 독립운동에도 기여하는 절묘한 방법을 찾아낸다.

 

그것은 연극 한 편을 공연하는 것이다. 그의 숭고한 죽음을 위해 다들 연극배우가 된다. 그는 적의 연기를 하는 동지에 의해 영화관에서 장렬한 최후를 맞는다.

 

그의 죽음을 연구하던 증손자인 라이언은 이런 무시무시한 진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그도 연극에 참여하기로 한다. 그는 진실에 침묵하고 독립운동가 킬 패트릭의 영웅적인 영광을 책으로 쓸 결심을 한다.

 

거대한 위선의 그물망, 그 안에 갇히는 순간, 어느 누구도 그 그물망의 법칙을 어길 수 없다. 보르헤스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려 하는 걸까? 어느 식민지 국가의 독립 운동사에 숨겨진 위선을 우리에게 보여주려 한 것일까?

 

나는 그가 환상적 리얼리즘의 대가답게 우리에게 인간의 삶의 모습 자체가 위선임을 보여주려 했다고 생각한다. 나도 오래전에 그런 그물망에 갇혀 위선자 노릇을 했음을 고백하려 한다.

 

ㅊ 여자중학교 교사를 할 때였다. 건강이 안 좋아 수업을 제대로 하지 못한 적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교무 회의 시간에 교무부장 선생님이 조만간 도 학력고사를 본다고 했다.

 

!’ 나는 당황했다. ‘, 어떡하지? 아직 건강이 다 회복되지 않았는데...... .’

 

그때부터 아이들에게 시험에 나올 것만 찍어서 반복 수업을 했다. 아이들은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으니 오히려 좋아하는 것 같았다. “시험에 나온다. 밑줄 긋고 별표 해!” 그렇게 가르친 결과, 아이들 성적이 아주 우수하게 나와 나는 우수지도교사상을 받았다. ‘이렇게 가르치고 상을 받다니!’

 

내가 건강했다면 그렇게 수업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수업시간 마다 여러 사례도 들어 설명하고 아이들 생각도 발표하게 했을 것이다. 단편적인 지식을 달달 외우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잘 가르치지 못해야 성적이 우수하게 나오는 학교 교육. 지금이라고 얼마나 달라졌을까? 이런 우수성적 비결을 나만 깨쳤을까? 진학지도 교사, 과외 교사, 학원 강사들은 일찌감치 이 비결을 터득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교육을 받은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명문고, 명문대를 나온 그들에게 어떤 미래가 열릴까? 단편적인 지식 위주의 교육이라는 그물망에서 나는 우수 교사이면서 동시에 잘못 가르친 교사가 되었다.

 

만일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할까? 병가를 낼까? 휴직을 할까? 다시 그때처럼 할까? 그 뒤 나는 나를 옥죄는 그물망을 견딜 수 없어, 교직을 그만두고 오랫동안 자유인으로 살았다. 하지만 나는 이 시대의 그물망에서 얼마나 자유로웠을까?

 

갈대숲을 이룩하는 흰 새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일렬 이렬 삼렬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우리도 우리들끼리

낄낄대면서

깔쭉대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세상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각 자기 자리에 앉는다

주저앉는다

 

- 황지우,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부분

 

독재자의 왕국에 살면서 시인은 영화관에 갔다가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가는새들을 본다. 시인은 잠시 환상에 젖는다.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 세상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결국 자기 자리에 주저앉는다.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앞에 어느 누가 반기를 들 수 있단 말인가?

 

[고석근]

수필가

인문학 강사 

한국산문 신인상

6회 민들레 문학상 수상.

이메일: ksk21ccc@hanmail.net

 

작성 2022.01.27 10:47 수정 2022.01.27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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