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백(半白)의 머리칼을 한 노가수가 무대를 휘어잡고 세상을 향해 외친다. 어쩌면 그는 유행가를 부르는 대중가수라기보다 오히려 기인(奇人)에 가까워 보이기도 한다. 그런 그가 던지는 메시지의 울림은 크다.
그가 ‘백 년도 힘든 것을 천년을 살 것처럼~’ 이라고 노래하는 것을 보면 소원을 묻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아무것도 필요 없으니 햇빛을 가리지 말고 비켜 달라’고 했던 그리스의 철학자 디오게네스가 연상되기도 하고, 이태 전 추석 전날인가 텔레비전에 불쑥 나타나서는 ‘역사책에서 왕이나 대통령이 국민 때문에 목숨을 걸었다는 사람은 못 봤다’고 일갈할 때엔 ‘사기의 골계열전’에서 품위 있는 해학과 간접화법으로 황제를 주무르는 손우곤 우맹, 동방삭이 떠오르기도 한다. 옛날 절대권력을 휘두르던 황제들도 신분이 낮은 사람들의 유머와 해학 속에 있는 간언(諫言)의 의미를 알아듣고 처세를 고쳐 백성을 편안케 했다.
혹시 그가 부른 ‘테스 형’이 ‘소크라테스’가 아닐지라도 나훈아 노래는 철학이 스며있다. 즉 대중가요에서도 이렇게 철학을 가르칠 수도 있음이다. 클래식과 오페라만 고상한 게 아니다. 대중가요, 대중가수를 폄훼하지 말아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그가 부른(또는 세상을 향해 외치고 있는) 노랫말들을 음미해 보면 입은 다물어지고 고개는 숙여진다.
‘공(空)’에서는 ‘살다 보면 알게 돼 알려주지 않아도, 너나 나나 모두 다 모두 어리석다는 것을~’ 이라고 말하고, ‘테스 형’에서는 ‘그저 와 준 오늘이 고맙기는 하여도, 죽어도 오고 마는 또 내일이 두렵다’고 실토한다. 그리곤 묻는다. ‘먼저가 본 저세상 어떤가요 테스 형, 가보니까 천국은 있던가요 테스 형’ 결국 그렇게 모두에게 묻고 있다.
그뿐인가 ‘아무도 찾지 않는 바람 부는 언덕에 이름 모를 잡초’를 생각하고, ‘고까짓 거 사랑 때문에 울지 말라고~’ 달래기도 한다. 그렇게 달래다가 작은 깨달음을 얻고는 ‘사랑이 떠나거든 그냥 두시게 마음이 떠나면 몸도 가야 하네, 누가 울거든 그냥 두시게 실컷 울고 나면 후련해 질 거야’라고 말한다. 제일 편안하고 늘 곁에 있는 ‘자네’에게.
그가 직접 작사·작곡했다는 800여 곡을 포함한 2,500여 노래 속 그의 철학은 전 세대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라고 말하곤 ‘가면 놔두시게’라고 하고, 홍시에서 울 엄마를 그리워하다가 테스형에서는 울 아버지 산소 앞에 엎드린다. 그리고 ‘돌고 도는 인생인데 무엇을 걱정하냐’고 모두를 토닥여준다.
세상의 모든 것에는 음양이 있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이 되었지만 방역수칙을 지키면서 그의 공연은 계속되고 있고, 사람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몰려든다. 내가 말하고픈 것을 그가 대신 말해주고, 그의 노랫말에서 위로를 받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를 가황(歌皇)이라고 부르지만 그는 어쩌면 이웃들과 함께 웃고 우는 오롯한 노래꾼 ‘나훈아’로 불리고 싶은 것은 아닐까? 그가 ‘꿈을 팔려면 내가 꿈을 가지고 있어야한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요즘 대선(大選) 정국이 돌아가는 것을 보면 나라가 갈가리 찢기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태산이다. 70대 노가수가 ‘역사책에서 왕이나 대통령이~~’라고 위정자(爲政者)들에게 큰 소리로 꾸짖어도 그들은 그것을 모른다. 오히려 일부러 알아듣지 못한 척 자기 욕심만 챙기는 격이다. 이념과 진영논리에 갇혀 헤어나지를 못하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 안타깝다. 4·19혁명의 피와 고속도로의 땀이 없었다면 오늘의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이 가능했을까, 그런 것을 그들만 모른 체 한다. 필부(匹夫)의 귀엔 그의 한마디 외침이 율곡 이이의 만언봉사(萬言封事)로 들리기까지 하건만.
대한민국의 역사는 우리 모두의 역사이지 어느 한쪽 진영의 역사가 아니다. 제발 편가르기 하지 말자. 이렇게 작은 땅에서 부끄럽지도 않은가? 국민들을 물론이고 지구촌 곳곳에 나가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동포들에게. 성현(聖賢)들은 ‘모든 것은 상호의존의 원리에 의해 살아가야 한다’고 가르쳤다. 둘은 서로 대립이 아닌 상호보완적이어야 한다. 상대의 ‘좋은 정책 추천하기’ 등은 진정 없는 것일까. 하다못해 작은 새도 두 날개로 하늘을 난다는데.
40여 년 전, 위정자들이 지역감정을 부추기며 총칼로 정치적 욕심을 채우고 있을 때 가슴 뜨거운 나훈아는 5.18 피해자 추모곡을 만든다. ‘엄니엄니 워째서 울어쌌소 나 여그 있는디 왜 운당가~, 엄니엄니 워째서 잠못자요 잠자야 꿈속에서 날 만나제~’ 라는 노래를 듣고 울컥하지 않을 사람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입만 열면 ‘국민을 위해서’라고 말하는 자들의 가슴도 분명히 반응은 할 것이다. 이 노래도 만들어진 후 33년이나 지나서 겨우 불리어졌지만.
필부가 말한다. 삶이란 어떤 시간이 촌각처럼 짧든 길든, 어떤 존재가 아주 미미하든 거대하든 그것의 본질을 하나씩 알고 그 의미와 이치를 깨닫고 행동하는 것이다. 노래꾼 나훈아가 공연하는 이유로 코로나 시대에 자신도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나왔다했는데 나는,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하진형]
수필가
칼럼니스트
행정안전부 등록 범죄안전 강사
이순신 인문학포럼 대표(이순신 국제센터)
제3회 코스미안상 금상
이메일 bluepol7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