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식의 양심선언] 시인의 의자·45

김관식

시인의 의자·45

-시는 은유다

 

 

시인의 의자는 은유요 상징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은유가 없는 드라이한 시가 통하는 시대입니다. 시가 그만 물질화되어버린 탓이지요. 은유를 받아들일 시적 감수성이 없는 독자는 입시 위주의 교육 때문이기도 합니다. 시인의 의자라는 국적 불명, 장르 불명의 이 시 아닌 시를 써야만 하는 이유는 절대적으로 독자가 느껴서 깨달을 수 있게 이해하기 쉬운 글이어야 하겠기에 은유를 생각하고 옛 선비들이 임금 앞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직언을 했듯이 직언에 가까운 이런 엉터리 작업으로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 보십시오, 학교 다닐 때 시의 여러 가지 표현법을 문답형으로 배웠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죽은 지식을 배운 것이지요. 예를 들면 의인법이라는 말을 사전에서 정의는 동식물, 무생물, 추상적 개념 등 사람이 아닌 것을 사람인 것처럼 표현하는 수사법이라고 배웠을 것입니다. 사람처럼 표현하면 무조건 의인법이라고 배워서 별님”, “달님”, “나무님”, “호랑이님등으로 무조건 님을 붙여 사람으로 표현하는 그릇된 개념이 형성되었지요. 왜 사물을 시에서 사람으로 취급하고 표현하라고 했는지 그 까닭을 가르쳐주지 않고 문답형 교육을 시켜놓았으니, 무조건 을 붙여 사람 취급하면 되는 줄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어린이나 원시인들의 사고는 물활론적인 사고를 합니다. 커다란 나무, 큰 바위 등에 정령이 깃들여 있기 때문에 나무나 바위 등을 마을의 수호신으로 여겨 사람 이상의 신격 취급을 해왔습니다. 어린이들은 이런 원시인들과 같이 세상의 사물들이 살아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돌이 말하고 풀이 말하고, 호랑이가 말하기도 하고 별과 달이 말하는 동화를 재미있게 읽습니다. 이는 모두 사람이 아닌 동식물, 무생물, 추상적 개념을 모두 사람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의인법의 근거는 바로 여기서 발생했고 시적 표현에 많이 사용됩니다.


의인법이 시적 기법으로 차용된 그 바탕에는 사물이나 동식물을 가까운 친구나 이웃으로 여기고 공존하며 살아가려는 고귀한 인간으로서의 품성이 깔려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표현함으로써 사물의 실체를 인간과 가깝게 느껴지게 하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지요. 그럼 예를 들어 살아있는 시적인 의인화의 예를 들어보도록 합시다. 만약 가을날 시골 고향을 찾은 사람이 있다고 가정합시다. 그 사람이 고향집 뒤뜰에 감나무에 주렁주렁 열린 빨간 감을 감따게로 따서 바구니에 담아서 집으로 가져왔다는 정서 경험이 있는 사람이 이 정서 경험을 바탕으로 의인화의 표현으로 시를 진술할 경우 다음과 같습니다.


정서 경험 : 고향집 뒤꼍 감나무 한 그루 빨간 감이 주렁주렁 열렸습니다. 감따게로 감을 따서 바구니에 차곡차곡 담아서 집으로 가져왔습니다.

시적 형상화와 의인화 표현 : 가을이면 빨간 감이 열리니까 가을의 상징물은 감입니다. 따라서 빨간 감=빨간 가을이라는 은유가 성립됩니다. “감을 딴다의 표현은 사실적인 표현으로 감나무와 화자, 둘이 따로따로 존재한다는 상황인식입니다. 이를 감나무와 감 자체를 사람으로 취급했을 때 표현이 달라지게 됩니다. 감을 가까운 친구로 여겼으니 친구를 딸 수는 없습니다.


감이 높은 곳에 있으니까 감을 사람으로 취급하여 감이 내려온다라는 표현이 성립됩니다. “바구니에 담는다는 감과 바구니 그리고 화자가 따로따로 분리된 상태입니다. 시적 대상이 되는 사물과 화자가 일체화 즉 하나가 될수록 의인화의 표현이 살아나고 시적인 효과를 발휘하게 됩니다. 이 상황을 의인화 표현으로 바꾼다면 바구니에 차례차례 앉는다라고 표현해야 사람 취급을 한 표현이 되는 것입니다. “집으로 가져왔다는 물건 취급의 이니까 사람으로 취급한다면 집으로 데려왔다로 표현되어야 의인화 표현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단순하게 자만 붙이는 것은 사물과 화자가 분리된 상태에서 억지로 의인화시킨 죽은 표현의 의인화입니다. 학교에서 바로 이런 죽은 의인화 표현을 배웠기 때문에 시적 표현의 의인화 표현을 활용하지 못하고 상투적인 의인화 표현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적 대상을 의인화 표현 하나라도 제대로 배우면, 시의 표현이 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쉬운 표현 하나도 제대로 익히지 않고 시인 노릇을 하는 것은 그 얼마나 위선적인 시인으로서의 자기반성도 하지 않고 살고 있다고 자신을 뒤돌아보시고 한 편의 시를 쓰기 위해 많은 공부를 해야 함을 깨닫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그럼 위의 상황을 의인화의 시적 표현을 해보도록 합시다.

 

 

고향 집 뒤뜰

감나무 한 그루

 

빨간 가을이

주렁주렁

 

감따게 들고

하늘을 휘젓어

가을 땄다

 

가을이 내려와

바구니에

차례차례 앉았다

 

조심스레

승용차로

집으로 모셔왔다

 

이런 표현으로 시적인 표현으로 바꾸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물을 나와 가까운 친구나 이웃으로 취급하고 표현하는 것이 바로 의인화의 표현입니다이처럼 기본적인 살아있는 표현 공부를 하지 않고 문답식 죽은 지식에 의존하여 시를 지으려니 시의 표현이 상투적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네루다는 시를 한마디로 시는 메타포다라고 정의했습니다. 은유가 바로 시라는 말이다. 은유의 표현을 이해하지 못한 시인들의 감수성에 의미적 요소만을 강조하고 전달 기능에만 충실해서 이해 가능한 상태로 글을 쓰려고 하다 보니 한심한 국적 불명의 시를 써야만 하는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오늘의 시는 정현종의 방문객입니다.

 

방문객

 

 

사람이 온다는 건

사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낼 수 있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사람을 물질로 보는 삭막한 시대는 인간들이 사는 시대가 아니라 코로나바이러스19가 사는 삭막한 시대입니다. 방문객이 두려운 악마의 시대,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시대를 열기 위해 시를 쓰는 것입니다. 시를 쓰는 시인이 시를 쓰지 않고 자신의 명리적 가치의 실현을 위한 허명의 바이러스, 물질의 바이러스 전달을 위한 시인답지 않는 활동만 일삼는다면, 우리는 그를 과감히 시인의 세계에서 격리시켜야 합니다.


시인의 의자에 앉지 못하도록 막아야 합니다. 시인의 의자에는 은유, 메타포가 앉는 자리입니다. 이렇게 시다운 시를 쓰려면 기초적인 표현기능을 익히지 않고 무조건 언어의 전달 기능에만 의존하여 시를 쓰게 되게 되고, 그런 시는 시인이 아니라 누구나 쓰는 시이기 때문에 시인과 차별화가 되지 않겠지요. 이런 시를 쓰는 시인들이 시 공부는 딴전이고 엉뚱하게 시인 노릇만 일삼는다면, 누가 그들을 시인이라고 인정하겠습니까? 뒤돌아서면 저런 사람도 시인이냐, 개나 소나 다 시인이구먼하는 모욕적인 비난을 퍼부을 수밖에 없겠지요. 이제 위선적인 시인의 가면을 벗고 모두 시인다운 시인으로써 혜안을 갖기를 바랍니다.

  

[김관식 시인]

노산문학상 수상

백교문학상 대상 수상

김우종문학상 수상

황조근정 훈장

김관식 kks41900@naver.com

작성 2022.01.31 09:51 수정 2022.01.31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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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