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VOW=현주 기자]
[세상소리뉴스=VOICE OF WORLD] 참 시끄러운 나라다. 좋은 면도 있지만 나쁜 면도 많다. 고질적으로 지속해서 ‘남 험담하기’ 즐기는 사람들 얘기다.
진중권 교수는 20일 CBS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서, ‘조문했니 안 했니’로 “논쟁하는 나라는 없다”며 야권을 비난했다. 이를 토대로 몇가지 사회 증후군을 살펴 본다.
주한 영국대사 콜린 크룩스는 20일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에 출연해, ‘빈소 참배’도, “장례식이 핵심 행사” 조문이며, 대사관 조문록 서명도 조문이란다.
주로 민주당 몇몇 특정인 국한된 얘기이고, 의원으로 보기 어려울 정도로 매사 시비조에, ‘관종’ 스타일인지 의심이지만, 건수 찾기에 열 올리는 분도 있다.
‘빈소 조문 했다’는 문제가 해소되었다면, 다른 문제로 시끄러웠을 거로 여겨져,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 주는 국민들이 그래도 관대하고 포용적이다.
한바탕 지나긴 했어도 여전히 대통령의 엘리자베스 조문 불발 논란 얘기다. 이젠 왜 늦었나, 처음부터 잘하지, 교통체증도 몰랐나 화두로 넘어가도 잘 참아 준다.
떠드는 사람 따로 있고, 들을 수밖에 없는 사람 따로 있어, 참을 수밖에 없어 참는지도 모른다. 후자가 더 가까울 듯싶다. 발언권 가진 자는 신나서 떠든다.
진 교수에 따르면, 미국은 바이든 조문에 시비를 건 인물은 트럼프가 유일하다고 한다. 왜 14번째 줄이냐, 자기가 대통령이면 제일 앞줄에 앉을 텐데 등이다.
‘시시꼴꼴’하다고 하면 왜 이게 ‘시시꼴꼴’하냐며, ‘외교참사’라는 멋진 말을 구사하며 멋진 모습 연출에 열을 올려 주가를 바라는 분들도 있기는 하다.
살아가는 방식도 셀 수없이 많아서다. 그러려니 참아 주고 들어주는 미덕을 발휘해준다. 작심한 연출자에게 관객은 안 볼 자유도 빼앗긴 경우도 적지 않다.
진 교수는 “영국요청을 받아들인 것인데 무슨 결례고 논쟁할 가치가 있는지 모르겠다.” 요청이란 데 “트집잡을 수도 없고, 왜 이렇게 중요하나.”
‘바이든 지각’ 케이스가 비례 되는 일은 아니지만, 미국은 그래도 “좀 더 일찍 출발했어야 한다”, “의전이 문제이다” 등으로 논쟁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모두 장례식에서 14번째 줄에 앉은 일은 화제다. 국격이네. 한 줄이라도 뒤에 앉았으면 “야권이 문제 삼았을 것이다” 한다.
시비거리 찾으려 작정하고 바라보는 만큼, 빠져나갈 방법은 거의 없다. ‘좁은 문’, 낙타가 바늘구멍 빠져나기기 어려울 정도의 ‘촘촘한 해상도’에 딱 걸리기 마련이다.
진 교수는 “‘포퓰리스트’ 너무 유치하다”고 단언했다. 심지어 ‘혐오 코드’란 말을 썼다. ‘수박’, ‘홍어’, ‘박쥐’ 등에 걸친 ‘역겹다’ ‘혐오 코드’에 ‘여성혐오’도 심각하다.
주로 대립 구도 상대에 씌워지는 ‘역겹다’ ‘혐오 코드’는 우리 사회에 큰 과제로 주어졌다. 민주당 최고위 유일 ‘친문’이란 고민정 의원도 ‘악플’에 시달렸던 터다.
“우리는 진정, 서로에게 동지인가?” 동조하지 않으면 ‘적인가.’ 고 의원이 한때 “이낙연 대표도, 이재명 의원도”를 동시에 언급해도 ‘혐오 코드’는 막무가내다.
누구나 자신 말에 일정 부분 ‘논리’는 있기 마련이다. 마음에 안 들면 “사악한 논리 역겹다”, “박쥐 근성을 가졌는지 예전 미처 몰랐다” 등 이런 생떼가 없다.
진 교수는 ‘포퓰리즘’, ‘포퓰리스트’ 논리가 “비판이 아니라 혐오 코드로 가는 것 같다. 기승전 아마추어라는 프레임 자체가 논리적이고 합리적이지 않다.”
문제는 “부정적 인식, 감정을 악화하는 쪽으로 맞춰져 있다”고 지적했다. 물론 현대인의 스트레스는 옛 사람들과는 달리 엄청나긴 하다. 털어 낼 곳이 필요하다.
분풀이 할, 악풀이 할, 쌓인 감정을 토해낼 대상이 필요하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는 이를 ‘카타르시스’로 표현했다. 본래 그 용어는 ‘대변 보다’ 뜻이다.
쌓인 내장 분비물을 토해내야 ‘시원하다’고 느끼는 자기 정화이다. 달리 과부하가 걸리면 개인적, 집단적 히스테리 증후군 현상이다. 쌓이고 쌓이면 죽기도 한다.
종종 ‘사이코’ 소리를 듣기도 해, 사회에서 영구 격리되는 조치를 받기도 한다. 그래서 사회 질서 내에서 합법적으로 감정 정화 과정을 허용하는 수준이 있다.
민주화에 자유, 인권, 평화, 연대 등을 강조하는 대통령도 있는 관계로, 사건마다, 얘깃거리마다 생산되는 ‘카타르시스’ 유형은 터진 봇물이다. 사람 수 만큼이라 어렵다.
누군가 ‘집단지성’ 이라 언급했던가. 이 말도 봇물이다.
현주 기자 sockopower@outlo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