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의 영화에 취하다] 혼자 사는 사람들

최민

그냥 찝찝하고 쓸쓸하다. 상처 입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늘 공허하고 마음이 산란하다. 혼자 살면 외롭고 둘이 살면 괴롭고 여럿이 살면 고통이라는데 그럴 바에야 외로운 게 낫지 않겠는가. 현대인들은 타의적 고립에 빠져 살게 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울타리가 아니라 합법적 폭력의 울타리다. 혼자 사는 사람들의 가구수가 전체 인구의 42%가 넘어가는 지금 누구는 자발적 고립을 택해 인생을 즐기고 또 누군가는 타의적 고립을 택해 어쩔 수 없이 가난과 외로움에 인생을 맡기고 산다.

 

1인 가족, 1인 회사, 1인 매체, 1인 여행 등 혼자 사는 삶은 사회의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돈 많은 사람들이야 자본의 힘으로 혼자서도 잘 산다. ‘나 혼자 산다’라는 티비 프로그램을 보고 한 번쯤 혼자 살고 싶다는 로망을 가지게 하는 것도 자본의 힘이 작용한 결과다. 그런데 혼자 사는 사람 대부분은 가난에 허덕이고 외로움에 몸부림치다가 그마저도 인이 배겨 상처에 앉은 딱지처럼 무감각하게 살아간다. 스스로를 세상과 고립시켜 기계처럼 일하고 고독을 고독처럼 느끼지도 못한 채 목구멍으로 주먹만 한 응어리를 꾸역꾸역 밀어 넣으며 살아간다. 

 

영화 ‘혼자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고 나면 괜히 화가 난다. 무엇인지 모를 화가 스멀스멀 올라오다가 이내 연기처럼 온몸에 스며든다. 카카오톡에 연락처 몇 개 없이 그저 광고만 연신 뜨는 외로움도, 봄이 오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고 겨울이 가도 그저 의미 없이 흘러가는 계절도 아무렇지 않은 일상이 되어 버린다. 무감각이 가장 편한 친구가 되어 버린 사람들에게 영화 ‘혼자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이며 자신의 삶이고 자신의 운명인지 모른다. 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서울의 한 콜센터에서 일하는 진아는 혼자 산다. 고객의 불만을 처리하는 일을 하면서도 그녀는 자신의 감정을 철저하게 드러내지 않는다. 그녀는 회사에서도 동료들과 일정한 거리를 두며 일 외에는 침묵으로 일관한다. 회사에서나 집에서나 누구와도 사회적 관계를 맺지 않은 그녀의 냉정함은 자신을 위한 최선의 방어책이다. 그러던 어느 날 가끔 말을 걸어오던 옆집에 살던 남자가 고독사한 채 발견된다. 그 동에 사는 아주머니가 와서 진아에게 말한다.

 

“요즘 젊은 이게 문제야. 서로 관심 없어. 아니 옆집에 사람이 죽었는데 일주일씩이나 그걸 몰라”

 

“저는 오늘 아침에도 봤는데요”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고 있었지만, 그 남자의 존재를 거의 인식하지 못했던 진아는 이 사건이 일어난 이후부터 미묘한 불안을 느끼기 시작한다. 죽음이란 우리 곁에 아주 가까이 있는 문제이고 자신 또한 죽은 남자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그녀의 일상에 균열을 낸다. 신입으로 들어온 여직원 수진을 애써 외면했던 자신을 돌아보며 감정이 흔들리고 있는 자신을 바라본다. 그리고 오랜 시간 소홀했던 아버지와의 관계도 이상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진아는 점점 자신이 구축해 온 ‘혼자의 세계’ 안에서 무언가 무너지고 있음을 발견한다. 

 

그런데 어느 날 수진이 출근하지 않았다. 진아는 출근하지 않은 수진에게 전화할 생각도 없었지만, 수진의 빈자리가 이상하면서 속상하게 느껴진다. 그 와중에 가족을 외면하고 짐덩이리가 된 아버지가 갑자기 걱정되어 집으로 가지만 문은 잠겨 있고 아버지는 없었다. 몇 번의 전화 끝에 겨우 아버지와 통화하게 된 진아는 소리친다.

 

“나에게 미안하다고 말해요. 미안하다고 말하란 말이야.” 

 

‘혼자 사는 사람들’은 진아의 일상 속 작고 섬세한 변화를 따라가면서 눈길 하나, 침묵의 무게, 말 한마디, 무표정한 얼굴이 만들어내는 고립과 외로움을 포착한다. 그녀는 완벽한 고립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인간은 타인이라는 울타리에서 서로 지지고 볶으며 사는 게 인생이라는 걸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혼자 사는 사람들은 이제 보편화되었다. 오히려 둘이 사는 사람들이 줄고 가족이 함께 사는 사람들이 보기 드물게 되었다. 혼자 산다고 세상이 끝난 것도 아니고 혼자 산다고 국가가 망하는 것도 아니다. 혼자 사는 건 고립도 아니고 비극도 아니다. 그냥 ‘혼자 있음’이라는 상태를 있는 그대로 보면 된다. 혼자 사는 것이 인구의 임계점을 넘어가면 아무렇지도 않게 세상은 스스로 맞춰져서 굴러가게 된다. 호들갑 떨 일도 아니다. 인간은 언제든지 ‘헤쳐모여’를 할 수 있는 존재다. 

 

혼자 사는 건 아직은 찝찝하고 쓸쓸한 단계다. 이 단계를 넘어서면 아무렇지도 않은 단계가 온다. 변화를 즐기면 된다. 우리는 여전히 변화에 두려운 존재다. 마치 조선시대 말에 사대부들이 ‘내 목을 자를지언정 머리카락은 자를 수 없다’고 한 것처럼 가족이라는 개념에 세뇌당한다면 그 또한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우주에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는 것만이 변하지 않는 진실이라고 말하지 않던가. 혼자라는 앞문을 잠갔다면 관계라는 뒷문을 열어놓으면 된다. 

 

타인은 태양이다. 

너무 가까우면 타고

너무 멀어지면 언다.

 

 

[최민]

까칠하지만 따뜻한 휴머니스트로 

영화를 통해 청춘을 위로받으면서

칼럼니스트와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대학에서는 경제학을 공부하고 

플로리스트로 꽃의 경제를 실현하다가

밥벌이로 말단 공무원이 되었다. 

이메일 : minchoe293@gmail.com

  

작성 2026.04.28 10:25 수정 2026.04.28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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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