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유스 / 박지호 기자] “라온디어(RAONDEAR)의 대표라는 청년이 와서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묻길래, 처음에는 이야기해주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여기저기서 우리 이야기를 물으면 열심히 이야기해 주었었는데, 그 뒤로 왜 물어봤는지 화가 날 만큼 모른 척하고, 아니면 이야기를 이상하게 엮고 붙여서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려 상처받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처음에는 왜 물어보냐고, 뭐 때문에 물어보냐고 인상 쓰고 되물었죠. 그랬더니 이 청년이 다짜고짜 ‘기록하고 남기려고요. 독립운동가 후손이니까.’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내가 ‘아,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독립운동가신 거야?’라고 청년에게 물었더니, ‘에이, 제가 몇 살인데요? 증조할아버지나 증조할머니가 독립운동가이실 수 있는 세대죠? 그런데 그건 아니에요. 그니까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지금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살고 있고, ‘대한민국’의 하늘 아래서 ‘대한민국’의 땅을 밟고, ‘대한민국’에서 나는 것들을 입고 먹고, ‘대한민국’의 언어를 배우고 쓰고, ‘대한민국’이라는 국적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으면 모두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고. 그분들이 목숨 바쳐서 지키신 ‘대한민국’의 것들을 가지고,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거잖아요? 그분들이 지킨 게 지금 ‘우리’인 거잖아요? 그럼 잊지 말아야죠. 아니, 어떻게 잊겠어요? 생각하면 너무 마음이 아파서, 생각하기만 해도 정말 감사해서. 절대 감히 잊을 수가 없죠.’라는 대답을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순간 생각이 많아져, 그날은 그러냐고만 하고 자리를 피했습니다. 그날 집에 와서 그 이야기를 곱씹고 또 곱씹었더니 갑자기 눈물이 막 쏟아져서 한참을 그냥 가만히 앉아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내가 먼저 전화했습니다. 내 나이가 구십이 다 되어서 입이 자꾸 말라 오래 이야기도 못하고 말솜씨도 없어서 하고자 하는 것에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물어봤으니 이야기는 해주겠다고. 부디 모두가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고 생각하는 마음이 진실했으면 좋겠고,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도 덧붙였지요.
그리고 한 일곱 번, 집으로 불러서 함께 밥도 먹고 차도 마시며 우리 어머니, 아버지 이야기를 해주고 주변에 있는 다른 독립운동가 후손들과 만남을 이어주고 했습니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만나고 한 열흘 뒤인가, 이 청년이 직접 쓴 <언약>이라는 극본을 가지고 날 찾아왔습니다. 극본을 처음 읽고는 그냥 마음이 저릿저릿하고, 그래서 기분이 이상해 그냥 웃었고 두 번째 읽고는 그냥 ‘고맙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는 내가 조금 울 것 같으니, 구십이 다된 할아버지 얼굴도 쭈글쭈글하고 이도 보기 안 좋아서 보면 흉측하니, 보면 좋을 게 없으니, 잠깐 나가 있으라고 그랬죠. 진짜 내가 해준 이야기만 그대로 정리해서 적었더군요. 그렇게 정신없이 이야기했고, 진짜 잘 이야기해주지도 못했는데, 그리고 서로 만난 지도 얼마 안 되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내가 기억하고 싶고, 남기고 싶은 우리 어머니, 아버지 모습만 정확히 골라서 왔는지.
다른 사람들처럼 거짓도 안 붙이고, 과장도 안 하고. 그래서 내가 다시 청년이 돌아왔을 때, 물었습니다. 이걸 누가 보겠느냐고, 누가 관심이나 있겠냐고, 그냥 우리 어머니, 아버지 이야기인데. 미련하게 이러지 말고, 나도 여기저기 인터뷰 많이 해봐서 안다고, 조금 살을 붙여도 괜찮다고. 구십이 다 된 할아버지 이야기 들어주느라 고생했다고, 이렇게 고생했으니 뭔가 청년에게도 이득이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하고 싶은 내용, 쓰고 싶은 내용 더 붙여도 된다고. 그랬더니 이 청년이 내게 그랬습니다. ‘어머님, 아버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것만도 정말 큰 영광이었고, 절대 잊지 않고 살아가겠습니다.’라고.”
위 이야기는 작품 <언약> 창작에 참여한 한 독립운동가 후손이 제작발표회 간 한 이야기 중 일부이다. ‘가장 사랑한 독립운동가에게 한 절대 지킬 수 없는 ‘언약’을 담은 이야기’라고 소개된 작품 <언약>은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창작에 참여하고 제작을 지원함이 알려지면서 연일 화제에 올랐고, 발표일이 다가올수록 더욱 높은 관심을 받아왔다.
작품 <언약>이 2022년 9월 23일인 오늘, 드디어 서울 한성대입구역 인근에 있는 문화예술공간 ‘369예술터’에서 연극으로 그 막을 올린다. 공연은 14:00, 16:00, 17:30, 총 3회 진행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