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안이 오기 전에 열심히 읽어 둬라

이 동 용 (수필가/인문학자)

 

 

미래는 도래이다.” 실존철학자 하이데거의 말입니다. “도래는 언제나 미래 속에 있다.” “언어는 존재의 도래를 빛으로 드러내기도 하고 숨기기도 한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인간은 존재의 이웃이다.” 철학자는 사람의 삶을 존재자의 존재의 형식으로 가르칩니다.

인간은 현존재, 즉 밖으로 드러난 존재인 동시에 여전히 밖으로 드러나야 할 것이 있는 존재입니다. 드러난 존재의 현상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합니다. 물속에 잠겨 있는 부분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것을 밖으로, 현상으로 드러내는 일은 오로지 자기 자신의 몫이 됩니다.

하이데거의 제자 가다머는 자주 스승에 대해서 말을 했습니다. “나의 스승 하이데거가 한 말이지만 여전히 귓속에 남아 있는 하나의 말은 미래는 도래이다라는 것이다.” 전율을 일으키는 철학적 고백입니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전하는 현상이 나의 주목을 끕니다.

소크라테스는 플라톤의 도움으로 성인의 반열에 오르는 영광을 꿰찼습니다. 플라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열성으로 불멸이 되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알렉산더의 전의로 다져진 용기에 의해 만학의 아버지라는 별명을 얻게 되는 최초의 학자가 되었습니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생각할 때마다 하는 농담이 하나 있습니다. ‘제자를 12명만 가지면 신이 된다! 예수처럼!’ 하고 말입니다. 하지만 단 한 명의 제자만으로도 이렇게 성인이 되고 불멸이 되며 또 모든 학자들의 학자라는 존재의 형상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나에게도 기억에 남는 스승들이 몇 명 있습니다. 나의 인생에 가장 큰 변화를 준 것은 물론 독일 유학시절 지도교수였던 발터 겝하르트입니다. 그의 전공분야는 니체였습니다. 니체가 곧 그였고, 그의 생각은 언제나 니체와 연결되었습니다. 그는 때로는 어린아이처럼 함께 놀기도 하고, 때로는 엄격한 겨울의 냉정함으로 사람을 꽁꽁 얼어붙게 하기도 했습니다.

박사학위를 받기 위한 구두시험을 앞두고, 강력한 무기를 하나 얻기 위해 헤겔 전공자 허버트 샤이트 교수님에게로 가서 두 번째 박사학위를 시작했습니다. 그에게서 전혀 다른 세계와 전혀 다른 관점을 배웠습니다. 겝하르트 교수님이 가족적이었다면, 샤이트 교수님은 전형적인 독일 교수님의 형상을 대변하는 듯 했습니다. 그의 연구실은 도서관을 옮겨놓은 듯 했습니다. 한우충동의 책들 속에서 삶을 살아가는 진짜 낭만적인 학자였습니다.

허버트 샤이트 교수님에게서 처음 배운 것은 플라톤의 고르기아스였습니다. 큰 강의실에서 이뤄졌던 그 첫 수업의 분위기는 잊을 수 없습니다. 단 둘이 하는 수업이라 집중력은 어마어마했습니다. 단 한 명뿐인 제자다 보니 나에게 쏟는 그의 뜨거운 열정이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하버마스와 헤겔을 거쳐 한스 게오르크 가다머의 진리와 방법을 함께 읽으면서, 아쉽게도 끝을 보지는 못했지만, 두 번째 박사학위 논문 제목이 결정되었습니다.

태극의 형상처럼 음을 알면 양은 더불어 얻는 그런 기분이었습니다. 니체를 통해 트로포니오스처럼 지하의 어둠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비결을 배웠던 터였습니다. 이제는 헤겔의 이념을 공부하며 이성의 빛을 배워야 했습니다. 발전이 무슨 의미인지를 깨달아야 했습니다. 정반합의 논리가 전하는 정신의 발전 이론과 그 이념은 즐겁기만 했습니다.

시간 속에서 시간을 바라봅니다. “노안이 오기 전에 열심히 읽어 둬라!” 아버지가 자주 했던 말입니다. ‘열심은 말 그대로 뜨거운 마음입니다. 새로운 마음에 불을 지펴 봅니다.

다음 학기를 준비하며 또 다시 한 권의 책을 손에 들었습니다. 이번엔 불안의 개념입니다. “가르치며 더 많은 것을 배운다는 세네카의 말도, 미래는 갑자기 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었던 것의 반복일 뿐이다라는 키케로의 말도 떠올리며 미래를 준비해 봅니다.


작성 2022.09.26 09:42 수정 2022.09.27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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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