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는 도래이다

이 동 용 (수필가/인문학자)

 

 

가을 단풍이 물들고 있습니다.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는 말을 자주 하게 됩니다. 기억할 게 많은 정신, 추억이 많은 정신, 과거에 얽매이는 정신이 하는 소리는 다 이런 것입니다.

하지만 메멘토 비베레(삶을 기억하라)!”라고 니체는 반시대적 고찰에서 가르쳤습니다. 삶 자체를 생각하면, 파도에 연연하지 않고 멀리 수평선을 드리운 바다를 보면, 시간은 놀랍게도 느려집니다. 폭포 속 물방울이 무지개를 만들고, 날아가는 화살이 과녁을 맞히며, 한여름 밤의 꿈이 평생을 수놓듯이, 그렇게 삶을 긍정하고 사랑하면 모든 것이 영원해집니다.

미래를 대하는 태도도 문제입니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일컫지만, 그렇게 수동적으로 기다릴 수만은 없습니다. 그래서 하이데거는 미래는 도래이다라는 말을 했던 것입니다. 과거를 향해서는 미련을 갖지 말고, 미래를 향해서는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특히 미래는 독일어 추쿤프트를 번역한 말로서, 여기서 접두어 는 방향을 의미합니다. 그쪽으로 간다는 뜻이 강합니다. 그런데 도래는 안쿤프트를 번역한 말로서, ‘은 접촉의 의미를 지닙니다. 그래서 도래는 온다는 뜻이 강해서 도착으로 번역해도 됩니다.

도래는 손님을 맞이하는 입장에서는 손님의 등장을 의미하지만, 여행자의 입장에서는 목적지에 도달한다는 의미가 됩니다. ‘가다오다가 서로 얽힙니다. 사람은 삶을 통해 존재자로서 등장할 수 있게 되지만, 동시에 존재자의 입장에서는 자유라는 가능성의 들판 한가운데에서 망설임으로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하는 숙제가 주어져 있기도 합니다.

미래는 기회입니다. 기회의 냉정한 속성처럼, 놓치면 의미 없이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그렇게 놓친 시간이 많으면 많을수록 세월은 속절없이 흘러만 갈 뿐입니다. 자신을 보여줄 거울조차 쟁취하지 못한 삶입니다. 보이는 게 없으니 볼품없는 인생이 될 뿐입니다.

인생을 무의미 속에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려면 미래를 도래하게 하는 비결을 지속적으로 연습해야 합니다. 시간을 오게 하는 연습은 쉽지 않습니다. ‘시간 공부는 거저 되는 게 아닙니다. 한 순간의 시간도 의미를 갖추게 하려면 수많은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이순耳順을 코앞에 두다 보니 죽음 소식이 나의 동시대인으로 자꾸만 좁혀 오는 느낌입니다. 언젠가는 나도 죽을 것입니다. 미로의 벽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던 카프카의 생쥐인생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할아버지나 할머니의 죽음, 그리고 부모님의 죽음을 지나고 나니, 이제 내 나이대 사람들의 죽음이 소식으로 들려옵니다. 생각이 조바심까지 재촉합니다.

며칠 전에는, 수유리라는 같은 동네에서 이웃사촌으로 지내기도 했던 배우 안성기 씨가 혈액암 투병의 후유증으로 인해 퉁퉁 부은 얼굴이 공개되기도 했습니다. 몹시 안타까웠습니다. 16년 전, 라디오 스타에서 망나니 가수의 매니저 역할을 하며 달리는 버스 안에서 김밥을 먹는 장면은 잊을 수 없는 감동 속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살려고 발버둥치는 그 배우의 열정적인 모습 속에서 많은 것을 배우기도 했습니다. 그는 나에게 그런 배우였습니다.

생로병사는 일상입니다. 그렇다고 불안 속에서 살아서도 안 되고, 마냥 즐거워해서도 안 됩니다. 평정심을 유지해야 합니다. 나는 오늘도 어김없이 그저 하던 일을 조용히 지속합니다. 아름다운 노년과 별처럼 빛날 죽음의 순간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고전을 읽고 있습니다. 별이 된 이야기들을 읽으며 함께 밤하늘 은하수의 대열에 동참해 보는 것입니다.

미래는 기어코 올 것입니다. 청춘도 때가 되면 떠날 것입니다. 아무리 애를 쓰고 버텨도 쓰러질 것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도래하게 해야 합니다. 여기서 도는 이를 도 자를 씁니다. 스스로 그곳에 이르러야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생철학이 가르치는 삶의 기술입니다.


작성 2022.10.04 09:35 수정 2022.10.04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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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