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인 J 아무개 씨가 쓴 『일본은 없다』라는 책이 한때 낙양의 지가를 올린 적이 있다. 저자가 국내 한 언론사 일본 특파원으로 근무했던 시절의 체험을 바탕으로 하여, 일본이라는 나라와 일본 국민에 대해 오기 서린 한국인의 시선으로 풀어낸 책이다. 그는 이 책을 통하여 일본의 실체는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화두를 던지고 있었다.
제목부터가 무척 신선하고 도발적이었다. 이십여 년 전, 일본이 한창 잘나가던 시절에 “일본은 없다”라며 당당히 외치고 나왔으니, 어찌 보면 얼마나 당돌하고 자신만만한 표현이었던가. 그들의 입장으로선 심히 못마땅하게 여길 법한 언사가 아닐 수 없다. 굳이 ‘~없다’는 부정적인 낱말을 가져다 쓴 의도는, 한국이 일본을 두고서 앞선 나라라며 따라 해야 할 혹은 배워야 할 것은 없다는 주장으로 읽혔다.
그런 일본을 지난해 봄 우연찮게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물론 그전에도 몇 차례 간 적이 있긴 하지만, 이번에 나는 J 씨의 주장과는 정반대로 우리나라가 죽어도 따라잡을 수 없을 것 같은, 그래서 반드시 배워야 했으면 하는 몇 가지를 두 눈으로 더욱 유심히 그리고 똑똑히 보았다. 그러면서 그것들은 나로 하여금 한없는 부러움을 사게 만들었다.
일본이 우리보다 잘사는 나라라는 사실은 솔직히 크게 부럽지 않았다. 어느 작가의 말마따나, 행복이 반드시 성적순은 아니듯 잘산다는 것이 꼭 부러움의 대상일 수만은 없지 않은가. 개인이든 국가든 남부럽지 않게 살다가도 어느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고 궁상맞게 살다가도 언젠가는 빛 볼 날이 올 수도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항용 가난할 때는 살갑게 지내다 조금 살 만하게 되면 그만큼 인정이 메말라지는 경우를 주변에서 수도 없이 보아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들이 진정 부러운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가장 먼저 갖게 된 부러움은 눈 닦고 찾아보아도 산에서 묘지 하나 발견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어느 곳을 여행하든 가는 곳마다 하늘을 찌를 듯 근심 없이 자란 삼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차 기분을 기껍게 해주었다. 조금 쓸 만하다 싶은 곳은 하나같이 묘지들이 차지한 결과, 마치 기계충이 번져 군데군데 흉터로 남은 듯 볼썽사나운 우리나라의 산들과는 너무도 대조적이었다. 웬만한 집중호우에도 산사태로 인해 집이 무너지고 아까운 생명까지 잃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는 믿음이 갔다. 그러면서 망가뜨려진 우리의 산들이 일본처럼 기품 있는 모습으로 돌아오기란 백년하청百年河淸이 아닐까 싶어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또 하나 너무도 부러웠던 것은 아무리 돌아다녀 보아도 도로에 무단으로 세워져 있는 차들을 만날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들 나라는 대도로도 물론 대체로 우리보다 좁았지만, 이면도로는 더욱 협소했다. 그렇게 열악한 여건임에도 불법 주차한 차들이 아예 없으니 교통 소통이 물 흐르듯 이루어졌다. 당연히 우리나라에서는 일상화된 주차 시비 같은 문제도 생길 리 만무해 보였다.
그래도 밤늦은 시간 퇴근해서 골목길에다 대놓은 차들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숙소 근처로 새벽 산책을 나가 보았다. 그런 혹시나 하는 몹쓸 기대감은 역시나 하는 부러움으로 바뀌었다. 골목골목마다 가로등만 줄지어 졸고 있을 뿐, 일자로 쭉 뻗은 이면도로에 평온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아! 이래서 일본은 선진국이구나.” 하는 감탄사가 입에서 절로 튀어나왔다.
그 광경을 보면서 우리나라의 상황이 그려졌다. 우리도 차고지증명제 같은 법을 시행한 지 하마나 수십 년이 흘렀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법이 마련되어 있다 한들 지키지 않으니 무슨 소용 가치를 지닐 것인가. 갈수록 악화 일로를 걷고 있는 무질서한 주차 예절을 보노라면 죽었다 깨어나도 일본을 따라잡을 수 없을 것 같다는 회의감이 든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참으로 부러웠던 점은 환경을 아끼고 보존하려는 그들의 선진시민의식이었다. 시장에서건 거리에서건 공원에서건 어디를 가도 길에 떨어져 있는 휴지 조각 하나, 담배꽁초 한 개 발견할 수 없었으니, 그들이 환경에 대하여 얼마나 철저한 질서 의식을 지녔는지 똑똑히 읽을 수 있었다. 심지어 환경미화원이 애당초 필요 있을까 의아심이 들 정도였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서는 해마다 겨울철만 되었다 하면 언론에서 연일 그 심각성을 보도하고 있는 미세먼지 문제도 일본에서는 그리 큰 걱정거리가 될 성싶지 않았다.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미세먼지의 주범은 공장 굴뚝에서 내뿜는 연기와 자동차, 특히 디젤 엔진에서 나오는 매연 아닌가. 일본은 공장지대가 주택가와 철저히 분리되어 있고 또한 미세먼지를 가장 많이 배출한다는 디젤차도 거의 구경하기 힘들었다. 승용차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소형 승합차도 절대다수가 휘발유 내지는 전기를 연료로 쓰고 있으며, 심지어 대중교통인 버스까지도 대부분 천연가스 차들이었다. 미세먼지 발생 요인을 최대한으로 줄여 깨끗한 환경을 지켜나가고 있으니 애당초 그런 문제를 염려할 필요 자체가 없지 않은가. 하루를 살더라도 이런 환경에서 한번 지내봤으면 하는 부러운 마음이 드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우리가 일제 36년 동안 갖은 박해를 받고 수난을 당하였기에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여전히 그들 나라에 대해서 가진 좋지 않은 감정을 완전히 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본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면 받아야 옳지 않을까. 여든의 할아버지가 세 살 손자에게도 배울 점이 있다지만, 때로는 원수한테도 배울 만한 것은 배워야 하는 것이 현명한 이들이 지녀야 할 세상살이의 이치이리라.
[곽흥렬]
1991년 《수필문학》, 1999년《대구문학》으로 등단
수필집 『우시장의 오후』를 비롯하여 총 12권 펴냄
교원문학상, 중봉 조헌문학상, 성호문학상,
흑구문학상, 한국동서문학 작품상 등을 수상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기금 받음
제4회 코스미안상 대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