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칼럼] 나의 해방일지

고석근

단지 예술에 의해서만 우리는 자신의 바깥으로 나아갈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이 이 우주에서 무엇을 보고 있는지를 알게 된다.

 

- 마르셀 프루스트 Marcel Proust (1871-1922, 프랑스의 소설가)  

 

 

어릴 적 부모님에게서 ‘못됐다’라는 말을 몇 번 들었던 기억이 있다. 나는 그때마다 속으로 수긍하지 않았다. 나는 내가 정말 ‘나쁜 놈’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중년에 들어서며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차츰 알아가게 되었다.

 

나는 어릴 때 엄마에게 혼이 나면, 방에 들어가 장롱의 작은 서랍에 있는 물건들을 엄마 것과 내 것을 떼어 놓았다. 이런 얘기를 하면 다들 웃는다. “참 남자애가?” 까칠한 아이, 나의 어린 시절의 자화상이다.  

 

소심한 아이가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며 형성된 나쁜 성격일 것이다. 나는 항상 사람을 둘로 나눴다. ‘나의 편인가? 남의 편인가?’ 이런 사고가 나의 무의식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세 들어 살며 항상 주인집의 눈치를 보다 보니, 그런 사고가 형성되었을 것이다. 이런 사고방식이 초등학교에 들어가며 더 깊어진 것 같다. 시골 아이가 읍내 학교에 다니며 희멀건 읍내 아이들에게 갖게 되는 열등의식은 너무나 깊어져 갔을 것이다.

 

30대 중반에 들어서며 내게 위기가 왔다. 폭발할 것 같았다. 나는 직장을 그만두고 자유인이 되었다. 시 공부를 하고 뒤풀이를 할 때, 그동안 내 안에 쌓여있던 어두운 내가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때까지 나는 한번도 술주정을 한 적이 없었다. 아니, 나는 술에 취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오! 나는 쉽게 술에 취해 마구 울부짖었다. 눈물이 쏟아져 흘러내렸다. 한 번 마음의 둑이 무너지자 걷잡을 수 없었다.

 

거의 10여 년 정도 마음을 정화한 것 같다. 그때 들여다본 내 마음속은 흡사 우물 같았다. 평소에는 컴컴했다. 한참 동안 눈물을 쏟고 나면 내 마음의 우물은 맑디맑았다. 세상도 해맑았다.

 

그동안 나는 항상 나를 선한 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세상 사람들이 나만큼만 착하게 살면 세상이 참 좋아질 텐데’하고 생각했었다. 가난한 빈농의 아이는 자신보다 강한 자들을 모두 악한 자로 만들고 자신을 선한 자로 만들어 힘든 삶을 버텨냈던 것이다.

 

니체가 말하는 노예도덕이었다. 자신이 선한 자라는 강한 믿음을 가진 인간은 얼마나 위험한가! 나는 고등학교 때 육군사관학교에 가려고 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에는 돈이 안 들어가는 대학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나의 속마음은 권력욕이 아니었을까?

 

그때 육사에 갔더라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못된 장교’가 될 확률이 높았을 것이다. 학창 시절에 열등의식이 강했던 히틀러는 최고의 권력을 잡게 되자 악마의 화신이 되지 않았는가?

 

그는 음악을 좋아했다고 한다. 그는 음악을 들으며 잠시 악마인 자신에게서 해방될 수 있었을 것이다. 현대소설의 창시자로 칭송을 받는 프루스트는 말했다.

 

“단지 예술에 의해서만 우리는 자신의 바깥으로 나아갈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이 이 우주에서 무엇을 보고 있는지를 알게 된다.”

 

나는 시 공부를 하며 나 자신의 바깥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심층심리학자 칼 융은 말한다.

 

“인생의 목적은 자기실현(自己實現)” 

 

우리의 무의식에는 헛것인 자신들이 켜켜이 쌓여있다. 이것들을 다 씻어내고 깊은 마음속에 있는 말간 나를 드러내는 것, 이 나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 이것이 인생의 목적이다.  

 

지금도 내 마음 깊은 곳에는 뱀처럼 똬리를 튼 어두운 내가 있다. 밖으로 뛰쳐나오려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다. 내가 진짜 나로 살아가면 그는 힘을 쓰지 못한다. 나는 항상 이 진짜 나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어야 한다.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 기형도, <질투는 나의 힘> 부분  

 

 

사람은 누구나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맬 것이다. 그런데 왜 이 세상은 아비규환의 생지옥일까? 질투가 그들의 힘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질투는 나의 힘’이라는 것을 아는 시인은 이제 스스로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그는 머지않아 사랑을 되찾게 되었을 것이다.

 

[고석근]

수필가

인문학 강사 

한국산문 신인상

제6회 민들레문학상 수상.

이메일: ksk21ccc-@daum.net

 

작성 2023.05.18 11:22 수정 2023.05.18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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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