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또 만났군요 <중략> 어쩐 일일까 궁금했는데 다시 만나 보아 반가워요”
중·노년층의 인기 프로인 KBS 가요무대에서 반세기 전, 가수 장미화가 부른 <안녕하세요>라는 곡이 흘러나온다. 가만히 노래를 듣고 있으려니 시답잖은 생각 하나로 머리가 복잡해진다.
오랜 세월에 걸쳐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 온 이 유행가가 시나브로 영향을 미친 때문일까. 요즈음 어떤 사이이든 서로 만나면 대놓고 하는 인사들이 무조건 ‘안녕하세요’다. 위아래 구분도 없다. 어른도 아이한테 “안녕하세요” 하고 아이도 어른한테 “안녕하세요” 한다.
이 ‘안녕하세요’라는 인사가 듣기에 여간 거슬리지 않는다. 특히나 아이들이 어른들 앞에서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건넬 때면, 마치 동격으로 맞먹으려는 것처럼 여겨져 기분이 썩 유쾌하지 못하다.
십여 년 전, 대구문학영재학교에서 강의를 하던 때가 생각난다. 그때 중학생 가운데 문학영재들을 선발해 방과 후 학교를 운영한 교육청 커리큘럼에 참여하여 한 두어 해 창작 지도를 한 적이 있다. 한창 사춘기 시절인 열네댓 살 소년 소녀들이었음에도 어휘 구사력이며 문장 표현력 같은 것이 평균적인 수준의 사오십 대 어른들보다도 뛰어나 놀라움을 금치 못했었다.
그 수십 명의 문학영재 가운데 유독 한 여학생이 기억에 남는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그 여학생의 인상이 지금껏 머릿속 깊숙이 머물러 있는 것은, 다른 아이들에 비하여 특별히 더 똑똑했다거나 창작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다. 그보다는 만날 때마다 했던 인사말 때문이다.
다른 아이들은 하나같이 건성 건성으로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해대는데, 오직 그 아이만이 항시 두 발을 가지런히 모은 채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며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했었다. 나는 그 아이로부터 인사를 들을 때마다 요즈음같이 예법이 무질서한, 아니 무너진 세상에서 참 반듯하게 가정교육을 받았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고, 아이의 부모님이 무슨 일을 하시는 분일까 즐거운 상상 속에 빠져 보곤 했었다.
우리 한국어는 세계 어느 나라 말보다 존대법이 발달한 언어로 알려져 있다. 여기서 예로 든 ‘안녕하세요’와 ‘안녕하십니까’만 해도 그렇다. ‘안녕하세요’는 비격식체로, ‘안녕하십니까’는 격식체로 사용되는 인사법이다. 어른이 아이한테 말을 할 때는 비격식체를 쓰면 되지만, 아이가 어른한테 말을 할 때는 당연히 격식체를 써야 마땅할 터이다. 그런데도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거의가 “안녕하세요”다. 이러다 보니 ‘안녕하십니까’는 이제 좀처럼 듣기 힘든 인사말이 되어 버렸다.
예전 사람들은 상대방에 따라서, 그리고 상황에 맞게 ‘안녕하세요’와 ‘안녕하십니까’를 적절히 구분하여 썼다. 그만큼 일상생활에서 언어 예절을 중요시해 왔다. 우리가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소리를 들은 이유 가운데 하나로 언어 예절도 분명 한몫을 거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들어서는 이 언어 예절의 기반이 무너져 동방예의지국이 아니라 ‘동방무례지국’이 되어 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손님, 커피 나오셨습니다’ ‘맞는 사이즈가 없으십니다’처럼, 높여야 할 대상인 사람한테는 낮추면서 정작 낮추어야 할 대상인 물건한테는 오히려 높이는 희한한 경우도 심심찮게 본다. 특히 젊은 사람들 가운데서 이런 일그러진 말버릇이 일상화해 가고 있는 듯싶어 씁쓸한 마음이 든다.
대다수의 아이들이 어른 앞에서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할 때 어쩌다 “안녕하십니까” 하고 공손하게 인사를 건네 오는 아이를 만나면 마치 군계일학처럼 돋보인다. 그래서 기특한 마음에 한 번 더 눈길을 주게 된다. 일상에 널려 있는 인사말 하나에도 이렇게 호불호를 따지면서 분별심을 내는 것이 나만의 까탈스러운 생각일까.
우리나라에서는 예부터 인사를 잘하고 못하는 것으로 사람 됨됨이를 가름해 왔다. 인사성이 바른 이를 보면 “아무개 아들(혹은 딸)은 사람이 참 반듯해.” 하면서 은근히 그의 부모까지 추어올렸다. 이처럼 인사가 예절의 척도로 여겨지는 것이 우리의 정서였다.
안 그래도 신경 쓸 일 많은 복잡다단한 세상에 대충 넘어가면 되지 뭐 그리 좀스럽게 따지느냐며 못마땅하게 여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무리 편리를 좇는 시대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인사법 하나라도 제대로 알고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이 아름답고 질서 있는 사회를 만드는 방편이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다.
흔히 정치판에서 쓰는 유행어로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고들 하지만, 우리네 사람살이에서야말로 진짜 인사가 만사 아닐까.
[곽흥렬]
1991년 《수필문학》, 1999년《대구문학》으로 등단
수필집 『우시장의 오후』를 비롯하여 총 12권 펴냄
교원문학상, 중봉 조헌문학상, 성호문학상,
흑구문학상, 한국동서문학 작품상 등을 수상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기금 받음
제4회 코스미안상 대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