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의 예술가 마르셀 뒤샹은 1917년 4월 10일 뉴욕 독립미술가협회전에 ‘샘’이라는 작품을 출품했다. 그는 상점에서 남성 소변기를 하나 구입한 뒤 이 변기에 제작년도와 함께 화장실용품 제조업체인 리처드 머트(R. Mutt)란 이름으로 서명하고, ‘샘(Fountain)’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전시회 운영위원들은 일상품인 소변기를 예술작품으로 전시할 수 있는가에 대해 논의했고, 결국 ‘샘’은 철수되었다. 하지만 이후 이 변기는 현대예술의 새로운 세계를 열게 된다. 이 변기는 1999년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무려 1,700만 달러에 낙찰되었다.
왜 이 평범한 변기가 ‘위대한 예술 작품’이 되는 걸까? 변기를 ‘일상품의 어느 하나’로 바꾸면 어떨까? 예전에는 왕이나 귀족만 인간으로 대접을 받았다. 예술 작품으로 인정을 받는 것들은 그들이 소유한 작품들이었다.
하지만 진정으로 인간 세상에 필요한 것들은 평민, 노예들이 가진 생필품, 농기구 같은 것들이 아닌가? 왕이나 귀족들이 가진 것들은 없어도 되지만, 평민, 노예들이 가진 것들은 인간의 삶에 필수적인 것들이다.
어느 것들이 중요한가? 뒤샹은 우리에게 이것을 물었던 것이다. 인간의 삶에 필수적인 변기가 고귀한 물품(예술 작품)이 아니라는 말인가? 민주주의 사회가 되었어도 아직 사람들의 의식엔 고귀한 것들은 따로 있다는 몸에 깊이 밴 습성이 있다.
그런 습성으로 보면 변기는 절대로 예술 작품이 될 수 없다. 하지만 그런 ‘악습’을 벗겨내고 변기를 보자. 얼마나 고귀하고 위대한가! 변기만 그러랴? 인간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다 그렇지 아니한가?
이제 우리는 말간 눈으로 자신과 세상을 보아야 한다. 더할 나위 없이 눈부신 빛과 향을 내뿜을 것이다.
저녁 상가(喪家)에 구두들이 모인다
아무리 단정히 벗어놓아도
문상을 하고 나면 흐트러져 있는 신발들
젠장, 구두가 구두를
짓밟는 게 삶이다
(...)
밤 깊어 헐렁한 구두 하나 아무렇게나 꿰 신고
담장 가에 가서 오줌을 누면, 보인다
북천(北天)에 새로 생긴 신발자리 별 몇 개
- 유홍준, <상가에 모인 구두들> 부분
시인은 오줌을 누러 상가(喪家)의 어지러이 흐트러져 있는 구두들을 벗어나 하늘을 본다.
그의 눈에 선명하게 박히는 신발자리 별 몇 개.
그는 구두들 세계로 돌아와 별자리를 보게 될 것이다.
[고석근]
수필가
인문학 강사
한국산문 신인상
제6회 민들레문학상 수상.
이메일: ksk21ccc-@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