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흥렬의 인문학적 글쓰기] 삼국 시대를 넘어서 사국 시대로

곽흥렬

선입견처럼 무서운 것도 없다 싶다. 사람들의 머릿속을 각질화시키는 데 절대적인 기여를 하는 것이 바로 이 선입견이라는 생각에서다. 

 

내남없이 우리나라의 고대 역사라고 하면 으레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을 떠올린다. 여기에 대해서 누구도 의문을 품지 않는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이 얼마나 틀에 박힌 발상인지 나는 이번에 ‘에세이로 풀어낸 대가야의 역사와 문화’라는 주제로 죽 집필을 해 오는 과정에서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고구려, 백제 그리고 신라로 통칭 되어 온, 솥발처럼 정립되어 있는 삼국三國 시대가 가야를 아우르는 사국四國 시대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선 몇 가지의 근거가 그 당위성을 충분히 뒷받침해 줄 수 있다고 믿는다. 우선은 기원후 42년부터 562년까지 장장 오백 년 이상을 존속해 왔다는 정치적인 이유를 들 수 있겠다. 

 

오백 년이라면 474년에 지나지 않는 고려의 역사보다도 더 긴 기간이 아닌가. 아니, 그보다 훨씬 이전인 기원전 2세기 내지는 1세기 초에 한반도 서북 지역으로부터 철기와 회색토기를 기반으로 하는 발달된 문화가 영남 지역으로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성립된 나라가 대가야라는 학설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니, 그런 주장은 충분한 설득력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다. 

 

대가야는 매우 힘이 강하고 번성했던 나라였다. 춘추전국 시대처럼 수많은 토호 세력들이 활개를 치던 고대 사회에서 강성하지 않고서야 그만큼 기나긴 세월을 어찌 버텨낼 수 있었을 것인가.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깨금발로 도움닫기 해도 단번에 건너뛸 만큼 좁디좁은 땅덩어리에 어떻게 대가야의 도읍지가 세워졌으며, 그 역사가 자그마치 반 천년도 넘게 이어졌는지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다양하고도 수준 높은 문화유산을 많이 남겼다는 사실일 것이다. 대가야의 문화는 삼국과 견주어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 한때 고구려의 수도였던 평양과 백제의 부여, 신라의 경주 지역에 못잖게 찬란한 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 고령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마도 오랜 세월 동안 지속되어 온 대가야의 역사와 맥을 같이한다고 하겠다. 

 

처음 나는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만 발길 닿는 곳이면 어디든 유적 아닌 데가 없고 눈길 가는 어느 곳을 들추어내든 유물이 출토되지 않는 곳이 없는 줄 알았다. 나중에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발품을 팔아 보니 그게 아니었다. 대가야의 수도였던 고령에도 경주 못잖게 다양한 문화유산이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그중 삼국의 어느 나라도 갖지 못한 수준 높은 철기 문화는 가야 문화의 우월성을 나타내 주는 확연한 증거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거기다 경주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700여 기에 이르는 엄청난 고분군은 대가야가 자랑하는 또 하나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내 고장 고령에 이처럼 훌륭한 문화유산이 산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미처 몰랐다.

 

문이 무를 지배한다는 말이 있다. 비록 무력에서 밀려 어쩔 수 없이 신라에 복속되는 운명을 겪고 말았지만, 문화에서만큼은 결코 지지 않았다고 감히 확신한다. 때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가야의 역사가 이제라도 우리 고대사에서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것도 다양한 문화유산이 뒷받침해 주기 때문이 아닐까. 

 

이번 연속 기획물을 통해 나는 대가야의 역사와 문화를 새롭게 조명함으로써 가야가 사국에 속해야 하는 당위성을 밝히는 일에 하나의 소명 의식 같은 것을 느낀다. 또한 이것이 내가 대가야국의 후예로서 고향인 고령을 사랑하고 아끼는 한 방편이기도 하다.

 

꼭 신라, 고구려, 백제, 가야의 사국 시대로 역사가 새롭게 정립되었으면 싶다. 그날이 하루빨리 도래하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곽흥렬]

1991년 《수필문학》, 1999년《대구문학》으로 등단

수필집 『우시장의 오후』를 비롯하여 총 12권 펴냄

교원문학상, 중봉 조헌문학상, 성호문학상, 

흑구문학상, 한국동서문학 작품상 등을 수상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기금 받음

제4회 코스미안상 대상 수상

이메일 kwak-pogok@hanmail.net

 

작성 2023.06.02 10:36 수정 2023.06.02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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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