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영의 낭만詩객] 나는 걸레

이순영

애꾸눈 나라에 가면 두 눈 멀쩡한 사람이 병신이다. 미치광이 나라에 가면 미치지 않은 사람이 이상한 사람이다. 한평생을 미치광이로 산 사람들은 정말 미쳐서가 아니라 미친 척 살아야 살 수 있는 세상이었을 것이다. 마음이 여리거나 혹은 마음이 독하거나 그도 저도 아니면 너무 뛰어나서 평범한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거나 해서 미친 척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미치광이 중이라고 불리는 걸 즐긴 사람이 있다. 파격과 일탈로 세상을 조롱하며 산 그를 사람들은 중광이라고 불렀다. 

 

나는 미칠 줄 아는 그가 부러웠다. 자신을 스스로 미치광이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할 수 있는 그의 용기가 부러웠다. 다 내려놓고 나면 아무것도 거칠 게 없는데 우리는 그 알량한 것을 꽉 쥐고 있으니 위선을 떨고 미련을 부리며 산다. 개나 줘도 안 먹는 자존심, 개도 싫어하는 권위를 내려놓고 바람처럼 물처럼 산 중광은 이름처럼 미치광이로 살면서 자유롭게 가슴 뛰는 대로 산 자유인이다.

 

우리는 스스로 격이라는 틀에 들어가 자신을 높이는 걸 자랑스러워한다. 품격이니 인격이니 하면서 격이라는 틀에 가둬 놓고 그 틀을 벗어나면 나쁜 사람 못된 사람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깎아내린다. 정말 격을 벗어나면 사람 범주에 들지 않는 것일까. 평생 격 안에 갇혀서 살아야 제대로 산 사람일까. 격이라는 질서를 깨고 나오면 살 수 없는 세상일까. 그 격을 깨고 나와 낄낄거리며 재밌고 행복하게 산 사람들을 우리는 기인이라고 한다. 

 

근대에 3대 기인이라고 하면 시인 ‘천상병’, 소설가 ‘이외수’, 승려 ‘중광’을 꼽는다. 이 사람들은 격을 깨고 나와 파격적으로 산 사람들이다. 국가나 사회가 정해 논 틀을 깨고 나와 자유롭게 산 사람들이다. 그렇다고 법을 어기거나 사회를 어지럽힌 건 아니다. 그들은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고 열정적으로 살았으며 자유롭게 살았다. 우리는 그들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끼고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그들은 시를 통해 글을 통해 그림을 통해 사람과 자연과 소통하는 법을 알았고 자신과 화해하는 법을 안 사람들이다. 

 

스스로 걸레라고 자칭한 중광 스님은 이름도 미치광인데 애칭까지 걸레라니 이보다 더 자신을 낮출 수 있는가. 자신을 높이는 건 쉬워도 낮추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가장 더럽고 가장 천박한 걸레로 자신을 낮췄지만, 사실은 가장 경건하게 가장 경이롭게 산 사람들이다. 우리는 죽었다가 깨나도 못 한다. 알량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서 못 하고 남들의 시선이 무서워서 못 하고 틀을 깰 용기가 없어서 못 한다. 중광스님은 스스로를 걸레하고 하면서도 좋아서 웃고 행복해서 웃었다. 그 힘으로 그림을 그리고 시를 썼다. ‘나는 걸레’를 외치며 자기 내면을 얼마나 반짝반짝 빛나게 닦고 또 닦았을까. 

 

나는 걸레

 

 

반은 미친 듯 

반은 성한 듯

사는 게다.

 

삼천대천세계는

산산이 부서지고

 

나는 참으로 고독해서

넘실넘실 춤을 추는 거야

 

삶도 예술이다. 종교도 삶을 위한 행위고 예술도 삶을 위한 것이다. 지리멸렬한 삶에게 예술은 열고 나갈 수 있는 문이었을 것이다. 불교도 그의 파격을 감당하지 못해 1979년 승적을 박탈한다. 중광은 천성적으로 얽매임을 견딜 수 없는 자유인이었을 것이다. 그가 그린 선화는 이전에 아무도 하지 못한 독보적인 세계관을 구축해 단번에 명성을 얻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그저 정신 나간 땡중의 그림이라고 깎아내렸지만, 외국인들이 먼저 그의 그림의 가치를 알아보고 환호했다. 

 

1977년 영국 왕립 아시아학회에 초청받아서 갔는데 그 자리에서 ‘나는 걸레’라는 자작시를 낭송했다. 그 후 그는 ‘걸레스님’으로 불리며 그림도 시도 그의 행적도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되면서 떠오르게 된다. 그의 이야기는 ‘허튼소리’라는 영화로 만들어졌고 ‘청송으로 가는 길’이라는 영화에는 직접 출현해 배우 아닌 배우가 되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학생 때 서울대 법대에서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유혈 진압에 대한 모의재판을 열어 전두환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뒷감당이 무서워진 윤석열은 외가가 있는 강릉으로 피신했다가 낙산사에서 중광을 만나 많은 조언을 받으면서 인연을 맺었다고 한다. 

 

술과 담배로 건강이 나빠진 그는 설악산 백담사로 들어가 달마그림에 몰두하면서 오현스님으로부터 바위처럼 벙어리로 살라는 뜻의 ‘농암’이라는 법호를 받게 된다. 그를 대명하는 것들은 모두 낮아도 너무 낮다. 걸레, 농암, 중광…. 그는 낮아서 높고 높아서 낮았는지 모른다. 건강이 좀 회복되어 경기도로 내려와 ‘벙어리 절간’이라고 이름 붙인 곳에서 달마도를 그렸다. 그러다가 어느 날 그는 홀연히 세상과 인연을 놓고 저 우주로 가버렸다. 그는 말한다.

 

‘괜히 왔다 간다’

 

[이순영]

수필가

칼럼니스트

이메일eee0411@yahoo.com

 

작성 2023.06.15 10:49 수정 2023.06.15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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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