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필의 인문학 여행] “등대 빛이 가는 곳”

김용필

 -묵호 등대 이야기

 

실향민의 영혼이 묻힌 묵호 등대 이야기

 

인생의 비전과 희망은 소설이 만든다. 소설을 읽지 않는 자는 무엇으로 세상을 이야기하랴. 이야기 없는 세상, 생각만 해도 숨이 막힌다. 호메로스는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에서 수많은 신화를 생과 사후 이야기로 남겼다. 

 

일리아드는 트로이아 전쟁의 이야기에서 운명과 분노라는 키워드를 남겼다. 아무리 유명한 영웅일지라도 죽음 되엔 분노만 남는다.’ ‘오디세이가 그의 땅으로 돌아오는 운명처럼 우리는 트로이아 전쟁 전에 있었던 일과 전쟁 후 일어날 일을 다 알고 있었다. 제아무리 신의 사랑을 받던 용맹하고 강인한 사람도 죽음이라는 정해진 운명을 벗어나지는 못한다는 이야기였다.

 

묵호등대는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관을 가진 등대이다. 따라서 명성만큼이나 묵호등대엔 수많은 사연과 이야기가 있었다. 난 등대 이야기 오디세이를 만들려고 묵호 등대를 찾았다. 묵호 등대는 섬 아닌 육지 해변의 언덕에 세워진 유일한 등대로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경을 가진 등대이다. 

 

묵호등대는 어느 등대보다 많은 사연과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국 전란으로 불행을 맞은 실향민들의 슬픔과 절망의 바다에서 생업하는 어부들의 숨 가쁜 애환이 절절하게 서려 있었다. 해발 150m 80부 논골담길 산상에 세워진 등대는 오르기가 숨차다. 왜 이런 곳에 등대를 세웠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는데 막상 사연을 듣고 보니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렸다. 한국 전란 때 이북 피난민들이 임시 거처로 만든 기거 촌이란다. 언제나 돌아갈까 기다림에 지친 실향민에게 희망을 주는 등대였다. 육지로 못 가면 바다로 가겠지. 항구로 오는 뱃길보다는 떠나는 뱃길을 염려한 것 같았다. 

 

바람의 언덕 위에 세워진 등대는 동해안 어장의 중심지인 묵호항으로 들어오는 오징어. 꽁치, 명태를 실은 어선의 행로를 밝혀주는 이정표였다. 묵호(墨湖)라는 이름은 검은 바위로 암초가 많은 곳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어장이 활기를 띠면서 오징어 먹물과 흑태, 먹태를 만들던 덕장의 물이 바다를 검게 할 정도로 풍성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좋은 어항이 동해로 옮겨지면서 묵호는 활기를 잃었다. 

 

묵호등대는 1962년 실향민들이 논골에 지게로 자갈과 모래를 실어 나르고 여인들은 대야로 이고 날라 희망의 상징인 등대를 세웠다. 다시 2006년에 개축한 것이 지금의 등대이다. 그런데 번창하던 논골담 등대길이 실향민이 하나둘씩 죽어가면서 빈집이 생기면서 활기를 잃었다. 그러나 명승지로 바뀐 것은 주민이 떠난 집에 관광 펜션이 생기면서 밤의 아파트 논골은 여행객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장소가 되었다. 다시 등대 길은 관광벨트로 만들어졌다. 그 언젠가 통일이 되면 이곳에서 죽어간 실향민의 후손들이 이곳을 찾을 것이다. 

 

한국의 산토리니 논골담 언덕

 

주민이 떠난 논골담 옛길에 잡초만 무성하였다. 논골을 따라 담을 쳤다고 해서 논골담 마을이란다. 묵호 등대는 그리스 산토리니섬의 오이냐와 피사의 산상 도시 풍경을 자아낸다. 바다에서 바라보면 산토리니는 성벽 도시 같고 논골담 마을은 불빛이 켜진 고층 아파트 단지 같은 야경을 자아낸다. 바람의 등대 언덕 논골담 마을은 실향민들의 구구절절한 사연과 슬픔이 얽혀 있었다. 

 

한국전쟁 때 이북 땅을 떠난 실향민들이 임시 거처로 정착촌을 이룬 곳이다. 언젠가는 전쟁이 끝나며 돌아갈 수 있겠지 하는 생각으로 임시 거처를 만들었다. 가파른 언덕을 파서 집터를 만들고 비탈에 논둑같은 담을 치고 움막집을 짓고 빈터엔 꽃과 나무를 심었다. 그야말로 괭이로 땅을 파고 지게로 흙과 돌을 실어날라 집을 짓고 루핑과 양철과 슬레이트로 지붕을 만들고 눈비를 막을 정도의 집이었다. 살면서 언제든지 떠날 준비를 하였다. 

 

이곳의 실향민들은 모두 어장에서 일했다. 꽁치 어장과 오징어, 명태어장에서 일하고 하루 품삯은 보리쌀 한 되. 밀가루 한 되를 받았다. 그나마 묵호 어장은 이들을 먹여 살렸다. 여유 있는 사람들은 바람의 언덕 비탈 소나무밭에 덕장을 만들어 오징어, 먹태를 말려서 팔곤 하였다. 그러나 80년대까지만 해도 돌아갈 희망을 갖고 임시 거처했는데 세월이 가고 동료 실향민이 점차 죽어가면서 절망의 땅이 되었다. 

실향들이 죽고 떠나면서 논골담 마을은 빈집만 흉한 몰골로 드러냈는데 어느 날 등대 언덕 오두막이 관광 여숙(旅宿)으로 바뀌면서 새로운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논골담 묵호 등대는 바다에서 길 잃고 육지에서 절망에 찬 실향민들에게 희망을 안겨 주었다. 난 그들의 절절한 사연을 이야기로 전하고 싶었다. 그만큼 바람의 언덕에 세어진 등대는 숱한 이야길 여행자들에게 들려준다. 등대에 오르는 이야기는 5길로 나뉘어진다. 제1길은 포토죤과 나폴리 다방, 기념품 가게가 들려주는 이야기이고 제2길을 시간여행의 묵호 극장이 보여주는 이야기며, 제3길은 장화돌담이야기, 묵호액자그림, 만복이네 집, 솟대 동산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많다. 제4길은 바람막이 길로 행복 우체국에 실린 등대이야기이며 제5길은 등대 오름길 바람개비 풍차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길 위에 놓여있다.

 

논골담 마을을 지키는 할머니

 

‘아저씨, 우리 강아지 혼 좀 내줘요. 도통 내 말을 안 들어요.’ 여행자 펜션이 늘비한 바람의 언덕 논골담 마을에 90 노령의 할머니 한 분이 마당에 와상을 놓고 앉아 먼바다를 바라보며 지나가는 낯선 사람들에게 말을 건넨다.  

 

‘길이 가파르니 조심하세요. 잘 넘어져요. 어떤 젊은이가 자빠져서 다리를 부러뜨렸어요.’ 할머닌, 누군가에게나 실없는 말을 거는 것이다. 논골담길에 자연초에 묻혀 신선처럼 사는 노인이다. 약간의 치매기가 있다. 할머닌 바람의 언덕에 무성하게 자란 화초 같았다. 

 

 “낯선 아저씨, 저기 바람의 언덕으로 돌아가면 경치가 아주 좋아요.”

 “할머니는 이곳에 혼자 사세요?”

 “네. 손자와 같이 살다가 저 아래 아파트로 이사 갔어요. 저녁에 한 번씩 왔다 가요.”  

 “그렇군요. 식사는 어떻게 하세요?”

 “시청에서 밥 지어 날라다 주는 아줌마가 있어요. 아침에 세끼 양을 가져다 놓아요. 그리고 전화하면 달려와요.”

 “그렇군요, 따뜻하게 주무셔요.” 

 “등대 불빛이 강렬하죠. 어둠 속에서도 저 멀리 들어 오는 배가 보여요.”

 “맞아요. 등대는 희망이지요.” 그때 털복숭이 강아지가 마당을 뛰어다녔다.

 “아저씨, 저놈(강아지) 혼 좀 내줘요. 도통 내 말을 안 들어요.”

 “네 이놈, 강아지야, 왜 할머니 말을 안 듣니?” 강아진 들은 척 만 척하고 마당을 뛰어다녔다. 고양이 떼가 나타났다. 강아진 고양이를 쫓아다녔다.

 “저 고양이 좀 쫓아 줘요. 도둑놈이에요. 내 밥을 늘 훔쳐 먹는다니까요.”

 

이곳 언덕엔 고양이가 많았다. 깨끗한 털에 신선 같은 모습의 예쁜 고양이었다. 이곳에 고양이가 많은 것은 오징어, 명태 덕장이 생기면서 많아졌다. 고양이가 나타나자 할머닌 지팡이를 내젓는다. 할머닌 고양이를 도둑놈이라고 몹시 싫어했다.

 

 “여기서 얼마나 사셨어요.”
 “73년이요, 피난 와서 살았어요.

 “연세가 어떻게 되셔요?”

 “90이요. 같이 살던 친구들도 모두 다 가고 나 혼자만 남았다오.”

 

저녁 산책길에서 잠시 만난 할머니와의 이야기였다. 애절한 절규를 듣고 있노라니 가슴이 먹먹해 왔다. 그토록 가고 싶었던 고향인데 이젠 갈 수도 없지만 가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등댓불이 지평선을 향하여 센 빛을 발한다. 바다에 고깃배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뱃길을 찾는 어부들에겐 희망의 빛이었고 할머니에겐 더 큰 희망의 빛이었다. 바람의 언덕 등대 펜션에서 하룻밤을 새운다. 파도 소리마저 고요한 밤이다. 논골담 등대마을, 산토리니 언덕의 밤은 그렇게 깊어가고 있었다. 

 

망상해변에서 마음을 비우다 

 

아침에 해변 크래킹으로 나선다. 논골담 등대에서 어달해변, 대신해변, 노봉해변을 거쳐 망상해변 해수욕장까지 5km 해파랑길을 걷는 트래킹이었다. 도채비(도깨비)골 해랑 전망대와 도채비 스카이밸리를 지나는 해변 트래킹은 묵호 여행의 절정이었다. 그러나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나무 그늘 하나 없은 해변을 걷기가 무척 힘들어서 어달해변에 왔을 때 도보 행을 포기하고 택시로 이동하여 망상해수욕장까지 갔다. 어달(漁達)해변은 고기떼가 몰려든다는 곳이다. 동해의 거친 파도에 지친 오징어 명태가 떼가 먹물을 품으며 이달 해변에서 쉼을 갖는다. 

 

망상해수욕장은 황금 모래벌 같았다. 지각 변동으로 모든 해수욕장이 모래 유실이 많다는데 유독 망상해수욕장은 모래가 모여드는 사달(沙達)로 모래량이 많고 모래질도 좋은 아름다운 사장이었다. 동해안 해수욕장 하면 망상해수욕장이 유명해서 하절기 방송제가 자주 열리던 곳이었다. 

 

저 멀리 사장 끝 파도가 부서지는 해변에 한 여인이 서 있다. 먼바다를 바라보면 멍때리기라도 하는 듯 미동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한참 후 여인은 파도가 밀어 올린 모래 자락을 걷고 있었다. 망상은 추억을 버리는 곳이다. 바다를 향하여 큰소리쳐본다. 가슴에 담긴 한과 화를 풀어 외쳐본다. 맺힘이 풀려 가슴이 펑 뚫린다. 이렇게 가벼운 것을 진즉 바다에 나와 소리쳐 외쳐보지 못했던가. 신발을 벗고 사장을 유소년처럼 뛰어본다. 젊은 날 사랑했던 첫사랑이 생각난다. 세상을 살다가 다투고 싸웠던 일, 아름다운 사랑과 만남이 생각난다.

 

백사장에 벤치가 드문드문 놓였다. 벤치에 앉아 추억을 그리고 망상한다. 바다는 아름답고 낭만적이지만 거센 파도로 돌변할 땐 무서운 악마가 된다. 절망의 삶과 죽음의 결전장이 된다. 사람들이 모여든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망상의 사장을 걸으면 어린애처럼 웃으며 망상을 향하여 망상에 젖는다. 그런데 갑자기 천둥 번개가 치더니 소낙비가 내린다. 모두 해변 카페로 뛰어들어 커피를 마시며 창밖의 비 오는 망상의 바다와 모래벌판을 넋 없이 바라보며 명상에 젖는다. 오랜만에 갖는 명상이었다. 

 

잃어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과 버리지 못함에 힘든 생각을 떨쳐 버리는 몸부림 같은 혼란이었다. 그 혼란 뒤에 한없는 자유와 평화를 느낄 수 있었다. 묵호 기행 이야긴 더 많은 이야기로 태어날 것이다.

 

[김용필]

KBS 교육방송극작가

한국소설가협회 감사

한국문인협회 이사

한국문인협회 마포지부 회장

문공부 우수도서선정(화엄경)

한국소설작가상(대하소설-연해주 전5권)

이메일 :danmoon@hanmail.net

작성 2023.06.16 12:23 수정 2023.06.16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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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