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적인 지휘자로 명성이 높은 J아무개 씨의 소식이 전파를 탔다. 이탈리아의 한 고속도로에서 그가 운전하던 승용차가 덤프트럭에 들이받혀 크게 부서지는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내용이었다. 다행히 튼튼하기로 소문난 독일의 최고급 차였던 덕분에 많이 다치지는 않고 며칠간 입원하는 정도의 비교적 가벼운 부상만 입었다는 것이다.
뉴스를 접한 네티즌들의 반응은 비정하리만치 싸늘했다. 남의 아픔을 듣고서 “참 안됐다”, “어째 그런 일이……” 정도의 의견이 지극히 상식적인 반응일 터이다. 그럼에도 대다수가 “욕을 많이 먹어서 그런가, 질기네”, “에이! 경미하다니 아쉽다”, “정말 안타깝지 않은 내 마음이 안타깝다” 이런 유의 댓글들이 주를 이루었다. 사람이 불행한 일을 당했음에도 이렇게까지 심한 욕을 얻어먹는 걸 보니 J 씨는 인생을 잘못 살아도 한참 잘못 산 것 같다.
연전에 그가 서울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을 맡고 있었을 때 보였던 행동들을 떠올리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겠다 싶기도 하다. 재주가 넘치면 일을 그르친다고 했던가. 그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그는 ‘천재적인 지휘자’라는 재주로 인해 오히려 인성이 제대로 닦이지 않은 사람이 되지 않았는가 하는 마음이 든다. 예의 사고에서 네티즌들이 보인 반응으로 살피건대, 이것이 비단 나만의 생각은 아닌 모양이다.
‘소년등과일불행少年登科一不幸’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살이에는 세 가지 큰 불행이 있는데, 그 가운데 소년 시절의 과거 급제가 첫 번째 불행이라는 것이다. 사람이 너무 이른 나이에 출세하여 명성을 얻게 되면 자기도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거들먹거림에 길들여져 그로 인해 결국 인생이 파탄 나게 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교만을 경계하는 가르침으로 곧잘 이 말을 가져다 쓰곤 한다.
타고난 재주 덕분에 J 씨는 필시 잘 먹을 수는 있었을 게다. 그가 사고를 당했던 차가 일반 서민들은 엄두도 내기 힘든 독일의 이름난 자동차 회사의 최고급 리무진이었다는 것만 봐도 그동안 얼마나 잘 먹었을 것인가는 충분히 미루어 짐작이 가능한 이야기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잘 살았다는 데 대해서는 쉽게 동의가 되지 않는다.
‘잘 살다’, 우리네 삶에서 이 말만큼 참 쉽고도 어려운 일은 없을 것 같다. 누군가의 죽음을 두고 “잘 살고 갔다”라고 이야기할 때 ‘잘 살다’의 대척점에 놓인 말인 ‘잘 죽다’를 떠올려 보면 이 말의 의미가 어렴풋이 정의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요즈음 인구에 회자되는 웰 다잉, 곧 ‘잘 죽다’에도 묘한 함의가 담겨 있을 수 있다. 그러다 보니 그것 또한 그리 단순한 문제는 아닌 성싶다.
잘 먹고 잘 산다는 것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자니, 우리나라 최대의 재벌회사인 S 전자 L 회장의 사연이 뇌리에 맴돈다. 너무도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그는 억만장자였던 부모 덕에 엄청난 재물을 유산으로 물려받아서 그를 기반으로 하여 승승장구한 인물 아닌가. 그만한 부를 쌓게 되기까지 그는 갖은 부정과 비리로 세인들의 비난을 받아왔다. 그러니 L 회장이 죽고 난 뒤에 그의 삶을 두고서 잘 살았다고 해야 하겠는가, 아니면 잘못 살았다고 해야 하겠는가.
욕을 많이 얻어먹으면 오래 산다는 속설이 있다. 그 말대로라면 그는 누구보다도 오래오래 살아야 이치에 맞을 것이다. 그런데도 몇 해 전 칠십 대 초반의 나이에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져서 식물인간 상태가 되었고, 그 후 수년간 겨우 명줄만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항간에는 벌써 이승을 떠난 지 오래라는 소문까지 파다하게 나돈다.
그런 사람이 지난해 보유주식의 배당금으로 수백억 원을 받았다고 언론들은 앞다투어 전한다. 설사 살아있는 것이 확실하더라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고 가만히 앉아 있을 텐데도, 아니 반듯이 누워서 아무 의식 없이 눈만 멀뚱멀뚱 뜨고 있을 상황임에도 그만한 거금이 굴러 들어오다니……. 밤을 낮 삼아 일에 매달려 봐야 하루하루 입치레하기에 급급한 인생이 부지기수인데, 누구는 손 하나 까닥하지 않아도 평생 써도 다 못 쓸 돈이 차곡차곡 쌓인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세상이 참 불공평하고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외할아버지는 중년에 외할머니를 잃고 94세로 이승의 생을 마칠 때까지 오랜 세월을 홀로 사셨다. 그 긴 시간 동안, 비록 호의호식까지는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넉넉하게 생활을 영위해도 될 만큼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생전에 당신 자신을 위해서는 한 푼을 갖고도 벌벌 떠셨다. “누구 좋은 일 시키려고 저러나?” 동네 사람들의 비아냥거림을 들으면서도 삶의 방식에 대한 당신만의 소신을 끝까지 버리지 않았다. 하도 그러시기에 어머니가 어느 해 친정에 가 보니 소금을 반찬 삼아 끼니를 해결하고 계시더라는 것이다.
그렇게 지독한 자린고비로 살면서도, 어린 나이에 생모를 잃은 손자한테는 끔찍이도 애착심을 가지셨다. 자신을 위한 일에는 가혹하리만큼 엄격하였던 반면, 손자를 위한 일에는 더없이 자애로운 어른이셨다. 그 덕분에 외할아버지가 저세상으로 가신 뒤 손자는 어렵지 않게 삶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던 게다.
외할아버지의 삶을 두고서 잘 먹지는 못했어도 잘 살았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잘 먹지도 못했고 잘못 살기까지 했다고 해야 할까. 아무리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 보아도 둔한 머리로는 끝내 판단이 서질 않는다.
사람이 잘 먹고 잘 산다는 것, 간단히 답을 낼 수 있는 가벼운 명제는 결코 아닌 성싶다.
[곽흥렬]
1991년 《수필문학》, 1999년《대구문학》으로 등단
수필집 『우시장의 오후』를 비롯하여 총 12권 펴냄
교원문학상, 중봉 조헌문학상, 성호문학상,
흑구문학상, 한국동서문학 작품상 등을 수상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기금 받음
제4회 코스미안상 대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