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리를 지었던 봄꽃들이 지고, 푸르른 잎들이 산 능선에 물결처럼 일렁거리는 7월이다. 이런 세월에 부르고 들을 노래가 화무(花舞)는 십일홍(十日紅)을 읊조린 <노랫가락 차차차>이다. 1965년 황정자의 목청을 타고 세상에 나온 노래. 이 노래를 미스트롯2에서 우승한 양지은이 ‘내 딸 하자’에서 열창하여 대중들의 인기 온도계를 더욱 상승시켰다.
‘노세 젊어서 놀아 / 늙어지며는 못 노나니 / 화무십일홍이요 / 달도 차며는 기우나니 / 인생은 일장춘몽요 / 아니 놀지는 못하리라~’ 토크 송 같은 전주 노랫말이다.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 / 늙어지며는 못노나니 / 화무는 십일홍이요 / 달도 차며는 기우나니라 / 얼시구 절시구 차차차 / 지화자 좋구나 차차차 / 화란춘성 만화방창 / 아니 노지는 못하리라 / 차차차 차차차.
유행가는 세월 뒤안길의 꼬리를 물고 올망졸망 따라온다. 그래서 시대와 세대를 이어오며 통창되는 국민애창곡을 흘러간 노래라고 하지 않고, 흘러온 노래로 칭하는 것이다. 강물은 바다로 흘러가지만 노래는 이와 반대로 세월을 역류한다. 21세기에 휘몰아친 유행가 복고열풍이 그 징표다.
양지은은 황정자가 부른 원곡의 첫 소절, 창(唱) 같은 대사 부분을 생략하고, 본 소절을 내질렀다. 60여 년 이상 흘러온 노래가 21세기형 음원으로 거듭나는 순간이었다. 이 노래 원곡은 1965년 성음제작소 음반으로 추정하며, 1976년 아시아레코드사 음반으로 나온 ‘세월 따라 노래 따라 흘러간 노래’에 수록되어 있다. 최치수 기획 반야월 구성의 유물이다. 2절도 온통 놀자 판이다. 힘겨운 시대의 가요역설(歌謠逆說)이다.
가세 가세 산천 경계로 / 늙기나 전에 구경가세 / 인생은 일장의 춘몽 / 둥글둥글 살아나가자 / 얼시구 절시구 차차차 / 지화자 좋구나 차차차 / 춘풍화류 호시절에 / 아니 노지는 못하리라 / 차차차 차차차.
노랫말이 난해하고 어렵다. 화무십일홍·일장춘몽·화란춘성·만화방창·춘풍화류 등등을 해설하고 풀어서 적었다면, 가사가 오선지 위에 드러눕지 못하였으리라. 하지만 작사가와 작곡가는 이러한 솔기를 잘 얽었다. 김영일과 김성근의 기치다.
<노랫가락 차차차>는 우리의 전통 고유의 ‘노랫가락’과 서양음악 ‘차차차’를 버무린 1960년대식 퓨전 곡이다. 구한말(1897~1910)에 열열히 불리기 시작한 <새야 새야 파랑새야>와 같은 비탈길 토색(土色)에서, 1930년대 넘실거린 왜색(倭色)의 비포장도로를 지나, 1950년대 신작로 같은 양색(洋色)의 물결을 타고 넘었다. 1960년대 바야흐로 우리의 신토색(新土色) 장르 같은 노래, 유행가 도로를 닦는다. 우리 방식의 전통가요라고 하는 유행가의 물길인데, 처음 뽕짝으로 칭하다가 어쩌다 트로트로 불리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른다. 60여 년의 세월에 대롱거리는 이 말을 유행가로 통칭할 날은 언제 올까. 아니 더 낳은 우리 말 장르를 숙고해야하지 않으리.
‘노랫가락’은 경기민요 중 하나였다. 원래 무당들이 부르던 노래였으나, 대중들에게 퍼지면서 민요로 뿌리를 내렸다. 조선 말엽 고종(1852~1919) 때, 대궐 출입이 잦은 무당들이 임금에게 들려 드리기 위해 고상한 시조 시를 얹어 부른 뒤로, 민요로 유행하게 되었단다. 그 시절 노래 소절도 묵직한 어휘들로 얽었다. 그 시절 노랫말을 펼쳐보자. ‘충신은 만조정이요 / 효자열녀는 가가재라 / 화형제낙처자하니 / 붕우유신하오리라... / 무궁화 옛 등걸에 / 광명의 새봄이 다시 왔다...’
‘차차차(cha cha cha)’는 라틴아메리카(남부 아메리카) 댄스 장르 중의 하나다. 쿠바의 춤 곡 단손(danzon)이 개조되어 생겨난 것으로, 1950년대 중반부터 미국을 시작으로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다. 차차차 음악의 특징은 단음 또는 스타카토(staccato)의 지속, 박자는 일반적으로 4분의 4박자로 연주하며 4분의 2박자로 연주할 때도 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은 아무리 붉은 꽃무리도 10일 이상 더 지속되지 못한다는 의미다. 이 말 앞뒤에는 권불십년(權不十年)이 걸쳐 있다. 십 년 넘게 이어지는 권력은 없다는 의미다. 요즈음은 권불 4년, 권불 5년이다. 민심이 천심이고, 이 천심은 배를 띄우기도 하고 뒤집거나 가라앉히기도 한다. 요즈음 우리네 세상은 ‘우리’는 없고 ‘끼리’만 난무하니, 부국안민(富國安民)의 권세 본질은 오간데 없고, 아전인수(我田引水)의 패당들이 광대 춤을 추고 있으니 한숨만 깊다.
일장춘몽(一場春夢)은 한바탕 봄꿈이라는 뜻이다. 인생의 부귀영화가 꿈처럼 덧없이 사라지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한낱 꿈, 부질없는 일, 쓸모없는 생각 등을 가리킨다. 이 말은 북송의 조령치(1061~1134)가 지은 『후청록』에 전한다. 송나라 문장가 소동파(1037~1101)는 1097년부터 3년간 중국 해남 창화에서 유배를 살았다. 어느 날 그가 큰 표주박 하나를 메고 노래를 흥얼거리며 산책을 하다가 70대 노파를 만났다. 노파는 소동파의 모습에 놀라 이렇게 말했단다. 지난날의 부귀영화는 그저 한바탕의 꿈에 지나지 않는구나. 당시 문장으로 천하를 놀라게 했던 사람이 초라한 모습으로 시골길을 걷고 있는 것을 보면서, 노파는 인생의 참모습을 발견한 것이었다.
<노랫가락 차차차> 원곡 가수 황정자는 1929년 서울 출생, 본명 황창순이다. 그녀는 1947년 김해송의 KPK(김해송·백은선·김정환)악단 단원이 되었고, 1949년 럭키레코드·1954년 도미도레코드 전속가수가 된다. <귀걸이 타령> 노래는 여기서 불렀다. 그 당시 전속가수는 월급쟁이 가수다. 저작권과 음원에 대한 값이 매겨지지 않았던 시절이다. 그녀는 1969년 40세로 세상을 등졌는데, 원인은 미명이다. <살랑춘풍>, <고향마차>, <노처녀의 봄>, <꼬공꽁 신세>, <오동동 타령>, <개나리 순정>, <남원의 봄 사건>, <황초 불 타는 밤>, <처녀 뱃사공>, <마도로스 정자>, <물 긷는 처녀>, <노들강 600년>, <노랫가락 차차차> 등을 남겼다.
양지은은 1990년 제주 한림읍에서 출생하여 국악을 전공한 대중가수다. 효녀 가수가 되고 싶은 제주 댁, 두 아이의 엄마다. 중학교 1학년 때 판소리에 입문했고, 21살에 아버지께 신장을 기증했다. 수술 후 아버지는 건강해졌다가 다시 합병증세로 간과 발가락을 절제하였단다. 그 아버지가 딸이 방송(TV)에서 노래하는 모습을 한 번이라도 보고 싶다고 하셔서 경연에 참가했었단다. 그녀는 예선전에서 <아버지와 딸>을 효성 어린 목소리로 열창을 하여 1절 만에 올 하트를 받았었다.
제주 한림여중고를 거쳐 국악학·음악교육학을 전공한 국악인, 전남 무형문화재 판소리 흥보가 이수자과정을 거친, 제주 출신 무형문화제 판소리 흥보가 1호다. 서울전국국악경연대회 중고등부 판소리부분 우수상, 전국국악대제전 장려상, 목포판소리 학생전국대회 대학부 최우수상, 목포 유달 전국국악대전 일반부 대상을 수상한 이력이 있는, 그녀의 아버지 양보윤은 북제주군 의회 의원 출신이다.
지금은 무더운 7월이지만, 가수 양지은의 인기는 여전히 꽃무리 넘실거리는 봄날이다. 양지은의 가수인생 봄날이 오래 오래 지속되기를 기원드린다. 우리네 인생의 봄날도 정녕코 짧은 것만은 아니련~.
[유차영]
시인
수필가
문화예술교육사
한국유행가연구원 원장
유행가스토리텔러 제1호
이메일 : 51944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