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앨빈 토플러는 권력은 돈, 폭력, 지식에서 나온다고 하였다. 인류가 지구상에 출현하여 오늘의 문명사회를 이루기까지 자연에 가한 폭력의 역사로 보았다.
생존을 위해 돌도끼, 돌창, 뼈낚시 등을 이용하여 수렵 활동으로 동물을 잡아먹음으로써 생명을 유지해왔고, 과학기술문명의 발달한 오늘날, 각종 첨단 기계를 개발하여 자연의 대량 폭력에 의해 빌딩과 아파트를 세우고, 도로를 건설하는 등 인간의 커지는 욕망만큼 자연에 가한 대량의 폭력을 행사하는 인간 위주의 생태관을 고수해왔다고 볼 수 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체와 공존하기 보다는 일방적으로 가한 폭력은 생태계의 균형을 깨뜨려 지속가능한 발전은 물론 인간의 생명까지 위협하게 되었다. 인간 스스로가 욕망을 절제하지 못하고 대량생산 대량소비, 가공할 만한 위력을 지닌 핵무기,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여 전쟁을 일으키고 인류 스스로가 죽어가는 현상은 인간이 동물적인 근성을 버리지 못하는 인간일 수밖에 없다는 한계성을 드러낸 것이다.
무리를 지어 사냥하고 같은 무리끼리 다른 무리를 공격하여 가진 것을 빼앗고 인류 역사는 권력 쟁취의 역사였다. 우리의 삶 자체도 내부의 폭력성이 욕망과 결합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나가기도 하지만, 파멸의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배고픔을 뼈저리게 체험한 세대는 오늘날 풍요로운 사회에 소비가 미덕이라고 다 사용하지도 않는 물건들을 버리는 오늘날의 시대를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달갑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의 편리함을 위해 대량생산, 대량소비를 부추기는 광고의 이면에는 대자본가들이 소비자들의 호주머니를 털어가려는 야심이 숨어있는 것이다.
무분별한 대량소비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물건을 많이 소비해야 행복감을 느끼는 현대인들은 그 물건을 만들기 위해 자연이 파괴되고 에너지가 낭비되고 다 쓴 폐기물이 환경을 훼손하여 스스로가 자멸의 길을 선택하는 줄을 모른다. 지구촌에 살아갈 다음 세대를 의식하지 않는 오만한 태도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나만 즐겁게 살다 가면 된다는 막돼먹은 생활 태도는 인간적인 행동이 아니라 폭력적인 행동인 것이다.
또한 부가 축적이 되면 인간은 명예를 탐한다. 높은 자리에 오르기 위해 돈으로 자리를 사고판다. 돈으로 지식을 사기도 한다. 지식은 돈을 바로 지불해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돈을 지불하고 노력을 하고 학습 능력이 없는 사람은 돈을 들여도 가져갈 수 없는 것이 지식이다.
돈을 벌기 위해 은행, 증권회사의 주식투자, 부동산 투자, 일하기 등의 경제활동이 이루어지고, 부지런히 일하고 경험을 쌓고 인간관계를 유지하면서 돈을 투입하여 높은 자리에 오르려고 한다. 여기에 우리나라의 경우 돈과 지식을 겸비한 실력보다 인간관계가 우선 되어 높은 자리에 오르기 때문에 능력 없는 자가 윗자리에 올라 업무를 처리하니 효율이 떨어지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잘 나가는 회사들은 능력 본위의 선발제도로 더 많은 부를 창출하기도 하지만 졸부들은 능력 없는 자식 때문에 아무리 부를 모아본들 그 자식이 호의호식으로 부를 쓰러뜨리게 된다.
사람들은 부를 추구하기 위해 열심히 일한다. 높은 자리에 오르기 위해 자신의 행복까지 누리지 못하고 매달리다가 마지막에 부를 모으고 자리에 오르면 허망함을 느낀다. 이를 가리켜 애덤 스미스는 그의 저서 『도덕 감정론』에서 자연의 속임수, 신의 속임수라고 했다. 죽을 때에서 깨달아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많은 부의 축적은 남이 가져가야 할 부의 기회를 송두리째 빼앗은 결과임을 깨닫고 자신과 가족만을 위해 부를 사용하는 졸부가 되지 말고 내 가까운 이웃의 불행을 돕는 일에 쓰면 죽을 때 더 후회가 없을 것이다.
가난한 사람이 자신의 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가족의 행복까지 빼앗아 높은 자리에 올라 그 지위를 부를 축척하는데 쓰거나 더 높은 자리에 오르기 위해 쓴다면 그 사람은 죽을 때까지 가족 간에 오순도순 살아가는 행복을 느끼지도 못하고 지위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불쌍한 최후를 마치게 될 것이다.
높은 자리에 오르게 된 기회가 주어진 것은 더 많은 사람에게 따뜻한 사랑을 베푸는 삶을 살다 가라는 신의 계시다. 이러한 사명감을 망각하고 오만방자하게 권력을 행사하면 추악한 이미지로 자자손손 남게 됨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학교 현장은 어린이들에게 자신의 지식을 전수해주는 국가기관이다.
자신의 출세를 위해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고 명리적인 가치를 좇다가는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제자들이 너희들을 보고 있다. 제자를 두려워하지 않는 스승은 스승이 아니라 장사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장사를 하려면 제자가 없는 시장이나 주식투자를 하는 증권회사나 부동산 투자를 하는 공인중개사 사무실을 찾아다니는 것이 더 부를 가져올 것이 아니겠는가.
시인과 작가는 작품을 쓰는 것이 본질적인 가치고 사명이다. 문학 단체 감투나 노리는 것은 작품을 창작하겠다는 본질은 저버리고 그곳에서 폭력을 찾는 졸렬한 행위들이다. 명리적인 가치의 빛나는 상패와 간판이 어찌 너를 자유롭게 할 것인가. 진정한 스승의 길을 걸어야 한다.
진정한 문인을 스승으로 맞아 마음공부를 해야 할 때이다. 폭력에 의존하는 권력은 무지한 사람이나 할 짓이다. 폭력으로 얻은 부와 지위와 지식을 인간에 이롭게 활용하는 지혜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김관식]
시인
노산문학상 수상
백교문학상 대상 수상
김우종문학상 수상
황조근정 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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