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이천팔백여 년 전 인간 ‘로물루스’다. 뺏고 빼앗기는 권력의 약탈 시대에 이탈리아 알바롱가 근처에서 나는 태어났다. 나의 어머니 레아 실비아는 알바롱가 누미토르왕의 공주였다. 평화롭게 살아가던 어느 날 외할아버지 누미토르의 왕위를 빼앗려는 삼촌 아물리우스의 무서운 계략이 시작되었다. 삼촌은 자기 형님 누미토르를 내쫓고 남자 조카를 다 죽인 후 왕위를 빼앗았다. 여자라는 이유로 어머니만 살아남게 되었다. 어머니는 삼촌으로부터 죽임을 당하지 않기 위해 베스타신전의 여사제가 되었다. 그런데 임신을 하게 되자 어머니는 배 속에 있는 아이까지 죽임을 당할까 봐 마르스신의 아이라고 둘러댔다. 나는 그렇게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쌍둥이 동생 레무스와 함께 태어났다.
왕위를 찬탈한 아물리우스는 후환을 없애려고 어머니 레아가 낳은 나와 동생을 바구니에 담아 티베르스강에 버렸다. 갓 태어난 나와 쌍둥이 동생은 바구니에 담겨 강을 둥둥 떠내려갔다. 마물리우스의 눈을 피해 태어난 것도 기적이지만, 태어나자마자 바구니에 담겨 강으로 떠내려가야 하는 운명이었다. 쌍둥이를 잃은 어머니의 참혹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비가 내리고 강의 물이 불어나고 있었다. 홍수가 난 것이다. 하늘이 도운 것인지 나와 동생은 홍수 덕분에 바다로 흘러가지 않고 강물을 따라 떠내려가다가 팔라티움 언덕 기슭에 있는 무화과나무에 걸리게 된다.
무화과나무에 걸려 있는 바구니를 본 암컷 늑대가 우리를 건져 올렸다. 그러나 무슨 일인지 늑대는 우리를 잡아먹지 않고 자신의 자식처럼 정성스럽게 젖을 먹이며 키워주었다. 나와 동생 레무스는 암컷 늑대의 지극한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딱따구리가 먹이를 물어다 주고 산속에 있는 동물들이 나와 동생을 보살피고 키워준 것이다. 그러다가 숲속을 양치기 파우스툴루스가 지나가는 걸 보고 나와 동생은 인간이 두려워서 얼른 큰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살해에 대한 공포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양치기는 착하고 남을 살해하지 않은 선한 사람이라는 걸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양치를 따라가서 양치기 집에서 살게 되었다.
나와 동생은 양치기 파우스툴루스의 집에서 건강하고 바르게 자랐다. 파우스툴루스는 정직하고 인정 많고 소박한 사람이어서 우리는 그의 인성을 배우며 건실하게 자랄 수 있었다. 파우스툴루스는 우리를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라티움의 중심지인 가비이에 보내 공부시켰다. 우리는 파우스툴루스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은 열심히 공부하여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이라는 것을 잊지 않았다. 우리는 공부를 마치고 고향인 팔라티누스 마을로 돌아왔다. 마을 사람들의 환영이 이어지고 파우스툴루스는 우리를 보며 대견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나는 고향으로 돌아와 파우스툴루스의 일을 도왔다. 어느 날 동생과 함께 양떼를 몰고 나갔다가 누미토르의 목동들과 싸움이 붙었다. 격렬한 싸움 끝에 나는 누미토르 목동들의 양떼를 빼앗아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동생 레무스는 다시 공격 해온 누미토르 목동들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이 사건으로 나와 동생은 누미토르 앞에 끌려가 서게 되고 말았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파우스툴루스는 침착하게 누미토르에게 가서 나와 쌍둥이 동생에 관한 이야기를 자세하게 알려주었다.
“왕이시여, 제 말을 들어 주세요”
“그래 무슨 말인가?”
“이번 사건에 연루된 로물루스와 레무스 쌍둥이 형제는 사실 실비아 공주님의 자식들입니다”
“그게 사실인가?”
“네 진정 거짓 없는 진실입니다”
파우스툴루스는 나와 동생이 레아 실비아의 아들임을 증명하기 위해 티베르스강을 떠내려오던 바구니를 누미토르에게 보여주었다. 누미토르는 그 사실을 알고 통곡했다. 자신의 딸 레아 실비아가 낳은 쌍둥이 아들이 살아있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나와 쌍둥이 동생을 지원했다. 우리 쌍둥이는 외할아버지의 보호 아래 점차 세력을 키워나갔다. 나는 할아버지와 동생과 양치기 파우르툴루스의 든든한 지원군을 등에 업고 아물리우스왕에게 반감을 품은 사람들을 모아 결집해 갔다.
이제 모든 준비를 끝났다. 드디어 아물리우스를 칠 날이 왔다. 이날은 화창하게 맑은 날이었다. 나는 반란군들을 이끌고 폭풍처럼 알바롱가성으로 진격해갔다. 배신자이자 왕위 찬탈자인 아물리우스는 성안에서 호의호식하며 왕놀음에 빠져 있었다. 백성들은 굶주리고 헐벗어 도탄에 빠져 있는 줄도 모르고 빼앗은 왕위를 즐기며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있었다. 마침내 아물리우스 일당을 처단하고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구해주었다. 알바롱가의 왕권을 정당한 왕위 계승자인 외할아버지 누미토르에게 되돌려 주고 나와 동생은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떠났다.
나는 우리를 따르는 무리들과 의논을 거듭한 끝에 목동 파우스툴루스에게 발견된 장소에 나라를 건설하기로 했다. 나와 쌍둥이 동생 레무스 중에 누가 지도자가 될 것인가를 놓고 의견이 엇갈렸다. 결국 하늘을 나는 새를 통해 신의 뜻을 묻기로 했다. 쌍둥이 동생 레무스가 선택한 아벤티누스 언덕에 여섯 마리의 독수리가 날고 내가 선택한 팔라티누스 언덕에는 열두 마리의 독수리가 날아 나는 신의 선택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쌍둥이 동생 레무스는 신의 선택에 굴복하지 않고 나를 모독하며 비웃었다. 나는 대의를 위해 쌍둥이 동생 레무스를 단칼에 베어 버렸다. 나는 죽은 동생에게 죄책감이 들어 괴로웠다. 아벤티누스 언덕에 동생을 정성껏 묻어 주었다.
나는 도시를 정비하고 백성들을 돌보며 나라의 기강을 잡아갔다. 부족한 백성을 보충하기 위해 도망자와 망명자들을 끌어드린다는 소문을 들은 이웃 나라 젊은 남자 찾아왔지만, 그들은 대부분 범법자이거나 노예였다. 이 문제로 이웃 나라와 싸움이 잦아지자 나는 타티우스왕과 오랜 협상을 통해 두 민족이 하나로 합치고 로마를 수도로 하는 연방국가를 수립해 공동통치자가 되었다. 그 후 타티우스왕이 죽게 되고 나는 로마의 유일한 통치자가 되었다.
나는 로마의 시작이며 끝이 되었다.
[전명희]
서울대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다 그만두고
‘밖철학연구소’를 설립해 연구에 몰두했지만
철학 없는 철학이 진정한 철학임을 깨달아
자유로운 떠돌이 여행자가 된 무소유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