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식 칼럼] 사면초가四面楚歌

김태식

나는 외국 생활하는 동안 그 나라 서민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시내버스를 자주 이용하는 편이다. 일본에서 근무할 때도 그랬다. 

 

몇 년 전 일본해운회사에서 중국의 베이징에 잠시 파견근무 할 때의 일이다. 내가 탄 시내버스 안에는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빈자리는 없었다. 

 

얼마를 지나 빈자리가 생겨 얼른 몸을 옮기는 순간 '아악' 하는 비명소리가 들렸다. 붐비는 사람들 사이로 파고들던 나의 발이 아기 엄마의 발등을 밟았던 것이다. 그 아기 엄마는 발이 밟히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자리에 앉은 나를 보고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그러면 그럴수록 나에게 쏠리는 승객들의 눈길은 한여름 장대비가 메마른 땅에 꽂히듯 했다. 나는 몸 둘 바를 몰랐다. 그 당시 나는 중국어를 능통하게 하지 못하는 탓에 더욱 난감했다. 그야말로 사면초가四面楚歌였다. 

 

내가 느낀 생각으로는 발가락이 부러졌으니 병원으로 같이 가자는 뜻으로 여겨졌다. 만약에 같이 가지 못하면 대신에 돈을 달라는 시늉이었다. 

 

시간을 보니 나의 목적지까지는 앞으로 1시간은 버스를 더 타고 가야 하는데 중간에 내리자니 도망간다고 할 것 같았다. 계속 타고 가자니 이 여인의 절규에 가까운 울음소리와 버스 안의 시선들로 인해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심정뿐 이었다. 마침내 이 광경을 보고 있던 버스 안내양(중국은 시내버스에 안내양이 있었음)이 내게 다가왔다. 

 

안내양 또한 다친 사람을 병원으로 빨리 데리고 가라는 손짓을 하면서 ‘가만히 지켜보니 중국어를 잘하지 못하는 외국인 같은데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었다. 한국인이라고 말하자 그녀는 소리쳤다. ‘이 안에 한국어를 할 수 있는 조선족이 있느냐고?’

 

혹시 있을법한 조선족은 없었다. 당연히 떠오른 사람은 나의 딸아이뿐이었다. 베이징대학에서 유학 중인 내 딸은 중국인과 다름없이 중국어를 구사하지만 그 시간은 수업 중이고 거리도 너무 멀어 연락할 수도 없었다. 

 

한국어 외에 할 수 있는 다른 말은 없느냐고 묻는 안내양의 물음에 일본어와 영어를 능통하게 할 수 있으니 그런 사람이 있으면 도움을 달라고 요청했다. 그녀는 다시 중국인 특유의 큰 목소리로 일본어를 할 수 있는 중국인을 찾았다. 모두 묵묵부답이었고 승객들의 시선은 나에게 더욱더 쏠릴 뿐이었다. 한국어와 일본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을 찾지 못하고 끝으로 '영어를 말할 수 있는 사람!'하고 안내양이 소리쳤을 때 중간쯤에 앉아있던 아가씨가 수줍은 듯 조용히 손을 들었다. 보기에도 참한 20대 중반의 숙녀였다. 내게 다가온 그녀에게 

 

“내가 하는 영어를 다친 아주머니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중국어로 전해 달라”

 

그렇게 말하자 알겠다는 그녀의 영어 발음은 꽤나 세련되어 있었다. 그 아가씨는 중학교 영어 교사라고 했다. 나의 마음이 조금 놓이기 시작했다. 

 

“내가 조심성 없이 발을 밟아 아주머니에게 고통을 주어 대단히 미안하다. 만약 골절상을 입었다면 병원으로 가서 치료를 하고 그 치료비 전액은 내가 부담하겠다. 병원에 가면 나의 딸이 올 것이고 중국어로 언어 소통은 전혀 문제가 없을 테니 걱정하지 마라.”

 

10여 분간의 얘기를 하는 동안 버스 안의 분위기는 완전히 바뀌어 가는 듯이 보였다. 어쩌다 여자의 발을 밟아 괴롭히느냐 라고 하던 무언無言의 시선들이 영어로 말하는 중국인 아가씨와 한국인의 대화에 신기해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승객들의 시선이 따뜻하게 변하고 있을 즈음 골절되었다고 말하던 부부들의 얼굴도 점차 누그러져 가고 있었다. 사나운 모습이 아니라 무엇인가 일이 잘못되어 가고 있구나 하는 표정이었다. 부려졌다고 구부려 있던 발가락은 어느새 서서히 펴지고 있었고 나를 때릴 듯이 화를 내던 그녀의 남편도 미안해하는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두 정류장을 지날 즈음 그 부부는 그들의 목적지에 도착했는지 영어로 통역하던 중국인 아가씨와 나를 힐끗 쳐다본 뒤에 버스에서 내렸다. 한참을 같이 가던 통역 아가씨는 간혹 외국인에게 돈을 노리는 저런 사람이 있으니 조심하라는 말을 남기고 먼저 내렸다. 

 

나의 실수로 빚어진 일이라 남을 탓할 수는 없겠지만 피해를 당한 사람의지나친 태도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사방이 모두 적으로 둘러싸여 누구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고립된 상태’를 말하는 사면초가. 지금으로부터 아주 오래전 이러한 고사성어의 역사를 갖고 있는 나라에서 나는 사면초가의 신세가 되어있었다.

 

 

[김태식]

한국해양대학교 대학원

선박기관시스템 공학과 졸업(공학석사)

미국해운회사 일본지사장(전)

울산신문 신춘문예(등대문학상) 단편소설 당선 등단

사실문학 시 당선 등단

제4회 코스미안상 수상

이메일 :wavekts@hanmail.net

 

작성 2023.07.11 11:40 수정 2023.07.11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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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