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을 이루고 이름을 이루면 몸은 물러나는 것이 하늘의 도이다. (功成名遂身退 天之道.)
- 노자,『도덕경』에서
중국 장가계에 다녀온 사람들이 많다. 사진으로 봐도 천하의 절경이다. 이 세상이 아닌 듯하다. 영화 아바타의 촬영지라고 한다. 이 깊은 오지에 숨어든 사람이 ‘천하의 장량’이라고 한다. 장량은 한 고조 유방을 도와 한나라를 세운 건국의 일등 공신이다.
하지만 나라를 반석 위에 올려놓은 뒤 장가계로 표표히 사라진다. 더 이상 미련을 갖고 남아 있었으면 비명횡사했을 것이다. 그래서 노자는 말한다. “공을 이루고 이름을 이루면 몸은 물러나는 것이 하늘의 도이다.”
토사구팽(兎死狗烹)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스스로를 사냥개로 만드는 일이다. 천지자연의 이치가 ‘공을 이루면 물러나는 것’이다. 가을이 오면 아무리 울창한 숲을 이루었더라도 나무들은 미련 없이 나뭇잎을 떨어뜨린다.
그것이 사는 길이다. 인간 세상도 천지자연의 일부이기에 한 치의 틈도 없이 천지자연의 이치를 따른다. 공을 이루고 물러나는 것은 쉽지 않다. 온 마음을 다해 이룬 공, 어떻게 놓을 수 있겠는가?
장량의 입장에서 홀로 쓸쓸하게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하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시골의 건달에 불과했던 유방을 한의 태조로 만들었지만, 모든 권력이 유방일가에 집중되어갈 때 그는 깊은 자괴감을 느꼈을 것이다.
권력은 부자지간에도 나눌 수 없는 것, 하물며 어찌 황제와 신하가 나눌 수 있으랴? 그가 무릉도원 장가계로 숨어들었을 때, 그의 가슴에는 울분이 가득 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차츰 시간이 흐르며 그는 깊은 내면에서 솟아 올라오는 희열로 충만해져 갔을 것이다. 인간은 다 버리고 나면, 몸뚱이만 남는다. 몸뚱이는 영적인 몸이 된다. 영혼 그 자체가 된다.
인간은 물질인 몸으로 살아가는 것 같지만, 실은 몸은 영혼(에너지장) 그 자체다. 영혼은 천지자연과 하나다. 다 버리고 나면 인간은 우주만큼 커진다. 우주 그 자체가 된다. 비로소 신(神)이 되는 것이다.
인간으로서 자아실현(自我實現)을 한 장량, 이제 자아초월(自我超越)까지 한 것이다. 얼마나 멋진 인생인가! 그가 공에 연연했다면, 그는 버려진 사냥개가 되어 고깃덩이 하나로 남게 되었을 것이다.
12월은 눈사람 만들어 놓고 발로 한번 차 보는 달
- 안도현, <농촌아이의 달력> 부분
아이들은 자신들의 공을 스스로 허문다. 우리는 어릴 적에 온 정성을 다해 모래성을 쌓고 한순간에 허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아이 앞에는 언제나 더 나은 놀이가 있으니까.
[고석근]
수필가
인문학 강사
한국산문 신인상
제6회 민들레문학상 수상.
이메일: ksk21ccc-@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