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했다. 그리고 사라졌다. 재 너머 옹기 가마터도, 학교 다니던 뒷골목도 감쪽같이 없어졌다. 큰길가 얼음과자 팔던 아주머니도, 부모 몰래 들락거리던 만화방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더듬어 찾아낸 흔적마저 옛것이 아니었다. 시장터 작은 국밥집은 황소 뱃구레만큼 커지고, 하늘지붕처럼 너울졌던 동네 느티나무는 현시적으로 너무 작아져 있었다.
산허리나 언덕을 무너뜨려 무분별하게 들어선 콘크리트 구조물이나 공장들, 시골답지 않게 높이 올라간 아파트단지, 오랜 역사나 자연환경과 부조화를 이루는 인공 조경들. 잘 살고 더 편리해졌는지는 모르지만, 겉모습은 분명 기대 속의 그것이 아니었다. 오랜 이민 생활 후에 돌아와서 본 고향의 첫인상이었다.
어릴 적 고향은 감꽃 같은 시골이었다. 덩두렷한 산과 여울져 흐르는 강, 금빛 노을과 들꽃 향기가 세상의 이쪽과 저쪽 끝에 걸려있었다. 마을은 사람들의 눈과 소리로 만들어져서 그들만큼이나 순후하고 여유로운 정조를 가졌었다. 문명은 없어도 정감이 있었고 닫혀 있는 것보다 열려 있는 것이 더 많았다. 뭔가 삭제되고 놓쳐버린 것 같은 아쉬움에 조급함이 앞선다.
들길을 걷는다. 기억 속의 고향은 멀어졌지만 옛날 듣던 바람 소리, 어렸을 때 맡았던 소 콧김 섞인 흙냄새는 다행히 아직 그대로다. 작은 안도감이 든다. 선량하고 명징한 유록빛 향기가 향수에 목마르던 전두엽을 감싸고돈다. 고향이나 첫사랑의 장소는 개인적인 ‘우주의 성지’가 된다고 한다. 공간은 변해도 그 공간이며, 시간은 변해도 그 시간이다. 거기엔 나만이 아는 배경과 소리와 촉감과 냄새들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한곳에 오래 있어 그 장소가 되어버린 사람들이 있다. 텃밭을 자식새끼처럼 끌어안고 호미질하고 있는 늙은 아낙, 제비처럼 말하는 귀에 익은 사투리, 낡은 미닫이문 열고 들어서면 얼큰한 국밥 내오는 주름진 할머니, 뽀얀 DDT 가스를 뿜어대는 소독차와 왁자지껄 쫓아가는 아이들. 그때나 지금이나 화석처럼 그 장소의 일부가 되어버린 존재들이다. 말이 없어도 과거와 소통하고 교감을 이어주는 매개체이다. 변하지 않는 이러한 느낌들이 그리움을 목마 타고 고향은 처음 그대로 부활한다.
다행히 오일장은 아직도 남아있다. 예전처럼 왁자지껄한 잔치며 놀라움은 없지만, 그 정겨운 단어 하나만으로도 귀에 익은 소리와 냄새들이 공기 속에 떠돌기 시작한다. 장도막에 잡은 다슬기를 발아래 품고 있는 할머니, 고무대야에 고개 내밀고 세상 구경에 여념 없는 복스러운 강아지, 신발가게 구석진 곳을 뒤지다 보면 설빔으로 샀던 까만 베신을 오래된 유물처럼 찾아낼 것만 같다. 어머니 손 잡고 오일장을 구경하고 나서 얻어먹는 국수 한 그릇은 복권 당첨된 것처럼 황홀했던 순간이었다.
망설임 없이 길목 노점에 그 시절처럼 주저앉는다. 멸칫국물에 참깨와 참기름 동동 떠다니는 하얀 국수 한 그릇이 오랜 세월을 가로질러 내 앞에 놓인다. 고향은 곧 맛으로 증명된다. 어쩌면 그 맛을 알고, 그 맛을 옹호하고 각인하기 위해 뒷골목 허름한 옛집을 찾는지도 모른다.
동네 사진관이 그 이름 그대로다. 갈래머리 소녀, 옛날에는 그 사진관 진열장에 그 여자애의 사진이 걸려있었다. 삼 년을 짝꿍 하다 훌쩍 서울로 전학 가버린 열두 살 계집애. 보고 싶을 때마다 그 사진관 진열장을 기웃거리던 시골 머슴애를 지금쯤 기억이나 할까. 그녀는 아직도 그곳에 있을까. 누구에게나 아름답고 소중한 것 한두 가지는 마음속에 간직하고 산다. 그것은 내가 겪은 최초의 고독이었고 부재가 주는 외로움이었다.
동네 어귀 정자나무를 들어서면 어린 시절이 한눈에 보인다. 매미 울어대는 신작로, 논두렁 줄지어 걷는 아이들과 소 떼들, 우물터 아낙들의 새하얀 웃음소리. 거기엔 꼭 외할머니가 있어야 할 것 같다. 나를 업고 발맘발맘 동구 밖 마실 가며 옛이야기 들려주던, 따개비처럼 등짝에 달라붙은 손자가 맷돌처럼 무거웠을 것이다.
소나기라도 갑자기 쏟아지면 마른 흙냄새가 비꽃으로 번져오고 양철 지붕 위로 요란하게 떨어지는 빗물 소리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러다 어느새 비는 그치고 낙숫물로 떨어지는 빗방울 속에 세상 풍경이 나타났다 일그러지면 먼 산 너머 세계에 막연한 궁금증을 갖곤 했다. 등 뒤로 소나무 동산을 두고 콩깍지 같은 초가집들이 옹기종기한 외갓집 마을은 비 내리는 정경이 잘 어울렸다. 새물내와 함께 어디선가 갓 쪄낸 옥수수 냄새가 풍겨온다.
시골 방언으로 ‘회치’라는 들놀이가 있었다. 농번기를 피해 동네 사람들이 어울려 경치 좋은 공터를 찾아 하루를 신명 나게 놀았다. 곡조와 풍악이 흥을 돋우고 피와 땀과 눈물의 회오리가 저 멀리 연소하여 삶의 응어리를 풀었다. 장구 소리 하나에 사람들이 흰 나비 떼처럼 너울너울 춤추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아버지의 엉거주춤한 춤사위도 그때 처음 보았다. 그날 어머니에게 사달이 났다.
친구들 권유에 못 이겨 두어 잔 들이켠 막걸리 때문에 그만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취하고 말았다. 일 년 중 하루라도 자신만을 위해 자유를 행사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할 수 없이 아버지 등에 업혀 집으로 돌아왔는데 동네 망신이라고 걸핏하면 냉가슴 앓는 덜미가 되고 말았다. 그런 소소한 것들도 세월은 어느새 아름답고 귀한 마음붙이 추억과 내력으로 만들어놓았다.
돌아보면 곳곳에 정든 사람, 정든 사물의 흔적들이 묻어있다. 내 삶에서 멀어졌다고 여겼던 것들이 가슴 속에 오롯이 저장되어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기억의 씨줄과 날줄 속에 숨어있던 추억들이 낯익은 풍경이 되어 가슴 속에 파고든다. 세상은 변했어도 고향은 여전히 숨 쉬고, 찬란했던 유년은 아직도 나와 함께하고 있다. 순수함이 다소 버거워진 나이, 어쩌면 변하고 사라진 것은 내 자신인지도 모른다.
고향은 태초의 시간처럼 거룩하면서도 어머니 품처럼 아늑하다. 한 번도 나를 배신하지 않은 존재이다. 각다분하고 속된 시간에서 벗어나 다른 세상으로 향하는 출구, 순리에 대한 그리움을 누구나 갖고 산다. 잘 살아왔는지, 잘살고 있는지,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지 자신을 되돌아보고 싶을 때는 고향이 먼저 떠오른다. 긴장도 풀고, 삶을 정갈하게 하는 안식처이고 출발점이 된다. 치유와 위안이고, 그래서 힐링이다.
남들 눈에 나도 고향처럼 하나의 풍경이 되었으면 좋겠다. 까칠하지도 않고, 눈살 찌푸리는 일 없이 누구에게나 흉허물이 없는 사이가 되고 싶다. 편안함과 안락함을 주는 그루터기거나 쉬어가기 좋은 길가의 너럭바위여도 괜찮겠다. 땀 흘린 등줄기 훑고 가는 실바람이거나 걸어가는 뒷모습에 내려앉은 부드럽고 고요한 달빛이면 더욱더 좋겠다. 기승전결이 완벽한 그림처럼 아무 곳에서나 잘 어울리고 원래 그 자리에 당연히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러운 모습이 되고 싶다.
추억은 풍경이다. 고향은 시공간을 뛰어넘어 여전히 과거의 풍경으로 겹쳐서 읽힌다. 눈보다 가슴으로 본다. 풍경에 사랑이 있으면 아름다움이다. 마음 한구석이 허전한 날은 추억 속의 풍경 하나로 위로받는다.
[허석]
전북일보 신춘문예 수필 당선
저서 : [꿈틀, 삶이 지나간다]
[그 남편, 그 아내]
[시간 밖의 시간으로]
[삶, 그 의미 속으로]
천강문학상 수상
등대문학상 수상
흑구문학상 수상
선수필문학상 수상
원종린수필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