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칼럼] 코인룸

고석근

사랑한다는 것, 그것은 온갖 고독을 넘어서 세계로부터 존재에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모든 것과 더불어 포획되는 것입니다. 이 세계에서 저는 타자와 함께하는 행복의 원천이 나에게 주어지는 것을 직접 봅니다.

 

 - 알랭 바디우,『사랑예찬』에서

 

 

제이 송 감독의 영화 ‘코인룸 Coinroom’을 보며 이 시대의 사랑을 생각했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공장에 다니는 가장 지철은 우연히 역 앞에 있는 ‘Coinroom’이라는 간판을 보고 호기심에 들어서게 된다.

 

직원에게서 5만 원권 지폐를 동전으로 바꾼 그는 미로 같은 어둑한 길을 따라 한 룸에 들어간다. 커튼을 열자 한 여인의 하체가 뒷모습을 드러낸다. “어서 와. 자기야!” 여인의 매혹적인 목소리.  

 

하체의 뒷모습만 보이는 여성, 상체는 벽으로 가려져 있다. 지철은 이 여성과 뜨거운 사랑을 나누게 된다. ‘아, 얼굴 없는 여성과의 사랑!’ 언제든지 동전만 넣으면 된다. 지철은 이 여성에게서 진정한 사랑을 느끼게 된다. 이런 사랑이 이 시대의 사랑이 아닐까? 언젠가 한 성교육강사에게서 들었다. 

 

“요즘 젊은이들은 모텔에서 30분 동안 사랑을 나눈데요.”

 

30분간의 짧은 사랑에서 서로의 얼굴을 보게 될까? 그들이 보는 건, 서로의 하체뿐이지 않을까? 상체와 함께 만나는 사랑은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는 너무나 무거운 걸까? 오로지 성욕의 해소가 되어버린 이 시대의 사랑.

 

지철은 회사에서 구조 조정을 당한다. 그는 아내에게 말한다. 

 

“나 진정한 사랑을 만났어! 우리 헤어져!” 

 

화면은 아내의 얼굴을 보여준다. 그녀는 바로 지철이 코인룸에서 만난 진정한 사랑이다. 이 시대의 진정한 사랑은 서로 하체로만 만나야 한다! 동전만 넣으면 되는, 얼굴 없는 사랑! 

 

 

 약초로 구운 닭 가슴살 한 쪽만 

 테이크아웃해가는

 작고 앙증맞은 쇼핑백에 담을 만큼의

 순간의 시장기를 면할 만큼의 

 그런 사랑이 필요한 때. 

 

 - 박영우, <1인치의 사랑> 부분

 

 

 1인치의 사랑이 필요한 때, 

 

나머지 99인치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부글거린다. 권태, 우울증, 불면증, 공황 장애, 자해, 스토커, 동반 자살, 도박, 마약, 사이비 종교...... 

 

 

[고석근]

수필가

인문학 강사 

한국산문 신인상

제6회 민들레문학상 수상.

이메일: ksk21ccc-@daum.net

 

작성 2023.07.20 10:11 수정 2023.07.20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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