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안에는 비상하고 싶은 독수리가 있고 내 안에는 진흙탕에서 뒹굴고 싶은 하마가 있다.
- 칼 샌드버그(Carl Sandburg, 1878-1967. 미국 시인)
우리는 신이 죽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신은 우리의 북극성이었다. 삶의 지도였다. 신이 죽은 시대, 우리는 길을 잃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많은 사람들이 다시 신을 찾아가고 있다.
온갖 사이비 종교가 난무하고, 돈이 신이 되고, 강자들이 신이 되고 있다. 신이 죽어 스스로 주인이 될 수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주인의 삶을 버거워하고 있다. 종은 얼마나 편한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모든 것이 주어진다. 우리는 아우성친다.
“왜 좋은 주인이 없는 거야?”
인류의 오랜 꿈인 민주주의는 모든 민(民)이 주(主)가 되어야 하는데, 종이 주를 선택하는 제도가 되어 버렸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詩)’를 보며, 신이 죽은 시대를 살아가는 법을 생각했다. 바로 시가 되는 것!
주인공 미자는 가슴에 시심(詩心)을 간직하고 있는 60대 여성이다. 그녀는 동네 문화센터에서 김용택 시인으로부터 시를 배우게 된다. 시인은 사과를 한 손에 쥐고 말한다.
“여러분은 사과를 몇 번이나 보셨습니까? 아직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시를 쓴다는 건, 아름다움을 찾는 것입니다.”
‘사과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니?’ 수강생들은 의아해한다. 그 후 미자는 사과를 보듯이 세상을 보게 된다. 그녀는 들마루에 앉아 눈부시게 빛나는 벚꽃을 보게 된다. 하지만 시상(詩想)은 떠오르지 않는다. 그녀는 시인에게 묻는다.
“시상은 어떻게 찾아야 합니까?”
시인이 대답해 준다.
“시상은 그냥 오는 게 아니라 찾아가야 합니다. 절실하게 찾아야 합니다.”
그녀는 강가를 거닐고, 비를 맞고, 아름다움을 찾아 헤맨다. 하지만, 시상은 떠오르지 않는다. 그녀는 그녀와 함께 사는 중학생 외손자가 친구들과 함께 같은 학교 여학생을 성폭행하여 그 여학생이 강에 투신자살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녀는 자살한 여학생의 어머니를 찾아가게 된다. 들에서 일하고 있는 여학생의 어머니를 찾아가다 땅에 떨어진 살구들을 발견한다. 그녀는 여기저기 떨어져 있는 살구들을 보며, 시상이 떠오른다. ‘살구는 스스로를 땅에 던진다. 다음 생을 위해....’
‘아름다움’에 취한 그녀는 여학생의 어머니를 만나게 되지만, ‘자신의 생각’에 빠져 살구예찬을 한다. 돌아오다 그녀는 깨닫게 된다. ‘아차....’ 하지만 늦었다. 그녀는 집으로 돌아오며, ‘참혹한 삶의 실상’을 마주하게 된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참혹한 삶에서 솟아나는 것이다! 그녀는 여학생이 자살한 강의 다리에 올라가 흘러가는 강물을 본다. 우리 안에는 ‘비상하고 싶은 독수리’와 ‘진흙탕에서 뒹굴고 싶은 하마’가 있다. 시상은 하마가 독수리로 변신할 때, 떠오른다.
그녀는 하마로 살아가는 자신을 선명히 보게 되었다. 깊은 내면에서 독수리가 고개를 들었다. 독수리는 하늘로 높이 비상하였다. 그녀는 시 강좌의 마지막 시간에 꽃다발과 시 한 편을 교탁에 놓았다.
나는 당신을 축복합니다
검은 강물을 건너기 전에 내 영혼의 마지막 숨을 다해
나는 꿈꾸기 시작합니다
어느 햇빛 맑은 아침 다시 깨어나 부신 눈으로
머리맡에 선 당신을 만날 수 있기를
- 이창동, <아네스의 노래> 부분
미자는 죽은 여학생, 아네스가 되었다.
시는 우리 모두를 하나로 만나게 한다.
아름다움이다.
[고석근]
수필가
인문학 강사
한국산문 신인상
제6회 민들레문학상 수상.
이메일: ksk21ccc-@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