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이천 육백여 년 전 인간 ‘탈레스’다. 마이안드로스강이 굽이굽이 흘러 비옥한 평원이 끝없이 펼쳐지고 질 좋은 토사가 강을 타고 떠내려와 바다로 스며드는 아름다운 항구도시 밀레토스에서 태어났다. 밀레토스는 그리스의 식민지였지만 덥지도 않고 또 춥지도 않은 온화한 기후 덕분에 우리 조상들은 페니키아인의 혈통을 지키며 아주 먼 옛날부터 이곳에 정착해서 이 땅을 일구며 살아왔다. 곡식도 잘 자라고 맛있는 과일도 풍성해서 인심도 좋고 문화가 발달한 것은 물론이고 먹고사는 일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또 인생은 무엇인지 신의 섭리가 무엇인지를 알고 싶어 하는 지적 호기심으로 가득한 사람들의 땅이다. 자유롭고 합리적인 생각이 싹틀 수 있는 지형적 이점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어릴 적부터 나는 하늘에 있는 별들을 보며 놀았다. 하늘은 내 호기심을 채워주기에 충분히 매력 있었다. 어른들은 이런 나를 보고 신께서 주관하는 일에 관심 두지 말라고 하셨다. 모든 것은 신의 영역이니 우리는 오직 신을 화나지 않게 기도만 잘해야 한다고 하셨다. 사람들은 천둥이 쳐도 신이 화났을까 봐 두려움에 떨고 폭풍이 몰려와도 두려움에 떨었다. 예측할 수도 없고 통제할 수도 없는 자연 앞에서 사람들은 신을 경외했고 신을 두려워했다. 그러나 하늘도 땅도 바다도 신이 다스린다는 어른들의 말은 내 호기심을 막을 수 없었다. 나는 궁금한 것은 참지 못하는 성격이므로 궁리하고 또 궁리했다.
나는 사물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물의 근원에 관심이 있었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는 않는 것이 더 궁금했다. 보이지 않는데 존재하는 것들을 보면 가슴이 뛰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저 우주는 얼마만큼 넓고 그 넓은 우주를 움직이는 건 무엇인지 이면에 숨은 보이지 않는 것이 내 호기심을 더 끌어당겼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나무, 바위, 동물, 바람, 천둥, 비, 태양, 별 그리고 인간 등 모든 것은 실제로 무엇으로 이루어졌는지 그 근원을 알고 싶었다. 천문학뿐만이 아니라 수학도 내 관심을 증폭시키는 학문이었다. 수학이 주는 즐거움에 빠져 온종일 골몰하기도 했다.
청년이 된 나는 공부를 더 해보고 싶은 열망에 가득 차 있었다. 돈이 있어야 공부도 마음 편하게 할 수 있기에 나는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장사를 시작했다. 내 고향 밀레투스는 그리스와 페르시아 사이에 있어 무역 중심지로 물자가 풍부한 곳이기에 장사를 하면 금방 부자가 될 수 있다. 나는 우리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소금 광산에 가서 소금을 싸게 사다가 도시로 와서 비싸게 팔아 이윤을 많이 남겼다. 소금보다 돈을 더 잘 벌 수 있는 것이 뭐 없을까 궁리해보니 올리브유가 눈에 딱 들어왔다. 올리브는 많이 나올 때도 있고 적게 나올 때도 있었는데 많이 나올 때 올리브로 기름을 짜서 적게 나올 때 팔면 이윤이 많이 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즉시 기름 압축기를 사들여서 마을 사람들에게 압축기를 빌려주면서 수수료를 받았다. 그 덕분에 나는 금방 큰돈을 벌었다.
이제 큰돈도 벌었으니 마음 놓고 여행을 떠났다. 이곳저곳을 여행하면서 사람들을 만나 소통하는 법도 배우고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도 알게 되었다. 그 넓은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었다. 밀레토스라는 작은 우물 안에 있다가 너른 바깥세상으로 나오니 만물의 근원에 대한 궁금함은 더 깊고 넓어졌다. 나는 긴 여행에서 돌아와 선진국인 이집트로 유학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곳에서 지적 호기심을 채워주는 수학과 천문을 체계적으로 배우며 세상의 근원에 대해 폭넓은 학문을 터득해 나갔다.
유학을 마치고 밀레투스로 다시 돌아온 나는 학교를 설립했다. 이집트 유학에서 배운 경험적이고 실용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과학, 천문학, 수학, 철학 등을 가르쳤다. 나는 이 시기에 수학의 기초를 세울 수 있었다. 임의의 원은 지름에 의해서 이등분이 된다는 사실과 두 직선 이 만나면 마주 보는 두 각은 같은 각을 이룬다는 사실과 반원에 대한 원주각은 항상 직각이라는 사실과 삼각형의 한 변과 양 끝의 각이 다른 삼각형의 그것과 같으면 두 삼각형은 합동이라는 사실과 이등변삼각형의 두 밑각은 서로 같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또한 이집트 사람들이 피라미드의 높이를 재지 못해 그 높이가 얼마나 되는지 알지 못할 때 나는 태양에 비친 그림자를 이용해서 그 거대한 피라미드의 높이를 알아냈다. 바다 위에 있는 배와 해안까지의 거리는 닮은꼴을 이용해 측정해 냈다.
달이 태양을 가리는 일식의 날짜를 정확하게 알아내어 사람들에게 알려주었다. 사람들은 놀라서 정말일까 하는 의심을 했지만, 천문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과거에 일어났던 기록을 자세하게 조사하고 수집해 일식이 규칙적으로 일어난다는 걸 발견했다. 일식이 일어날 날짜를 정확하게 계산하여 측정해 보니 5월 28일에 일식이 일어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일식이 언제 일어날지 오로지 신神만 안다고 믿고 있던 사람들은 충격을 받고 믿지 않았지만, 5월 28일이 되자 내가 관측한 대로 일식이 일어났다. 사람들은 그제야 나의 말을 믿었다.
그런데 가장 궁금한 것은 만물의 근원이었다. 봄에 꽃이 피고 여름이 되면 많은 비가 오고 가을이 되면 식물들은 열매는 맺고 겨울이 되면 동면에 드는 것의 근원은 무엇일까. 생성과 소멸을 거듭하는 만물의 원리와 그 근원은 무엇인지 알아내고 싶었다. 오랫동안 궁리하고 연구해 보니 그것은 바로 물이었다. 물은 모든 생명의 근원이었다. 물이 없으면 생명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변화하는 만물은 물을 근원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물은 고체이면서 액체이고 액체이면서 기체다. 이 본질이 만물을 만들고 그 만물을 바탕으로 우리 인간은 이 땅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만물의 근원은 물이므로 지구는 물 위에 떠 있고 세상의 모든 것은 신으로 가득 차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 세 마디뿐이다. 나는 내 평생 앎에 대한 갈망으로 지혜를 사랑하고 그 가치를 찾아 근원에 대해 궁리여행을 했다. 궁금증과 호기심이 나를 키웠고 그 궁극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는 끊임없이 연구했다. 나는 세상의 중심에서 치열하게 세상을 살다가 이른 여덟에 세상과 작별하고 말았다. 나는 철학의 출발자가 되었다.
만물의 근원은 물이다.
[전명희]
서울대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다 그만두고
‘밖철학연구소’를 설립해 연구에 몰두했지만
철학 없는 철학이 진정한 철학임을 깨달아
자유로운 떠돌이 여행자가 된 무소유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