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영의 낭만詩객] 밝은 달 깊은 시름

이순영

증오의 힘은 막강하다. 증오의 힘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곳곳에 가득하다. 증오에 갇히게 되면 나가는 문이 보이지 않는다. 모든 일들을 증오프레임으로 설정해 버리고 스스로 그 프레임 안에서 옳고 그름의 잣대를 거두어 버린다. 증오는 분노를 유발하고 분노는 의식을 마비시킨다. 증오에 감염된 사람들은 불특정 다수에게 그 분노를 표출하며 불안을 조장하고 심지어 사회적 악의 축이 되기도 한다. 증오는 혐오가 되고 혐오는 범죄 같은 사회적 혼란을 낳는다. 증오는 마음 저 밑바닥에 복수라는 악마를 키우고 있다. 증오를 키우게 되면 증오의 대상을 숭배하는 문화적 현상까지 만들게 된다. 

 

인간의 증오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증오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반드시 미움이 뱀처럼 똬리를 틀고 앉아 있다. 그 미움의 정체를 해부해 보면 누군가로부터 받은 상처가 아픔으로 각인되어 있다. 아픔이란 내 자신 스스로 사랑받지 못했거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다른 사람이 상처를 주었다는 걸 알아버렸을 때 마음속 깊이 증오의 감정을 키우게 된다. 인간에게 가장 근원적인 감정이란 나와 가족이라는 혈육공동체의 생존본능를 보호하는 감정이다. 나와 내 가족이 상처받게 되면 생존을 위해 미움이 생기고 미움은 미움을 넘어 방어적인 증오로 발현된다. 

 

연산군을 생각하면 증오와 복수라는 두 단어로 압축한다. 증오의 왕이 된 연산군에게 우리는 증오프레임을 씌워 그의 인생 전체를 덮어 버렸다. 그가 왕이 되자 권력이라는 무기를 들고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이 작은 조선 반도에서 연산군의 증오를 당해낼 자들은 없었다. 연산군은 자신의 어머니가 권력다툼의 틈바구니에서 죽게 되었다는 걸 알게 되면서 그 권력을 휘두른 사람들을 처참하게 죽이는 증오의 잔치를 벌였다. 폐위되어 사약을 먹고 죽은 어머니의 원수를 갚는 일에 미친 망나니가 된다. 

 

폭군 연산군은 있지만 인간 무작금(無作金)은 없었다. 이융(李㦕)도 없었다. 역사는 승자의 것이므로 승자들은 무작금도 없앴고 이융도 삭제해 버렸다. 폭군 연산군만 남겨 놓았다. 어릴 때부터 계모인 정현왕후를 생모로 알고 자라는 불운을 겪었지만 따뜻하고 정 많고 문학에 소질이 있은 사람이었다. 시를 짓고 일기를 쓰면서 자기 안의 자기를 만나 위로받곤 했다. 궁궐이라는 권력 집단 속에서 자신을 다스리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누가 적인지 누가 친구인지 판단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린 이융의 마음에 문학이 들어와 있었던 것은 다행 중의 다행이 아니던가. 이융이 1500년 8월 1일 스물다섯에 지은 시 ‘밝은 달 깊은 시름’은 그의 인간적 고뇌가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비 개고

구름 갇혀

밤기운이 맑으니

달 밝은 윤각에

꿈 이루기 어렵구나.

해마다 좋은 때를

구경할 수 없으니

어옹의 한평생을

지남만도 못하네.

 

시가 깔끔하다. 감정을 극도로 아꼈다. 증오보다 연민이 앞선다. 겨우 스물다섯에 꿈을 이루기 어렵고 해마다 좋은 때를 구경할 수 없다니 권력이 얼마나 무상한 것인지 어린 왕도 눈치챘을 것이다. 쥐고 있는 떡이 크면 클수록 온갖 이리떼들이 몰려들기 마련이다. 하필 왕의 아들로 태어나 명량하고 천진하게 살지 못하고 지리멸렬한 인생을 살아야 했는지 그 지독한 삶의 궤적은 연산군일기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고독하고 처절한 자신의 감정을 저 가슴 깊은 곳에 숨겨두고 은유와 비유와 풍자로 고통을 풀어냈을 것이다. 

 

인간은 사랑의 힘과 증오의 힘으로 산다. 그게 인간이다. 사랑의 힘이 더 세지면 인생을 인생답게 산다. 그 사랑의 힘이 최대치가 되면 예수님이나 부처님처럼 성인이 된다. 그러나 증오의 힘이 커지면 인생 실패자가 된다. 증오의 힘이 조금씩 자라날수록 사이코패스가 되고 사회악이 된다. 증오의 힘이 최대치가 되면 악마가 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연산군에게 있어서 어머니의 부재는 터지지 않은 폭탄이었을 것이다. 그 폭탄이 때를 만나 폭발하면서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은 것이다. 

 

그의 내면에 흐르던 예술적 감수성이 광기로 변하면서 폭군의 길로 접어든다. 연산군은 12년간 왕위를 지키면서 자신 안에 있는 증오를 여자와 사치와 향락에 방출했다. 그러다가 증오의 힘이 더 커지면서 150여 명 죽이며 피맛에 중독된다. 증오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사지를 자르고 뼛가루를 바람에 날리면서 통쾌한 복수를 즐거워했다. 증오로부터 도망치고 싶었지만 도망치면 칠수록 끈질기게 달라붙었다. 결국 죽음으로 완성해야 끝나는 것이 증오다. 

 

연산군은 곧 자신이 쫓겨나 죽게 운명이라는 걸 알았을 것이다. 경오궁 후원에서 나인들을 거느리고 잔치를 벌였다. 연산군은 나무껍질로 만든 피리를 두 곡 불고 나서는 눈물을 흘리면서 시를 지어 읊었다. 삶이 끝나는 건 쉽다. 그러나 삶의 흔적은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연산군은 그 지독한 증오의 늪에 빠져 결국 파멸에 이르렀다. 모정에 굶주린 어린아이의 가슴에 각인된 증오는 서른 살에 그렇게 죽음으로 끝을 맺는다.

 

인생은 풀잎에 맺힌 이슬 같아서

만날 수 있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네.

 

[이순영]

수필가

칼럼니스트

이메일eee0411@yahoo.com

 

작성 2023.08.10 09:50 수정 2023.08.10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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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