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식] 올가을에는

김태식

그 뜨겁던 여름이 지나가지 않을 듯하더니 어느새 하늘은 높아지고 들판의 벼들은 황금빛을 띠고 있다. 가까이 다가가 벼를 만져 보니 잘 영글었다. 황금들판이다. 밀짚모자를 눌러 쓴 농부는 들판에서 풍성한 수확을 기대하며 마지막 손질이 한창이다. 다행스럽게 올해에는 아직 큰 태풍이 오지 않았다. 일조량도 많아 곡식을 잘 여물게 했다. 

 

고개 숙인 허수아비는 바람결에 잠이 들고 참새들은 하늘을 멀리하고 몸을 낮춘다. 맑게 갠 한낮의 하늘을 잠시 올려다보니 고추잠자리 한 마리가 허공을 맴돌다 나뭇가지에 앉는다. 뒤따라오던 다른 한 마리도 덩달아 자리를 잡는다. 입맞춤한다 싶더니 잠시 후에는 하나로 포개진다. 그들이 가을의 문을 열고 있다. 가을하늘은 나의 눈에서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느낌은 손에 잡힐 듯 지척에 있다. 

 

몇 년 전, 이맘 때쯤에는 중국의 대련으로 주재원 발령을 받아 한국의 가을을 느끼지 못했다. 그곳에서도 우리나라와 같은 가을이 있으려니 생각했지만 높고 푸르른 맑은 하늘과 단풍을 기다리던 나의 기대는 무너져 버리고 말았다. 

 

그곳은 가을임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뿌우연 하늘이었고 단풍이 물든 낙엽은 보기 힘들었다. 가로수들은 활엽수가 드물고 침엽수만 심겨 있었기 때문이다. 북쪽에 위치한 지역이라 10월에 벌써 한 겨울의 외투를 껴입어야 했다. 우리나라의 가을하고는 많이 달랐다. 

 

우리나라의 가을은 다른 나라와 달리 특별하다. 아름답다. 그리고 풍요롭다. 더욱이 단풍의 색깔은 고운 색동저고리다. 초록빛이 물러나고 단풍잎으로 점점 물들어 갈 즈음 그곳에는 청명한 가을하늘이 있었다. 떨어지기 싫은 낙엽들에게는 시련의 계절이 시작되고 있었지만 잎 새들이 하나둘 바람에 실려 가는 모습은 낭만이다. 

 

다람쥐는 떨어진 밤톨을 입에 물고 숲속을 사각거리며 지나가고 있었다. 그들의 겨울 식량을 준비하고 있었다. 가을은 겨울 채비를 하는 계절이고 지난 여름날의 늘어진 추억들을 주워 담는 계절이다. 

 

한여름을 인내한 초가을의 계곡물이 부드럽게 흐르고 있었다. 가까운 지인知人들과 계곡을 따라 길을 걷고 난 뒤 얼큰한 민물매운탕에 소주 한 잔을 곁들이니 세상을 모두 얻은 듯한 기분이었다. 울산 반구대를 등지고 뉘엿뉘엿 넘어가는 석양은 좋은 배경화면이었다. 초저녁 어둠도 낭만을 거들고 있었다. 

 

여름을 딛고 다가와 초가을을 맞이한 낙엽들은 그렇게 나무와 첫 이별을 고하고 있었다. 깊어진 가을을 지나고 겨울이 지나면 다시 피어날 봄날의 새싹을 기원하면서.

 

올가을에도 손에는 가을바람을 잡고 볼에는 가을 햇살을 받아 가며 낙엽 밟히는 소리를 귀에 담고 싶다. 그리고 낙엽이 떨어지는 길섶의 버스정류장에서 나무 벤치에 앉아 시골 마을로 들어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싶다. 한 시간 아니 두 시간을 기다려야 할지라도. 시골길 종점에 다다르면 그곳에서 막걸리라도 한잔하고 싶다. 

 

가을은 겨울을 잉태하고 첫서리를 머금은 초겨울로 가는 길목이다. 사계절 가운데 비교적 짧은 기간이면서도 우리의 기억에는 오랫동안 머무르는 계절이다. 모든 사람들의 가슴에 깊이 새겨지는 추억이 있어 그럴 것이다.  가을하늘은 점점 지상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가을하늘은 사람들을 오라고 손짓하지 않는다. 홀로 길을 떠나려 한다. 가을은 정녕 우리의 곁을 떠나기 위해 다가오고 있다.

 

 

[김태식]

한국해양대학교 대학원

선박기관시스템 공학과 졸업(공학석사)

미국해운회사 일본지사장(전)

울산신문 신춘문예(등대문학상) 단편소설 당선 등단

사실문학 시 당선 등단

제4회 코스미안상 수상

이메일 :wavekts@hanmail.net

 

작성 2023.08.22 10:58 수정 2023.08.2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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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