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림자가 자아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집적할 경우에는 통제할 수 없는 분노로 작열하거나, 한동안 우리를 헤매게 하거나, 무분별하게 만든다. 때로는 우울증에 빠지게도 만들고, 그렇지 않으면 어떤 이유가 숨어 있을 듯한 사고로 연결되기도 한다. 자생력이 있는 그림자는 심리라는 집에서 무서운 괴물로 둔갑한다.
- 로버트 존슨,『당신의 그림자가 울고 있다』에서
오래전 시골에 살 때였다. 평소에 알고 지내던 한 초등학교 교사가 어느 날 내게 말했다.
“혹시 닭 잡을 줄 아세요?”
그는 관사에서 닭을 길렀는데, 그 수가 엄청나게 불어 낫단다. 그 닭들을 잡아먹고 싶은데 어떡하면 좋으냐고 했다. 나는 어릴 적 아버지가 닭 잡는 걸 많이 보았다. 목을 비틀고, 뜨거운 물에 넣어 털을 뽑고....
“아. 걱정하지 마세요. 내가 잡아줄게요.”
나는 큰소리를 쳤다. 며칠 후 그의 관사로 갔다. 그와 함께 닭장으로 가서 몇 마리를 잡았다. 나는 무심하게 닭을 잡아 닭백숙을 만들었다. 그 뒤에도 집에서 기르던 닭들을 잡아먹었다. ‘그때 어떻게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그렇게 했을까?’
닭의 목을 비틀 때, 겁에 질린 닭의 눈을 보면서. 지금은 그렇게 하지 못할 것 같다. ‘아, 내 안에 그리도 무서운 어둠이 있었나 보다.’ 내 안의 어둠, 그것을 분석심리학자 칼 융은 그림자라고 한다. 웅 분석가인 로버트 존슨은 그림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림자가 자아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집적할 경우에는 통제할 수 없는 분노로 작열하거나 자생력이 있는 그림자는 심리라는 집에서 무서운 괴물로 둔갑한다.’
나는 그때 ‘내 안의 무서운 악마’를 느꼈다. 알 수 없는 분노들이 갑자기 안에서 솟아 올라왔다. 그 분노가 닭을 무심히 죽이게 했을 것이다. 나는 그 뒤 인문학을 공부하며 나를 성찰하기 시작했다.
술을 마시고 느닷없이 울음을 터뜨리고, 강의하다 수강생들의 작은 잘못에도 불같이 화를 냈다. 자전거로 벌판을 헤매며 꺼억 꺼억 울었다. 몇 년이 지난 후, 나의 마음이 차츰 맑아졌다. 맑은 마음으로 보는 세상, 참으로 아름다웠다.
나는 그 뒤 글을 쓰고 인문학을 강의하며, ‘제정신’을 찾게 되고, 나의 길을 가게 되었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 깊은 곳에 켜켜이 쌓인 그림자가 있다. ‘울고 있는 그림자’가 있다.
자신의 어둠을 다 밝혀야 한다. 밖으로 드러내면 된다. 그러면 그림자가 울음을 멈추게 된다. 해맑게 웃는 나의 그림자. 나는 드디어 나의 그림자와 화해를 했다. 내 평생의 반려자다.
그림자는 악마이지만, 내게 선을 실현하고 온전하게 살게 하는 힘이다. 그림자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인간은 자신도 모르게 악마가 된다. 우리 사회에 수시로 출몰하는 악마들, 그들의 깊은 마음속에는 그림자가 늘 울고 있다.
우리는 그들의 마음을 따스하게 들여다봐야 한다. 울고 있는 그림자를 달래 주어야 한다.
공중의 상처받은 흔적
그림자 속에 서 있다.
어느 누구도 아닌, 무(無)를 위해 서 있다.
- 파울 첼란, <서 있음> 부분
우리의 그림자 속에 늘 서 있는 아이.
무(無)를 위해 서 있는 아이.
우리는 그 아이를 마음껏 뛰어놀게 해야 한다.
[고석근]
수필가
인문학 강사
한국산문 신인상
제6회 민들레문학상 수상.
이메일: ksk21ccc-@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