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칼럼] 개는 양이 될 수 있다

고석근

어떤 한 낱말이 어떻게 기능하느냐는 추측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 낱말의 적용을 주시하고, 그로부터 배워야 한다.

 

-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철학적 탐구』에서

 

 

‘개는 양이 될 수 있다.’ 이 말은 맞을까? 당연히 틀리는 말 같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을 달리해 보면, 당연히 맞는 말이 될 것이다. 우리는 개를 보고 개라고 부른다. 이것은 필연적인 게 아니다. 어떤 연유로 인해 개를 보고 개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개를 양이라고 부르게 되면 개는 양이 된다. 그야말로 이름은 이름에 불과한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보면, 우리가 얼마나 이름에 갇혀 있었는지를 알게 된다. 나는 오랫동안 나를 장남이라고 생각했다.

 

나를 장남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나면 장남이 되어 버린다. 나는 스스로 장남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살아가려고 스스로를 다그치게 된다. 사실 나의 이름은 너무나 많은데, 또한 새로운 이름을 만들어 내도 되는데, 한번 어떤 이름에 갇히게 되면 그 이름에서 헤어나기가 너무나 힘들어진다.

 

나는 장남이라는 이름을 벗어나는데, 수십 년이 걸렸다. 지금도 아련히 ‘어떤 그리움’처럼 남아 있다. 하지만 나는 과감히 나의 이름을 창조하려 한다. 그때그때 내게 꼭 맞는 이름으로. 

 

춘추전국시대 명가(名家)의 철인 혜시의 말 ‘개는 양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언뜻 보면 말장난 같다. 하지만 그 안에는 자신을 해방하고 창조하려는 혜시의 간절한 꿈이 들어 있을 것이다. 

 

그는 장자의 절친한 친구였다고 한다. 장자와 철학은 달랐을지 모르나 자유를 꿈꾼다는 점에서 두 현자는 서로의 말(音)을 아는 벗이었을 것이다. 개는 양이 될 수 없다고 하면, 이 또한 지극히 논리적으로 당연한 말인 듯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조금 더 깊이 사고해 보면, 이 언설에 갇혀 버리면 심각한 일이 벌어지게 된다. 이 논리로 인간 세상을 보면, 백성은 왕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개는 개’라고 생각하는 이면에는, 개라는 말이 개라는 실체를 지시한다는 생각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이런 논리로 백성과 왕을 보게 되면, 백성이라는 말은 백성이라는 실체를 지칭하고 왕이라는 말은 왕이라는 실체를 지칭하는 것이 된다. 끝내 백성은 백성, 왕은 왕, 둘은 영원히 다른 존재가 되어 버린다. 민주주의 사고는 나올 수가 없다.

 

공자의 정명(正名) 사상은 언뜻 보면, 참으로 멋진 것 같다. 왕은 왕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백성은 백성답게, 부모는 부모답게 각자의 역할을 잘 수행하면 이 세상은 참으로 좋아지지 않겠는가? 하지만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이런 사고가 굳어지게 되면, 이 세상의 지위, 신분, 기득권이 고착되어버린다는 것을.

 

현대는 민주주의 사회다. 누구나 이 세상의 주인이 되어 이 세상을 이끌어가야 하는 정치 제도다. 우리는 무한 변신할 수 있어야 한다. 이름에 걸맞다는 경직된 사고에 갇히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무한 변신하며 서로 만나 새로운 이름으로 거듭나야 한다. 우리는 항상 20세기의 위대한 분석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어떤 한 낱말이 어떻게 기능하느냐는 추측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 낱말의 적용을 주시하고, 그로부터 배워야 한다.’

 

맞는지 안 맞는지는 언어학자 렴광호박사에게 물어보면 알겠지만 아줌마는 어쩔 수 없이 아줌마다 

 

 

- 석화, <연변 3> 부분

 

 

퇴직 여교장 선생님이 시장에 갔는데, 여기저기 둘러보고 있는데, 뒤에서 “아줌마!” 하더란다. 자신은 아줌마가 아니기에 뒤돌아보지 않았는데, 뒤에서 더 큰 소리가 나더란다.

 

“아줌마!”

 

비로소 뒤돌아보며 그 말이 자신을 지칭한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아줌마가 되었다고 한다.  

 

[고석근]

수필가

인문학 강사 

한국산문 신인상

제6회 민들레문학상 수상.

이메일: ksk21ccc-@daum.net

 

작성 2023.08.31 09:44 수정 2023.08.31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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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