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단골로 등장하는 시 두 편이 있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행복’이라는 시의 첫 구절이다. 유명한 시 한 편이 더 있는데‘깃발’이라는 시다.‘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문학인이라면 한 번쯤 암송해 봤을 이 시를 쓴 사람이 바로 청마 유치환이다. 나는 고교시절 이런 훌륭한 시를 쓴 시인이 경남 통영출신이라는 사실이 너무나 자랑스러웠다. 아울러 이런 명시를 쓸 수 있는 감성을 키우게 해 주었던 밑거름은 바로 시어가 곳곳에 널려있는 통영이 아니면 가능하지 않은 일이라 여겼다.
나의 고향이 통영이라고 문인들에게 말하면 하나같이‘아! 청마의 고향 그리고 박경리소설가 김춘수시인의 고향’이라고 말한다. 유명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하면 청마의 고향은 경남 통영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에 공영방송의 어느 지방 방송국에서‘경남의 거장을 만나다’라는 프로그램에서 청마의 고향이 거제라는 방송이 방영되었다. 약 20년 전에 청마의 출생지를 두고 법정에까지 갔던 일이 있는데 서울고등법원에서‘청마의 고향이 거제라고 보기에는 어렵다’라고 판결이 났는데도 버젓이 방송된 것이다. 방송사고 치고는 대형 사고다.
충남 아산에 가면 KTX‘천안아산역’이 있다. 그런데 이 역이 있는 곳은 아산이며 천안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도 어떻게 천안아산역이 되었을까? KTX역을 처음 만들 때 아산보다 크고 지명도가 높다는 이유로 국토부에서 천안역으로 결정했다.
이에 아산시민들은 분노했다. 아산역을 요구했지만 한번 결정된 일이라 번복할 수 없다며 부득불 천안아산역으로 결정된 것이다.
경기도의 덩치는 충남의 덩치보다 훨씬 크다. 산업화가 빨리 이루어진 경기도 평택은 물동량을 감당할 수 있는 항구가 필요했다. 평택은 아산만에 관심을 가졌고 그 바다에 평택항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하지만 그곳은 충남 당진 땅이었다.
주로 농업에 종사하던 당진시민들이 산업화에 눈을 뜨면서 항구의 필요성을 느낄 때쯤 그 항구는 이웃집의 이름을 달고 있었다. 오랜 기간이 지난 뒤 꼬리에 이름표 하나 더 달고 겨우‘평택당진항’이 되었다.
이처럼 지명 이름은 더 얹을 수도 있고 뺄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구나 태어난 고향을 여기였고 저기였다고 바꿀 수는 없는 일이다. 유년 시절에 외갓집에 잠시 머물렀다고 그곳이 고향이 될 수 있으랴. 인생에 있어 변하지 않는 3가지가 있다면 고향 부모 그리고 출신학교다.
청마는 그의 작품에서도 나의 고향은 경남 통영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 그분은 떠나고 없다. 인생은 유한하지만 태어나고 자랐던 고향은 무한하다. 근대 한국시를 이끌었던 유명 시인의 고향이 왜곡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김태식]
한국해양대학교 대학원
선박기관시스템 공학과 졸업(공학석사)
미국해운회사 일본지사장(전)
울산신문 신춘문예(등대문학상) 단편소설 당선 등단
사실문학 시 당선 등단
제4회 코스미안상 수상
이메일 :wavekt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