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필과 일기에 시라는 이름을 덧붙이고, 시적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다면 타당한 일일까? 물론 시보다 더 미려한 문장과 감동을 안겨 주는 수필도 있다. 그러나 산문정신으로 창작한 진실이 꿈틀거리는 산문의 글인 수필은 수필일 뿐 시일 수는 없다. 일기도 일기일 뿐 시일 수는 없다.
‘산문시’와 ‘일기시(日記詩)’가 존재하지 않느냐고 반문한다면 그 말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산문시는 수필처럼 사실적 진실만을 말하지 않는다. 시의 본질대로 창조적 상상력이 빚어낸 허구성을 기본으로 한다. 어디까지나 수필은 수필일 뿐이고 산문시는 산문시일 뿐이다.
‘일기시’도 존재하기는 한다. 윤동주의 여러 시를 일러 ‘일기시’라고 언급한 학자도 있다. ‘일기와 같은 시’, ‘일기 형식의 시’라는 의미이지 일기가 곧 시라는 등가 성립을 말하는 용어는 아니다. 윤동주의 여러 시편이 일기 형식의 시임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래서 윤동주의 시 중에는 「서시」와 「참회록」을 비롯해 깊은 감동을 안겨 주는 작품도 있지만, 여러 시편은 아쉬운 점이 많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이다.
개인 시집에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의 시를 함께 엮기도 한다. 오늘날 그 정도는 개인 작품집이라는 특성상 어느 정도 허용하는 분위기이다. 그러나 인터넷이나 문예지에서 시라는 이름으로 행갈이해 놓은 일기를 간혹 접할 때면 당혹스럽다. 일기를 행갈이해 놓았다고 해서 시일 수는 없다.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를 담은 일기가 시의 형식을 빌렸다 하더라도 일기는 일기일 뿐이다.
그 이유는, 문학은 “작가의 상상력에서 생겨난 창조적 작품으로 제한하는 것”(김욱동, 『문학이란 무엇인가』, 문예출판사, 2002, 46쪽.)이라는 말에 답이 있다. 일기는 사실 그대로 쓰기 때문에 상상력이 필요 없다. 창조적인 작품도 아니다. 일기는 자기의 일과를 진솔하게 기록하고 반성하는 글이지 상상력을 가미하여 허구성을 장치하는 글이 아니다. 허구성을 장치하는 그 순간 일기가 아니다.
일기는 지극히 사적이고 주관적인 은밀한 글이다. 살아생전 일기문은 일기장에 고이 닫아 놓아야지 그 은밀함을 열어젖혀 스스로 까발려 세상에 나오게 할 일은 아니다. 이처럼 일기가 시의 자격을 갖추기에는 너무나 많은 한계에 봉착한다.
일기에는 넋두리, 피상적 주장, 자기중심적인 사고의 산물 등을 마음대로 표현할 수 있다. 산문시라 하더라도 최소한 ‘운문적 진술’에 무게를 둬야 한다. ‘산문적 진술’을 바탕으로 하더라도 ‘운문적 진술’에 치중하여야 한다.
시인이여, 시인의 전기적인 사실의 이야기들은 시의 본령과 거리가 멀다. 시와 산문의 경계쯤은 분별하자, 나아가 시와 일기의 경계쯤은 알고 쓰자.
[신기용]
문학 박사.
도서출판 이바구, 계간 『문예창작』 발행인.
대구과학대학교 겸임조교수, 가야대학교 강사.
저서 : 평론집 7권, 이론서 2권, 연구서 2권, 시집 5권,
동시집 2권, 산문집 2권, 동화책 1권, 시조집 1권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