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 사람들이 매일 세끼 식사 때마다 빠지지 않는 반찬을 꼽으라면 김치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오늘도 예외 없이 밥상에 놓인 김치를 먹으면서 불현듯 40여 년 전의 기억을 되살려본다.
내가 승선하고 있던 외항선은 일본을 떠나 아르헨티나로 향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이틀간 머물고 미국을 거쳐 영국으로 가야 하는 50여 일간의 기나긴 항해를 위해 선원들이 먹을 충분한 식량과 반찬거리를 준비하기는 했지만 태평양의 날씨는 가늠할 수 없기에 불안한 마음으로 출항을 서둘렀다.
아니나 다를까 출항을 하고 일주일 정도가 지나고 나니 거센 폭풍우가 몰아치고 파도는 점점 높아져 배는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20일 항해를 하면 도착 예정인 아르헨티나까지 가는데 3일 정도 늦게 닿을 것 같았다.
계속되는 위험한 항해와 도착 날짜의 지연으로 인해 가장 걱정되는 일은 선원들의 먹을거리였다. 그 가운데에서도 김치가 가장 큰 문제였다. 미국에는 교민들이 김치를 팔기 때문에 살 수 있지만 그 당시 우리의 배가 가는 아르헨티나는 아주 작은 항구였다. 따라서 항구정보에 의하면 교민이 없는 것으로 나와 있었다.
하루라도 김치가 없으면 밥을 먹지 못하는 한국 사람들이 승선하고 있는 배에서 항해 중에 김치가 떨어졌으니 보통 낭패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미국까지는 앞으로 10일 이상을 더 가야 하는데 말이다. 배에서 항해 중에 자주 만들어 먹는 ‘태평양김치’를 만들어야만 했다. 먼저 배추 대신에 양배추를 듬성듬성 썰어 바닷물을 퍼 올려 절인다. 바다에서는 소금도 귀하고 넉넉하지 못해 바닷물을 이용하는 것이다.
하루 정도 지나서 젓갈에 고춧가루를 섞어 몇 시간 둔다. 그것을 꺼내서 김치라 생각하고 먹는 것이다. ‘태평양 김치’의 제조법이었다. 배는 특수한 환경에 처해 있고 언제나 변수가 많은 날씨 속에서 항해를 해야 하기 때문에 이러한 일이 자주있다. 이런 긴급한 상황이 있을 줄 뻔히 알면서도 넉넉한 식량을 준비하지 못하는 것은 저장할 수 있는 공간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실정이다 보니 양배추로 담근 태평양김치마저도 마음껏 먹을 수 없다. 배급을 받듯이 조금씩 나눠서 받아먹는다. 좋은 배추에 갖은 양념이 들어가고 어머니 같은 정성이 담겨 있어야 아주 맛난 김치가 되는데 임시변통으로 만든 태평양김치가 제대로 맛을 내기란 어려웠다. 이처럼 양배추로 담근 김치를 먹으면서 항해를 한 후 아르헨티나에 도착했다.
부두에서 하역작업을 한창 하고 있을 때 두 명의 한국인이 우리의 배를 방문했다. 이러한 시골 항구에 한국인이 타고 있는 배가 입항한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왔다는 이들은 5년 전에 아르헨티나로 이민 온 부부였다. 한국 사람이 그리웠다는 그들은 우리를 집으로 초대했다. 음식을 무엇으로 준비하면 되겠느냐는 물음에 우리 선원들은 하나같이 김치만 있으면 된다고 말했다. 그 집에 도착했을 때 한국의 냄새 그것은 다름 아닌 김치가 풍기는 고유의 향기였다. 이것저것 만들어 놓은 육류 반찬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김치에만 젓가락이 쉴 새 없이 왔다 갔다 할 뿐이었다.
평소 세 동이의 김칫독에 김치를 담아 두었다가 끼니때마다 꺼내 먹는다는 그 집의 김치가 어느새 한 동이는 바닥이 났다. 김치다운 김치를 제대로 먹지 못하고 ‘태평양김치’만을 며칠 동안 먹었던 탓에 우리는 반가운 김치에 탄성을 지르며 게걸스럽게 먹어 치울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때 먹었던 김치 맛을 잊을 수가 없다. 외국에서 한국인이 만들어 준 김치의 맛을......
[김태식]
한국해양대학교 대학원
선박기관시스템 공학과 졸업(공학석사)
미국해운회사 일본지사장(전)
울산신문 신춘문예(등대문학상) 단편소설 당선 등단
사실문학 시 당선 등단
제4회 코스미안상 수상
이메일 :wavekt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