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신이 휘둘릴 정도로 삶의 바깥뜰이 너무 소란스럽고 뒤죽박죽이다. 자꾸 현기증이 날 것만 같아 애써 눈을 감아 버리고 싶어진다.
어쩌다 피치 못할 볼일로 퇴근길에 시내 중심가라도 들르게 되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이면, 귀청을 찢을 듯이 시끌벅적한 소음에 그만 혼이 쑥 빠지고 만다. 즐비하게 늘어선 크고 작은 가게는 오가는 손님들의 귀를 뺏기 위해 저마다 확성기의 볼륨을 한껏 높이고, 뒤질세라 노점은 또 노점들대로 최대한 목청을 돋우어 연신 “골라~”, “골라~”를 외쳐댄다.
게다가 쉴 새 없이 거리를 질주하는 자동차 바퀴의 마찰음이며 배달 오토바이의 클랙슨 소리, 거대한 파도같이 밀려오고 밀려가는 행인들의 왁자지껄하게 웃고 떠드는 소리로 데시벨의 수치는 꼭짓점을 모르고 치솟는다. 나는 이러한 수선스런 상황에 이방인처럼 낯설어하며 대개 귀갓길을 서두르기 일쑤이다.
세상 사람들은 항용 격렬한 움직임이며 혹은 말초적 감각에서 쾌락을 얻으려 든다. 대중가수의 콘서트에 열광하고 무희들의 현란한 춤동작에 도취한다. 괴성을 지르면서 마구 뛰고 구르고 흔들어 대는, 달리는 관광버스 안에서의 광란에 가까운 추태는 얼마나 우리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가. 한 발짝만 비켜나서 살피면 모두들 자기 자리를 잃은 채 지향 없이 둥둥 떠다니는 부유물浮游物 같아만 보인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올지라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한 스피노자의 집념을 비웃기라도 하듯, 오로지 지금 이 순간을 즐기려 든다. 그로 인해 고요며 안온이며 침잠으로 길어 올리는 그런 내면의 문화가 죽어 가고 있다.
요사이 들어 서점가에서 책이 통 팔리지 않는다고 아우성이다. 미국 같은 큰 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제법 이름께나 얻은 시집조차 초판 몇천 부를 소화해 내기가 버거운 시대라고 한다. 시인들은 자조 섞인 푸념을 늘어놓는다, 시는 시 쓰는 사람 자신들끼리 돌려 읽고 마는 말의 사치 같은 것에 불과하다고. 하기야 그게 어디 시뿐이랴.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는 대다수 문화 예술 분야가 제각각 어려움을 겪기는 매일반인 것을…….
대신 사람들은 매스컴에서 중계되는 갖가지 운동경기에 넋을 놓고 열광한다. 그저 말초적이고 표피적인 부위를 자극하는 쇼 프로그램, 개그맨들의 억지웃음 같은 저급한 오락물에다 별 의식 없이 자신을 내맡긴다. 세상이 갈수록 가벼워지고 천박해져 가고 있다는 느낌을 도무지 지울 수가 없다.
그것은 당장 눈앞에 보이는 순간적 쾌락에 탐닉해 버리기를 좋아하는 요즘 사람들의 취향과 깊은 연관성이 있기 때문은 아닌지 모르겠다. 말초적 감각이 내명內明한 정서보다 우대 받는 시대, 동적인 문화가 정적인 문화를 압도해 버린 세상이다.
사람들은 사유니 침잠이니 하는, 그런 내밀한 가치와는 담을 쌓고 산다. 그걸 잃은 자리에 광란의 몸부림이 제집 안방인 양 판을 치고 있다. 그 결과 지난날 아침의 고요 같던 심성은, 진중鎭重함을 모른 채 모래사막처럼 거칠어지고 삭막해져 버렸다. 어쩌다 우리의 마음 바탕이 이런 모습으로 변질되고 만 것일까.
고요는 고뇌를 기르는 자양분이다. 고요로부터 사색의 싹이 자라며, 고요 속에서 명상의 줄기가 뻗어나간다. 그러기에 고요 가운데 서면 누구든 시인이 되고 사상가가 되고 철인이 된다. 사유는 우리들 마음의 바탕인 까닭이다.
시가 죽은 세상은 물고기 없는 연못이나 마찬가지다. 물만 그득한 채 고기 한 마리 노닐지 아니하는 연못, 그곳은 필시 적막 같은 어둠의 세계일 수밖에 없다.
우리네 사람살이 가운데서 고뇌만큼 인간적인 것이 또 어디 있으랴. 그저 순간적 쾌락에 탐닉하는 삶은 본능적 욕구 따라 목숨 부지扶持하는 동물의 그것과 하등 다를 것이 없다. 그것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다만 존재할 뿐이다. 고뇌, 이것이 있음으로 해서 저울눈의 무게 중심이 동물적 속성에서 비로소 인간 쪽으로 옮겨온다.
오늘날 우리의 삶에서 잃어버린 고요의 회복이 그 무엇보다 절실한 화두話頭가 되어야 할 것 같다. 그것은 고요 가운데서 빛깔 고운 심성이 자라나는 법인 까닭이며, 또한 고요는 고뇌로 다가가 인간이 인간이기를 떳떳하게 내세울 수 있는 다시없는 조건이기 때문이다.
오늘 나는 마음의 안뜰에다 고요의 나무 한 그루를 깊이깊이 심는다.
[곽흥렬]
1991년 《수필문학》, 1999년《대구문학》으로 등단
수필집 『우시장의 오후』를 비롯하여 총 12권 펴냄
교원문학상, 중봉 조헌문학상, 성호문학상,
흑구문학상, 한국동서문학 작품상 등을 수상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기금 받음
제4회 코스미안상 대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