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영의 낭만詩객] 신성한 노래

이순영

시끄럽다. 정말 시끄러워 살 수가 없다. 콩알만 한 지구에서 서로 잘났다고 싸움질하고 서로 죽이지 못해 안달한다. 한쪽에선 너무 먹어 죽을병에 걸리고 또 한쪽에선 못 먹어서 죽는다. 누군가는 죽일 듯이 미워하고 누군가는 죽을 듯이 사랑한다. 그렇게 천 년을 살 것처럼 악다구니로 살아봐야 겨우 백 년도 못사는 게 인간이다. ‘인생 뭐 있어?’라며 자조적인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그렇다. 인생 아무것도 없는 데 혹시 있을까 해서 사는지 모른다. 그게 인간이니까. 그게 삶이니까. 

 

천삼백여 년 전 잘 나가던 이탈리아의 한 남자는 피렌체 공화정을 통치하는 6인의 최고 정무위원 중 한 사람이었다. 좋은 집안에 태어났고 좋은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권력을 쥐었다. 그가 바로 단테다. 그러나 좋은 건 오래가지 않는 법인가 보다. 교황파가 황제파를 누르고 권력을 거머쥐었지만, 교황을 지지하는 흑당파와 교황을 반대하는 백당파로 다시 분열되어 결국 흑당파가 최고 정무위원들을 몰아내고 권력을 장악한다. 백당파에 속했던 단테는 뇌물을 받았다는 누명을 쓰고 엄청난 벌금과 영구적으로 공직 자격을 박탈당하고 추방당한다. 

 

한 사람의 운명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니 인간은 한 치 앞도 모르는 나약하고 어리석은 존재다. 단테는 피렌체의 분열과 교황의 욕심이 만든 전쟁으로 ‘캄캄한 숲’으로 들어가야 했다. 그 숲으로 들어가 떠돌이 시인이 된다. 모든 것을 잃은 단테는 캄캄한 숲속에서 고통과 희망과 행복이 어디에 있는지 사유하게 된다. 단테는 라틴어가 아닌 자신의 고향 토박이 언어인 피렌체어로 14여 년에 걸쳐 대서사시 ‘신곡’을 쓰게 된다. 괴로움에 젖은 눈물과 그리고 어딘가에 있을 희망으로 역사와 종교와 인간에 대한 세계를 광대하게 그려낸다. 신곡 지옥편을 보면 단테의 고통이 얼마나 극에 달했는지 알 수 있다.

 

우리 인생길 반 고비에

올바른 길을 잃고서 난

어두운 숲에 처했었네.

 

아, 이 거친 숲이 

얼마나 가혹하며 완강했는지

얼마나 말하기 힘든 일인가.

생각만 해도 두려움이 새로 솟는다

 

삶은 지옥이다. 그래서 천국이 필요하다. 잘난 사람도 못난 사람도 삶이라는 지옥에서 맛본 아주 조금의 천국 때문에 살아간다. 우리도 단테처럼 우리 인생길 반 고비에 올바른 길을 잃고 나서야 어두운 숲에 처해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올바른 길을 잃어보지 않은 사람은 인생을 모른다. 인생이란 두려움으로 가득 찰 때 비로소 희망이 보이는 법이 아니던가. 올바른 길을 잃은 단테는 진정한 시인의 길을 걸으며 지옥도 가보고 연옥도 가보고 천국도 가본다. 참다운 인생의 맛을 보게 된다.

 

그래서 단테의 시에는 인간의 맛이 난다. 가공하고 정제해서 잘 뽑아낸 인위적인 맛이 아니라 감정의 목포수를 그대로 드러낸 날것의 맛이 나서 좋다. 누구나 지옥을 건너 천국으로 갈 때 타고 갈 배가 필요하다. 단테에게 그 배는 ‘시’다. 시를 타고 이 고통의 바다를 건너 천국으로 간다. 가는 길은 자신이 살아온 만큼 자신의 체험만큼 자신의 사유만큼 진실하고 절실하게 서사로 드러내고 있다. 단테는 미움은 미움대로 사랑은 사랑대로 희망은 희망대로 표현하는 아주 솔직하게 표현한 인간적인 시인이다. 

 

모든 걸 잃고 방황하면서 떠돌이 시인이 되어 삶을 회상하는 단테는 권력으로부터 밀려난 이 거친 숲이 얼마나 가혹하며 완강했는지 얼마나 말하기 힘든 일인가를 되뇌며 자신에게 위로하고 있다. 생각만 해도 두려움이 새로 솟는 삶을 이겨내기 위해 번민의 날들을 보내고 베르길리우스를 만나 지옥도 가고 연옥도 간다. 그리고 첫사랑 베아트리체를 만나 천국에 가면서 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단테는 현실에서 실현될 수 없는 것들을 작품 안에서 실현한다. 상상 속으로 떠난 여행은 정치적으로 윤리적으로 그리고 종교적으로 방황했던 자신의 영혼을 굳건하게 성장시켜준다. 이게 바로 ‘시의 힘’이다. 시로써 영혼을 맑게 정화하고 그 맑은 영혼으로 현실의 지옥을 마음의 천국으로 만들어간다.

 

단테가 ‘신곡’에서 지옥부터 걸어간 것은 모든 걸 잃고 나서야 진정한 천국을 찾을 수 있는 용기가 생겼기 때문이다. 가득 채워진 물잔은 더 이상 채울 수 없다. 비어 있어야 채울 수 있는 것이 삶이고 인생이고 영혼이다. ‘신곡’의 지옥편 첫 구절은 매혹적이며 사랑스럽다. 지옥을 지나 연옥을 경유하고 종착지인 천국으로 가는 여행 중에 그 시절 최고의 시인인 베르길리우스를 동행시키고 아주 어린 시절 짝사랑했던 베아트리체를 등장시켜 사랑을 완성하는 단테의 상상력은 철학과 종교와 문학을 한 단계 높이며 이탈리아인들의 자존심을 살려 주었다.

 

종교라는 카테고리에서 보면 신곡은 잔인하고 분열을 조장하는 파격적인 작품이다. 어떤 평론가는 구역질 나는 작품이라고 평하기도 한다. 암울한 중세 시대에 잘 나가던 한 사람이 모든 걸 잃고 떠돌이가 되어 자신의 처지를 상상력을 더해 시대를 풍자한 작품이다. 한 인간의 고뇌가 녹아있고 고통이 스며있으며 사랑을 갈구하는 순수한 마음도 들어있다. 시대를 초월해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영향을 주었으니 단테는 위대한 시인이다. 이탈리아에는 ‘단테학’이 있고 미국 어느 대학에서는 ‘지옥편’ 하나만 연구하는 학과도 있다고 하니 단테가 우리에게 준 정신적 영향은 대단한 것이다. 

 

올바른 길을 잃고서 난

어두운 숲에 처했었네.

 

단테에게 묻고 싶다. 올바른 길을 잃지 않고 살아갈 힘이 우리에게 있는가. 그 올바른 길이 어떤 길인지 우리는 알 수 있는가.

 

 

[이순영]

수필가

칼럼니스트

이메일eee0411@yahoo.com

  

작성 2023.10.05 10:06 수정 2023.10.05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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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